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원의 오해…헌법 제3조 의미 깊이 인식해야

한나라당 홍준표의원이 5월 1일 인터넷매체 폴리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3조 ‘영토조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취지로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원문을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줄임):

“북한이 91년 유엔에 가입했는데 국제법상으로 북한은 국가입니다. 냉전시대의 헌법 때문에 헌법상 국가로 인정할 수는 없지만 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합니다. 통일이 될 때까지 현실적으로 우리의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영토조항을 유보할 수 있습니다. 보수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겠죠. 그러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이런 주장은] 냉전시대의 사고라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데 왜 남북정상회담을 했고 또 추진합니까. 그것은 곤란한 이야기입니다. 서독도 동독을 유보조항으로 두어 가지고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으로 국가로 인정했습니다. 그 전례를 우리가 봐야 합니다.”

홍의원의 주장은 그가 보수정당 소속이라는 점에서 헌법3조의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뒤집어서 그가 보수정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한 국가의 근간이 되는 영토조항의 개정을 주장하였다면, 헌법3조의 개정을 주장하는 측의 논리가 얼마간의 설득력을 갖고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물론 관건은 이 설득력이 피상적이냐, 아니면 진정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것이냐에 있을 것이다.

우선 홍의원의 위의 주장에서 사실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그가 “서독도 동독을 유보조항으로…”라고 해석한 통일 전 서독의 기본법 제23조는 “이 기본법은 우선 서독 지역의 각 주들에 유효하고 독일의 다른 부분(동독)에는 편입 이후에 발효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문구만을 볼 때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이라는 나라의 영토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지, 그 영토가 ‘제한되어 있다’는 내용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이 조항에 따르면 동독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할 수 없음은 명백하고, ‘현실적으로’ 인정할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서독의 경계를 현실적으로 인정할 경우, 이 경계가 일반 주권국가들 사이의 경계라면 위 조항은 폐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기본법은 ‘동서냉전’이 한창이던 1949년에 제정되었고 아데나워 수상은 동독을 국제법적으로도 또 현실적으로도 인정하지 않았으며, 1990년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개정되지 않았다.

1973년에야 비로소 브란트의 동방정책에 의해 동서독은 기본조약을 맺고 서독은 ‘현실적으로’ 동독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때 쌍방은 정상적인 이웃국가간의 관계를 맺기 위하여 서로의 주권과 현재의 경계선을 인정하고 내치와 외치에 대하여 불간섭을 천명하였고, 곧 이어서 동서독은 유엔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제법적으로’ 서독은 동독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이유는 동독이 서독에게 외국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며, 외국끼리는 통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본협정 이후에도 동서독은 대사를 교환한 것이 아니라, 단지 대표부만을 상대국의 수도에 두었고, 독일헌법재판소는 동서독의 경계선을 마치 주(州)들 간의 경계선과 같이 해석하여 기본법 제23조와의 마찰을 피했다.

다른 한편 독일의 경우 매우 중요한 점은 국적조항이었다. 서독의 기본법은 서독 국적을 서독지역의 독일인에게만 한정하지 않았다. 동독 지역의 주민 역시 서독의 국적을 지녔다고 명시하여 이들이 서독의 주권이 미치는 곳, 예를 들어 제3국의 대사관에 들어올 경우 곧바로 여권발급을 비롯한 모든 보호조치를 하도록 못 박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1973년의 기본조약을 체결할 당시, 서독은 동독에게 자국의 통일정책과 국적조항은 이 기본협정을 통해 전혀 영향 받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통일을 국가목표로 하려면 영토조항 필요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서독의 이런 입장이 논리적으로 일관되느냐 하는 점이다. 즉 현실적으로는 국가로서 인정하면서 국제법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또 동독의 주권과 양독의 경계선을 인정하면서 동독지역의 주민에게 서독의 국적을 부여하는 것이 과연 논리적으로 합치되는냐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도대체 논리적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첫째, 통일을 국가목표로 할 경우, 영토조항을 헌법에 명시하고 미수복 지역의 정권을 ‘정부를 참칭한 불법단체’로 보아 국제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미수복 지역주민도 이 영토조항에 따르면 자국 국민이다.
둘째, 통일을 국가목표에서 배제하고 분단된 양국을 온전한 독립국으로, 따라서 양국 간의 관계도 외국으로 보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는 동서독 기본협정 이전의 서독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이전의, 그리고 순전히 형식적으로는(남북기본합의서가 양측 모두에 의해 비준이 안 되었으므로) 현재의 한국의 입장이다.

두 번째 경우는 동서독 기본협정 이후 동독이 취한 입장이다. 동독은 처음에는 통일을 국가목표로 설정하였지만, 1973년 동서독 기본협정 이후에는 이를 철회했다. 심지어는 통일을 염원하는 가사가 들어있는 동독국가를 연주는 할 수 있어도 부르지는 못하게 하였다. 순전히 형식논리적으로 보아 동독의 입장이 가장 수미일관하지만 문제는 물론 통일을 포기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입장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서독이 동독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이산가족들과 동독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즉 동독과 이산가족 왕래와 합치, 우편과 교통, 통신 등을 위한 협정을 맺기 위해서 동독을 현실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서독의 국가목표인 ‘자유선거’에 의한 통일과 동독주민을 포기할 수 없기에 동독의 주권을 현실적으로 인정한 기본협정에도 불구하고 통일정책과 국적문제는 전혀 변동이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형식논리적 문제가 발생하였은 명백하다.

즉 통일을 지향하는 한, ‘현재의 분단현실’과 ‘미래의 통일된 상황’ 사이에 간극이 없을 수가 없다. 이때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를 당겨 붙이기 위해 영토조항이든, 국적조항이든 형식논리적 불일치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독일이나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양독과 남북한 간의 관계를 “특별한 종류” 혹은 “이중적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불일치의 근원을 오해한 것이 홍준표의원의 주장임은 이제 명백하다.

‘유엔 동시가입’이 영토조항 개정근거 안돼

과거 동서독과 현재의 남북한은 모두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지만, 그리고 명시적이든, 아니면 묵시적이든 상대방을 실체로 인정하고 있지만 국제법적으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통일이라는 지상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당사국들과 다른 일반 국가와는 입장이 같을 수가 없다. 즉 유엔에 동시 가입하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국가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는 홍준표의원의 주장의 깊이는 너무나 피상적인 것이다.

또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호칭상의 문제와 통일이라는 막대한 목표의 무게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였다. 독일의 경우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해서 양국의 총리가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니며, 한국의 경우 국제법적으로 북한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직 돈만을 바라는 북한정권이 인도주의적 문제를 이벤트화 하여 울궈 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헌법3조 영토조항이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4조와 불일치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 이유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첫째 통일이란 자국이 자국과 할 수 없고, 자국과 타국 간에나 가능하다면, 북한이 북한지역을 통치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둘째 “영토조항의 형식논리에 따르면, 현행헌법상 가능한 통일방안은 결국 대한민국헌법이 존속하는 가운데 북한정권이 소멸되어 스스로 남한정부의 지배하에 들어오는 것 즉, 흡수통일 이외에 다른 통일방식의 여지가 없게 된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통일부)

그러나 통일이 이미 온전한 자국이 자국과 결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국이 외국과 결합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통일을 미수복 지역의 수복으로, 혹은 다른 지역이 자국에 편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면’, 북한지역의 통치현실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헌법3조와 헌법4조가 의미론적으로 불일치한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결국 헌법3조에 대한 개정 주장의 남은 근거라고는 흡수통일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뿐이다. 독일의 경우 동독의회에서 자발적으로 국가해산을 결의하여 결과적으로 서독에 흡수되는 형식을 취하였지만, 한국정부는 독일식 흡수통일을 배격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정권의 통일정책이 헌법조항을 없는 것으로 무화시키는, 즉 본말전도가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헌법이란 정부의 정책을 제한하는 규범이지, 정부의 정책이 헌법을 무화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의 규범적 측면 이외에 남과 북이 국제법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별개의 국가로서 통일을 하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물론 지금까지 국가연합이나 연방제 등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핵심은 최종적으로 1국가 1체제가 되는 과정이다.

도대체 어떤 체제로 통일을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헌법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명시하고 있으며, 북한의 현 체제인 수령주의는 전체주의로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양립할 수가 없다. 만일 자유선거에 의해 대한민국 체제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으면 북한은 결코 자유선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남한 국민 중 골수 친북좌파도 북한에서 살겠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것을 보면 한국의 경우도 북한과 같은 수령독재체제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현재 김대중-김정일식 통일론(6.15 선언)을 지지하는 친북좌파는 남북의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아니라 마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인 듯이 포장하여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로의 통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얼핏 듣기에 ‘부의 독점’과 ‘자유의 억압’ 모두를 해결할 이상처럼 들리는 이런 주장은 실은 더도 덜도 아니고 북한체제를 유지하여 흡수통일을 피하기 위한 호도책에 불과하다. 우선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다. 김정일과 그의 수하 일당은 300만 북한인민을 굶겨 죽이면서도 8억불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김일성의 무덤을 새로 만드는 데 썼다. 사회주의라면 무엇인가 인민과 나누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있어도 안 나누는 것이 북한의 수령주의다. 결론적으로 제3의 체제를 배제하면 어느 한 쪽으로의 흡수통일을 피할 수 없고, 친북좌파에게 적화 이외의 흡수통일은 신성모독보다 더한 타부(taboo)이기 때문에 제3의 체제로의 통일을 전략적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이제 분명해진 것은 헌법3조 영토조항을 개정하자는 저의는 오로지 흡수통일의 반대에 있으며, 겉으로 내세우는 형식논리적, 의미론적 문제는 실은 남북이 모두 문제 삼지도 않고 삼을 필요도 없는 부차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당 강령에도 나와 있듯이 북한도 한반도 적화라는 흡수통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 늦어도 15년 내에 김정일 정권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서라도’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수령체제 하에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곧바로 북한체제의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이때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한 국제법상의 독립된 주권국가라는 점은 영토조항의 개정근거라기 보다는, 거꾸로 한국의 헌법 내에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근거를 남겨두어야 한다는 근거인 것이다.

혹자는 국내법이 국제적으로는 무용지물일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것은 오해다. 동독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서독은 통일시 미영불소 전승4국으로부터 독일통일의 문제가 오로지 독일인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져야 된다는 점을 양해 받았다. 이 양해가 서로 외국관계인 독립국가들 사이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정말로 순진한 생각이다. 그것은 동독국민의 열망과 함께 바로 서독의 기본법에 통일의 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그리고 외세의 간섭 없이 통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헌법3조 영토조항을 개정한다는 것은 헌법4조가 명시한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의 하나로서 흡수통일의 길을 차단하는, 특히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함”이 본분인 보수(保守)정당의 의원들이라면 스스로의 무지와 포퓰리즘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무책임한 행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