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중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평양 밖 북조선>, 중국에서 만난 탈북 여성의 인권 문제를 다룬 <엄마의 엄마> 등 북중 접경지역에서 북한에 대한 현장 연구를 주로 해온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가 최근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만났다. 지난해 11월 중국 당국으로부터 일방적인 입국 거부 조치를 당한 것이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접경에서 수집한 북한 물건들을 모아 연구하면서 이를 시리즈로 출판하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나 반강제적으로 북한 연구의 2막을 열게 된 강 교수를 서울시 마포구 데일리NK 사무실에서 직접 만났다.
며칠 전 러시아에서 돌아왔다는 강 교수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과 배낭을 매고 약속 장소로 왔다. 또 다시 출국할 것 같은 차림으로 온 것. 인터뷰 후 곧바로 학생들을 인솔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로 간단다. 현장 연구와 현장 교육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그에게 중국이라는 활동 무대가 막힌 셈인데 나름 큰 좌절이 아니냐고 물었다.
강 교수는 “연구에 대한 좌절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국에 가서 북한을 바라보면 마음이 편해졌다”며 “한 달에 한 번씩 접경에 서는 순간 내가 서야 할 자리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중국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당분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부분이 허전한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과 북한의 모습을 연구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부분이 있었다는 얘기다.
혹자는 북중 접경 지역이 북한의 전체가 아닌데 접경지역에만 점철된 연구로는 북한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비판한다. 이에 강 교수는 “북중 접경지역은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함경북도를 포함하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다. 평양만이 북한의 모습이 아니듯 접경만이 북한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북한 사회와 주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접경지역 연구에 집중해 온 이유”라고 말했다.
[다음은 강 교수와 일문일답]
-수년간 한달에 한번씩 중국을 방문해 북한 연구를 해왔다. 왜 갑자기 중국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한 것인가. 당시 상황이 어땠나.
“일행과 중국 상하이(上海)를 거쳐 (랴오닝성) 단둥(丹東)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비행기가 상하이 공항에 착륙하기 전 중국 공항 관제탑에서 기내로 연락을 했는데 승객 중에 나를 가장 먼저 내리게 하라는 것이었다. 항공사 측도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 비행기에서 내렸더니 이미 중국 출입국관리소 직원 3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전화와 여권을 압수하고는 어떤 배경도 설명하지 않고 당신은 중국에 입국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당시에는 이유도 모르고 입국 거부를 당한 것이다. 즉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부산으로 갈 것인지 서울로 갈 것인지만 선택하라고 하더라. 상하이 공항에 내린지 1시간 만에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상하이 영사관을 통해 입국 거부 이유를 물어보니 중국은 ‘당신은 관광 비자를 발급 받아 중국에 입국해 왔는데 그동안 관광 이외의 일을 했다’는 한 줄의 답변을 보내왔다. 지난해에도 북중 접경지역에서 검문을 당했는데 그때 공안 시스템에 입국 거부자라는 표시가 떠서 2시간 가량 검문소에 발이 묶여 있었던 적이 있다. 그 이후에 중국 들어갈 때는 괜찮았는데 이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마도 중국 정부는 중국에서 내가 해온 북한 주민 면접이나 북중 접경 지역에 대한 연구를 정치적 행위로 간주하고 주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 앞으로 몇년간 중국에 입국하지 못 할텐데, 마무리 하지 못한 중국에서의 연구나 프로젝트 계획은 어떤 것들이 있었나.
“북중 접경 지역에 대한 사진과 글을 담아 2권의 책으로 출근했다. 5편의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만 기존에 수집해온 자료가 있어서 두 번 정도는 책으로 연재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을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북한 주민을 만나는 것과 접경을 조사하는 것. 다른 지역 즉, 러시아에서도 북한 주민을 만날 수 있지만 북한 주민의 삶을 자세히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중국이 연구의 중심이었는데 이제 갈 수 없기 때문에 러시아에서의 현지 연구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 중국에서 입국 거부 조치를 당한 후 한달 만에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는 책을 출간했다. 중국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질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연구 지역이 곧바로 러시아로 넘어갔다. 러시아 현지연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2년이 넘었다. 지난 5년 동안 명절을 한 번도 국내에서 보낸 적이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중국보다 북한 주민을 만나서 인터뷰하기가 자유롭다. 일단 공안의 감시를 받지 않고 길에서도 북한 주민을 만날 수 있다. 물론 말을 걸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대답을 해주고 대화가 이어져서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든 러시아에서든 북한 주민을 만나면 금새 친해진다. 형님도 되고 아우도 되는데 거기까지다. 함께 밥을 먹어도 나갈 때는 각자 모른 척하고 나가야 한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띌까봐. 현장에서 필드웍(field work)을 하다보면 남북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이 남는다. 그런 생각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든다.”
– 중국에서 북한 주민 100명을 면접하기도 했고 탈북 여성을 집중적으로 인터뷰 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도 북한 노동자들 만나면서 연구하고 있는데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누구인가.
“인터뷰했던 모든 대상자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도 이번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의 2부에 나오는 ‘리 선생’이 마음에 남는다. 이 선생은 러시아에 파견된 지 10년이 된 분이었는데 파견 마지막 해인 10년차가 돼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미 자유를 경험했기 때문에 북한으로 돌아가서 조직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 사회에서 다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북에 남아있는 가족과 자유를 원하는 자아 사이에서 고뇌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러시아에서도, 중국에서도 북한 주민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더 확신하게 되는 것은 외부 정보 유입의 중요성이다. 외부 정보를 접하고 외부 세계를 알게 되면 반드시 바뀐다. 북한 체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북한 주민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외부 세계의 정보 제공 자체가 북한 주민 인권 신장과 직결된다는 것을 북한 주민을 면접할 때마다 느낀다.”
– 주요 연구 활동지였던 중국을 포기하고 러시아 등 다른 곳을 활동 무대로 삼아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북한 관련해서 어떤 연구 또는 어떤 저작 활동을 할 계획인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러시아나 혹은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다른 지역에서 기존에 해오던 연구를 이어가고 싶고 또 매년 북한 관련 교양 서적을 출간해서 대중들이 북한과 통일을 일상에서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사실 책을 낼 때마다 포기하고 싶기도 하다. 북한 분야에서 책이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는데도 불구하고 200권이 팔렸다. 사실 책을 낼 때마다 적자를 낸다. 주변에서 책을 내는 게 의미가 없지 않냐는 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조금씩이라고 북한과 통일에 대한 생각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계속 책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