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칼럼] 北 축구장 난동, ‘체제저항’ 몸짓 읽힌다

▲ 북한과 이란의 독일 월드컵축구 최종 예선에서 한 북한 관중이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하다 안전원에 의해 끌려나가는 모습 <출처:연합>

얼마 전에 북한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벌어진 북한과 이란의 월드컵예선 축구경기가 세계의 관심거리가 되는 모양이다. 축구경기를 관람하던 일부 관중들이 심판의 잘못된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며 난동(?)에 가까운 항의를 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이 소식이 북한에서 일어났기에 이상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것은 억압과 통제 그리고 이에 철저히 길들여진 사람들의 복종의 모습뿐이다. ‘집단체조’라고 하는 매스게임에서 10만 명의 사람들이 자로 그은 듯한 획일적인 움직임을 연출할 때,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아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불가사의한 일로 비춰진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북한의 획일성은 인간이 어디까지 길들여질 수 있는가 하는 극단의 상황이 확인되는 자리이다.

‘인간의 냄새’ 나는 거친 몸짓

그런데 지난 3월에 김일성경기장에서 나타난 군중들의 난동(?)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물병을 던지고 의자를 내팽기치며 삿대질까지 한다. 경기가 북한의 완패로 끝나자 경기장 밖으로 나온 군중은 이란 축구선수들이 탄 버스를 에워싸고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당시 상황에 대한 외신 보도는 심판과 이란 대표팀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란 선수단은 ‘매우 적대적인 분위기’,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설명했다.

조용하고 순종적인 모습만 보였던 북한 사람들이 거친 행동을 보인 것이 외부에서는 어떤 ‘변화의 기미’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그 모습은 분명 ‘집단체조’에서 보여줬던 기계적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냄새가 나는 사람의 거친 몸짓이었다.

한둘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항의의 몸짓에서 어떤 변혁의 기미를 감지해낼 수 있을까?

대규모의 군중이 경찰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거칠게 항의하는 모습은 비록 그것이 정치적인 것과 무관하다 하더라도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 ‘인민의 폭발성’ 대비하고 있나

언론에 보도된 한 사진은 김일성경기장에서 일어난 사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통제하려 모여드는 보안원들에게 거친 몸싸움으로 대드는 한 남자가 클로즈업된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노란 견장을 단 보안원들이 우르르 몰려들고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한 남자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한 장면의 사진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중국의 천안문 사태 때 시위대를 진압한 탱크에 맞서는 한 남자의 모습과 겹쳐진다. 두 사진을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언젠가 북한에서 일어날 민중의 거친 항의가 작은 싹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북한 사람이 권력에 대드는 이 사진은 매우 은유적이다. 북한에서 인민보안성(옛 사회안전부)은 인민들을 직접 통제하고 다스리는 기관으로서 국가권력의 한 축이다.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그 남자의 모습이 바로 지금 북한 사람들의 속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진의 배경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그 남자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너나없이 내민 손가락질이 모두 보안원들에게 향해져 있다. 감히 국가권력에 삿대질하는 모습이다.

변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미한 수준이지만 그 변화에서 우리는 커다란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곪은 것은 터지게 되어 있고, 눌린 것은 반드시 폭발하게 되어 있다.

썩을 대로 썩은 북한 권력이, 곪을 대로 곪은 사회를 막고 다스리기에는 어느덧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억눌린 그들의 감정이 어느 순간 터진다면 그 폭발성은 대단하리라. 거친 변화의 물결은 북한체제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을 것이다.

한국은 과연 그때를 대비하고 있는가?

장 호(황해도 출신, 1989년 입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