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7일 매체를 통해 일제히 대남 비난에 나섰다.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 “참견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 “미국의 눈치를 보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실천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조미(북미)관계를 ‘중재’하는 듯이 여론화하면서 몸값을 올려보려 하는 남조선(한국) 당국자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며 “조미대화의 당사자는 말 그대로 우리와 미국이며 조미 적대관계의 발생근원으로 보아도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미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노력을 사실상 전면 부정한 셈이다.
이어 권 국장은 “지금 남조선 당국자들은 저들도 한판 끼여 무엇인가 크게 하고 있는듯한 냄새를 피우면서 제 설자리를 찾아보려고 북남(남북) 사이에도 여전히 다양한 경로로 그 무슨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듯한 여론을 내돌리고 있다”면서 “남조선 당국자들이 지금 북남 사이에도 그 무슨 다양한 교류와 물밑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내각기구인 외무성 담화 형식으로 입장을 표명해온 전례에 미뤄 소속 국장 개인 이름으로 담화를 발표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외무성 담화가 일반적 형식이었고, 지난 4월 18일에 외무성 북미국장이 조선중앙통신 기자 문답으로 폼페이오 장관 교체 요구 의견을 표시한 건 있었다”며 “(권 국장이) 담화 형식으로 한 건 처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특히 이번 담화의 내용에 대해 “미국에 대해서 ‘셈법을 바꾸라’는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우리가 하는 중재자 역할에 대해서도 계속 ‘당사자 역할을 하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은 여전히 우리 정부의 대화제의에 응답 없이 소극적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민족자주’ 원칙에 따른 남북선언의 철저한 이행과 근본적 태도변화를 촉구하고 당사자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남북공동선언을 비롯한 남북 간 합의를 차질 없이 이행해나간다는 입장이며, 이런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남과 북, 그리고 북미 간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바탕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해 계속 노력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비난을 모면해보려는 궁색한 변명’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얼마 전 남조선 당국자가 북유럽을 행각하는 과정에서 북남관계, 조미관계가 교착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치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며 “남조선 당국자의 발언을 굳이 평한다면 현실에 대한 맹목과 주관으로 일관된 편견이고 결과를 낳은 엄연한 과정도 무시한 아전인수 격의 생억지”라고 비난했다.
매체는 “사실상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현 사태를 놓고 진짜 책임을 느껴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남조선 당국”이라며 “말로는 북남선언들의 이행에 대해 떠들고 있지만 미국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관계의 끊임없는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인 조치들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해당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남조선 당국자’라는 표현으로 대신해 에둘러 비난했다. 북미 정상 간 친서 교환으로 대화 분위기가 다시금 싹트고 있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북한의 진전된 움직임을 요구한 데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전날(26일)에 이어 연일 미국의 태도변화, 정책변화를 촉구하며 공세에 나섰다.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국장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대화가 열리자면 미국이 올바른 셈법을 가지고 나와야 하며 그 시한부는 연말까지”라며 “미국과 대화를 하자고 하여도 협상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어야 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 협상을 해야 하며 온전한 대안을 가지고 나와야 협상도 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앞서 전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조미 수뇌분들이 아무리 새로운 관계수립을 위해 애쓴다고 하여도 대조선 적대감이 골수에 찬 정책 작성자들이 미국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 조미관계 개선도, 조선반도 비핵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누구든 우리의 자주권, 생존권을 짓밟으려 든다면 우리는 자위를 위한 실력행사의 방아쇠를 주저 없이 당길 것”이라고 위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