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청년들이 ‘아빠’라는 호칭을 썼다가 예의범절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도(道)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이하 청년동맹)에 불려 가 비판받는 일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비판받은 청년들은 이를 단순한 예절 문제라기보다 한국 영상물을 통해 익숙해진 표현과 말투를 겨냥한 언어 단속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28일 데일리NK에 “이달 중순 청진시 포항구역의 동상 주변에서 청년 3명이 대화 도중 ‘아빠’라는 말을 썼다가 그곳을 지나던 한 간부의 눈에 걸려 도 청년동맹에 불려 가게 됐다”며 “이들은 ‘어린아이도 아니고 호칭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느냐’, ‘도덕과 예의범절을 물에 말아 먹었느냐’는 호된 질타를 받았다”고 전했다.
북한에서는 청년들의 옷차림이나 머리단장, 행동, 언어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청년동맹 조직 차원에서 이를 문제시하곤 한다. 이번에는 공공장소에서 청년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된 한 간부가 ‘아빠’라는 호칭을 문제 삼아 이들을 도 청년동맹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빠’는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를 때나 사용하는 호칭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성인이 된 청년이 ‘아빠’라고 부르는 것은 제 나이에 맞지 않는 단어 사용일 뿐만 아니라 웃어른에 대해 예의를 갖추지 않은 행동으로 여겨진다.
실제 도 청년동맹은 이들에게 성인은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나이에 맞는 언어생활과 도덕적 품행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판받은 청년들은 이번 일을 단순한 예의범절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 영상물에 등장하는 말투와 표현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늘어나자, 당국이 사소한 호칭까지 문제 삼으며 단속하려 든다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청년들은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고 동무들끼리 ‘아빠’라는 말을 썼다고 문제 삼는 것은 생트집이나 다름없다, 결국 한국 영상물을 통해 익숙해진 표현을 단속하려는 것이라며 수군댔다”며 “겉으로는 예의범절을 내세웠으나 사실상 청년들의 언어생활에 깊숙하게 침투한 한국 문화를 뿌리 뽑으려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청년동맹이 예절과 도덕을 내세웠음에도 청년들이 이를 한국식 언어문화 통제로 연결 지어 받아들인 것은 그만큼 주민 내부적으로 당국의 외부 사조 단속에 예민해져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 평가된다.
특히 ‘평양문화어보호법’ 시행 이후 특정 단어나 표현뿐만 아니라 말투와 억양, 호칭을 사용하는 사람의 나이와 대화 상황까지 문제 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인 언어도 언제든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청년들은 한국 영상물의 영향으로 ‘오빠’라는 호칭은 물론 ‘여친’, ‘남친’과 같은 한국식 줄임말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고마워’, ‘사랑해’처럼 감정을 직접 표현하는 말도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이 같은 단어나 표현들은 물론 말투와 호칭, 억양까지 철저히 단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데일리NK가 입수한 2023년형 북한 스마트폰에서도 ‘여친’과 ‘남친’을 입력하면 각각 ‘여자친구’와 ‘남자친구’로 자동 수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휴대전화 입력 체계에서도 청년층이 자주 사용하는 한국식 줄임말을 교정 대상으로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소식통은 “평양문화어보호법이 나온 뒤에는 금지된 말이 아니더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도로 사용했는지까지 따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당국이 예의범절을 이유로 지적해도 청년들은 한국말 단속이라 여길 정도로 언어 통제에 민감해져 있어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조차 주변을 의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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