다시 4월이다. 바로 1년 전 그날, 역사적 만남이라며 남북한 두 정상은 ‘평화, 새로운 시작’을 외쳤다. 지난 1년간 한반도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두 번의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고 수차례 실무접촉이 이어졌다. 남북 간 긴장완화 조치로 개성연락사무소 개소, 비무장지대 내 감시초소(GP) 철수, 철도도로연결 착공식도 이루어졌다. 평화가 곧 경제라 외치면서 신한반도평화체제는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70년 만에 찾아온 평화의 기회’라는 지금, 과연 남북한 사람들은 행복한가? 문득 역사적 만남 이후 통일의 길은 더욱 가까워졌는지 반문해 본다.
남북 간 교류협력이 이루어지면 북한의 지하자원과 남한의 기술을 합쳐 부강한 나라가 된다며 목청을 높인다. 유라시아까지 철도가 연결되어 물류비용을 줄이고, 섬나라에 갇혔던 민족이 대륙으로 뻗어나간다고 한다. 통일한국의 상상은 늘 지하자원과 북한 주민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귀결된다. 통일의 분위기가 조금만 무르익는다 싶으면 어김없이 접경지역의 땅값이 들썩인다. 그렇게 우리는 통일을 돈으로 환산한다.
북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고 비핵화의 진전과 북한인권 상황 개선은 요원한데 여전히 남북 경제교류만이 살길인 것처럼 말한다. 한마디로 평화경제에 사람이 없는 듯하다. 이 시대 ‘북한인권’이라는 말은 남북관계를 가로막는 마치 철부지 같은 단어가 되어 버렸다. 독재자의 폭정은 여전한데 그와 손잡고 평화롭다 웃음 짓는다. 북녘 사람들의 슬픈웃음은 서슬퍼런 철조망에 꽂혀 통한의 눈물로 흩날리는데, 목란꽃향기에 취한 듯 분단의 봄놀이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평양 목란관 만찬장에 울려 퍼졌던 4월의 축배 뒤에는 태양절(김일성 생일)을 준비하는 숱한 사람들의 아우성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절규가 저 북녘땅 산하를 뒤흔들고 사람다움을 함께 누릴 때 우리는 평화라 말할 수 있다.
사족을 하나 달면, 북한에서 사회주의 지상낙원의 대표적인 사례로 선전하는 곳 중에 <3월 5일 청년광산촌>이 있다. 김정일은 이곳을 “선군시대에 태어난 인민의 무릉도원이고 공산주의 선경이며 리상촌”이라고 불렀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는 <조선속도로 세계를 앞서나가자>며 ‘조선속도’ 실현의 성과 사례로 제시하는 곳이다. 북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은 쌀 걱정, 물 걱정, 땔감 걱정, 전기 걱정이 영원히 사라졌고 남새(채소)와 과일은 이 마을의 처치 곤란이라고 하니 얼마나 흐뭇한가”라며 인민의 낙원으로 선전한다. 쌀, 물, 땔감, 전기 걱정을 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 만세’를 외쳐야 하는 사람들, 바로 지금의 북한 현실이다.
남북정상회담 1년이 지난 2019년 4월의 오늘. 세상은 또 다시 시끌시끌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아파하는데 독재자는 평화의 전령사로 둔갑되어 ‘그들만의 평화’를 노래한다. 모두의 행복이 나래치는 ‘인민의 낙원’이라 선전하지만 정작 인민의 낙원에 인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는 이상촌에서 극한 고통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만 존재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인권은 분명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무기력하지만 온몸으로 저항하는 억센 북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빼앗긴 들에서 새봄을 기다리며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외침이 분단의 땅을 녹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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