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도큐먼트] 불망산에 어린 망자의 넋과 살아있는 자들의 ‘의무’

北, 구금시설 내 사망자 집단 소각·매장이 일상…아우슈비츠 같은 비극 반복 말아야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가 지난해 9월 공개한 북한 전거리 교화소 화장터 위성사진. /사진=미국 북한인권위원회 보고서 캡처

문명과 반(反)문명을 가르는 기준 중 하나는 망자(亡者)를 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죽은 자로부터 그 어떤 보상이나 대가도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인류는 아득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각자의 풍습대로 생의 마지막 길을 떠나는 이들을 배웅해왔다. 인간의 존엄성은 죽은 후에도 빛바랠 수 없다고 인류사를 관통하는 암묵적인 동의라도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망자를 대하는 방식을 보며 한 사회가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전 세계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캄보디아 킬링필드에서 일어난 일에 아연실색했다. 나치 독일과 크메르루주 정권의 반인륜성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학살한 후 그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극에 달했다. 아우슈비츠에선 하루 1,000구가 넘는 시신이 한꺼번에 소각됐고, 킬링필드에는 170여만 명의 시신이 집단 매장됐다. 눈부신 근대 문명을 이룩한 인류가 단지 민족주의와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같은 인간을 절멸해버리려 했던 흔적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반문명의 역사로 기록돼 있다.

이처럼 참회해야 하는 과거로 남겨졌어야 하는 만행은 불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북한 당국에 의한 자의적인 처형과 고문에 의한 사망은 우리가 지난 70여 년 동안 멈추지 못한 또 다른 비극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데이터베이스에는 1950년대부터 2021년 9월 현재까지 북한에서 ‘인권 침해’의 결과로 발생한 사망 사건 8,245건이 등록돼 있다.

이 중 비행장이나 장마당, 체육관 등에 주민을 대규모로 동원해 이뤄지는 공개처형은 4,174건, 국제사회의 눈을 피해 도 보안국 지하처형장과 같은 시설에서 진행하는 비공개처형은 820건에 달한다. 구금시설 탈출 시도자나 국경 인근 비법월경자, 강제낙태로 태어난 신생아 등을 현장에서 즉시 살해한 사례는 219건이다. 고문이나 영양실조, 치료 미비 등 북한 당국의 ‘직접적인 행동’에 의한 사망 사례도 무려 2,318건에 이른다.

그렇게 눈 감은 이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까. 수천 건의 사망 사건에 대한 증언 중 당국이 시신만큼은 바른 곳에 묻어줬다는 진술은 찾아볼 수 없다. 유족에게 시신을 인계해 장례를 치렀다는 증언도 손에 꼽는다. 그 대신 ‘마대로 시신을 둘둘 말아 싣고 갔다’거나 ‘일주일에 한 번 불망산에 시신을 모아놓고 태웠다’거나 ‘구덩이를 파 시신을 꺾어 넣고 흙으로 대충 덮었다’는 진술이 수백 수천 건이다. 수천 년간 같은 역사를 공유했고, 지금도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21세기에 겪는 일이다.

북한 당국이 망자를 대하는 방식은 살아남은 자의 인간성마저 상실하게 한다. 증언자들은 구금시설에서 사망한 이들을 화장실 옆에 방치하거나 창고에 쌓아두는 게 일상이었고, 산골짜기에 시신을 대충 묻어 시간이 지나면 짐승들에 의해 파헤쳐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밝힌다. 그들은 동료 수감자의 시신 수백, 수천 구가 묻힌 곳을 ‘꽃동산’이라고도 불렀다. 2000년대 북한의 교화소에 수감됐던 증언자들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죽은 사람을 비닐로 싼 다음 소달구지로 끌고 가서 산에 묻어야 했어요. 구덩이가 작으니까 시신을 세 번 꺾어서 묻으라더군요.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저마다 하겠다고들 했어요. 그걸 하면 그날은 교화소에서 먹을 걸 좀 더 주니까요. 살아남으려고 그런 일도 하겠다고 했어요.”

“산골짜기에서 죽은 사람 서른 명씩 한꺼번에 태우고는 했어요. 큰 수레에 넣고 장작을 채워서 태우면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났어요. 다 태우고 나면 재를 퍼내는데, 뼛가루가 이만큼 쌓인 걸 보면 그게 사람의 것이란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교화소 안에서 죽으면 가족에게 따로 알려주는 것도 없어요. 죄를 다 씻지 못하고 죽었으니 더 큰 죄를 지을 뿐이죠.”

독자들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들지도 모를 이 글을 굳이 이 시점에 쓰는 이유는 1년 전,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소각된 사건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북한의 만행을 두고 코로나19 상황에서 방역 수칙에 따라 화장(火葬)해준 것이라던 일각의 주장도 기억한다. 그러나 북한 당국에 의해 살해된 이들의 육신이 그간 어떻게 처리돼왔는지 알고 나면, 이날 북한이 보인 기행을 단순히 장례의 한 방식이라 존중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는 북한 당국의 반문명적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를 이야기한 지 2년 반 만에 우리 국민을 불태워 죽인 게 북한 정권이다. 시신이 아닌 부유물을 태웠을 뿐이란 북한의 주장을 억지로 믿어보려 해도, 그 이후 1년간 망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남북 간 그 어떤 공동의 노력도 없었던 게 현실이다. 피해자는 현재까지 ‘실종’ 상태로 처리돼 가족들은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다고 한다.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우리 국민을 이렇게 다루는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존엄을 잃어야 했을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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