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매체, ‘백두밀영’ 소개해 김정일 업적 대대적 선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일 김정일의 생가라 주장하는 ‘백두밀영 고향집’에 대한 기사와 ‘혁명업적’을 두 면에 걸쳐 소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노동신문은 이날 2면 ‘태양의위업 받들어 조선의 영광 만방에 떨치시고’라는 기사에서 “항일혁명 투사들은 위대한 김정일을 혁명의 영도자로 받들어 모시고 백두산의 정기는 곧 위대한 장군님의 영웅적 기개로 되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진정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과 성장을 고이 지켜드린 백두산이었다”며 “송이송이 내리는 백두의 눈송이가 혁명의 아들을 감싸준 포단이었고, 사납게 울부짖는 백두의 눈보라가 혁명의 아들을 잠재운 자장가였으며, 사시철 푸르른 백두의 밀림은 혁명의 아들을 키워낸 고향집”이라고 선전했다.


이어 “천출명장의 위인상과 그이(김정일)께서 조국과 민족앞에 쌓으신 크나큰 업적을 담아 역사는 무게있게 기록되었다”면서 “김정일은 백두산의 아들이고, 백두산대국의 영원한 영상”이라고 치켜세웠다.


신문은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답사는 1956년 6월 5일 중학생들로 답사행군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소개하면서 김정일이 “역사적인 답사행군을 발기하고 언제나 대오의 맨 앞에서 답사단을 인솔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정일은 ‘남산 고급 중학교’ 학생이었다. 


또 신문은 1980년대 중엽에 김일성이 ‘백두산밀영’을 발기하도록 지시하고 현지에 와서 자리를 잡아주었으며, 1988년에 원상복구된 백두산밀영(김정일의 생가)을 돌아보고 만족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정일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높이 솟은 봉우리 이름도 ‘장수봉’에서 ‘정일봉’으로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가 한참이던 2000년 3월 김정일이 백두산을 찾아 “세울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백두의 정신을 실제 체험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부연했다.


북한은 1980년 초부터 김정일의 우상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백두산을 ‘혁명의 성지’, ‘조선혁명의 시원이 열린 곳’으로 선전했고, 이에 양강도 일대는 당원, 군인, 근로자, 학생들의 교양지이며 ‘혁명의 보물고’가 됐다. 


북한이 이처럼 김정일의 생가라 주장하는 백두밀영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소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지난달 소개된 ‘백두 밀영’ 화재설(說)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는 혁명의 성지인 ‘백두 밀영’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대내적으로 과시하고, 김정일의 업적을 이어받아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