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비핵화 협상’의 중간성적표…‘기대’와 ‘현실’의 괴리

활발하게 진행되는 듯 했던 북미 비핵화 협상이 다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한 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싱가포르 외에 3-4곳을 검토하고 있다”며 북미정상회담의 구체적 장소까지 언급했지만 정상회담 날짜는 11월 중간선거 이후로 미룬 상태다. 선거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를 대긴 했지만, 확실한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선거 전에 북미정상회담을 하는 것이 득 될 게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협상 바라보는 두 가지 기류

숨고르기에 들어간 비핵화 협상에서는 크게 두 가지 기류가 읽힌다.

첫째, 협상의 순조로운 진행을 강조하는 목소리다. 이는 주로 한미 정부당국자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다.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 온 폼페이오 장관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길을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가 정말 좋다며 방북 임무를 수행한 폼페이오 장관을 “환상적이며 스타”라고까지 치켜세웠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도 “폼페이오 장관의 평양 방문에 많은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고, 강경화 외교장관도 폼페이오 장관이 “좋은 성과를 갖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금까지 아주 잘 진행돼 왔다”고 평가했다.

둘째, 장밋빛 낙관을 경계하게 하는 흐름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의 대북제재 고수 의지이다. 한국에서 대북제재 해제 검토 발언이 나오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미국 승인 없이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對)한국 압박에 나선 것은 미국이 대북협상을 녹록지 않게 보고 있음을 반증한다. 북한이 최근 들어 제재 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결정적인 비핵화 조치 전에는 제재를 완화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비핵화 협상이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소식도 아직 없다. 비핵화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차지하고라도 당장의 현안인 핵 신고나 영변핵시설 폐기와 종전선언을 맞바꾸는 문제를 놓고 폼페이오 장관은 “협상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핵 신고를 미루는 방안을 제안해 놓고, 강경화 장관이 “한미 간에 생각을 꼭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듯이 비핵화 협상안에 대한 한미 간 이견이 완전히 해소됐는지도 명확지 않다.

비핵화 협상은 중요한 진전을 이루고 있는가

비핵화 협상은 지금 정말 중요한 진전을 이루고 있는 것일까? 이 시점에 우리는 비핵화 협상의 현주소에 대해 차분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일단, 북미 간에 진행되고 있는 비핵화 협상의 모든 내용이 알려지고 있지는 않은 만큼, 한미 당국자들이 공개하지 않은 중요한 내용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 당국자들의 긍정적인 언급들이 이런 물밑협상에 근거한 것이라면 조만간 중요한 협상 타결 발표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물밑협상에서도 큰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대’는 조금 과도한 것일 수도 있다. 비핵화 협상에 대한 우리의 기대감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백두산 천지에서 손을 맞잡은 것과 같은 강렬한 이미지로 인해 상당히 고양돼 있는 상태다.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의 계기가 됐던 ‘9월 평양공동선언’의 비핵화 관련 합의에 대해서도 차분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북측은 미국이 6·12 북미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상응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와 같은 추가적인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이 합의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까지 협상카드로 올려놨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타협의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지 이 자체로 실질적인 협상 타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핵 폐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핵 신고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태다.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지난달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기대현실을 구분해야

여기서 우리는 ‘기대’와 ‘현실’을 구분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2차 북미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예고된 상황에서, 또 아직까지도 남북 정상이 평양과 백두산에서 만들어낸 화해의 이미지가 강렬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비핵화 협상이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게 된다. 실제로 그런 ‘기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면 누구나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가 ‘현실’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근거가 없다.

지금의 비핵화 협상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쪽이 ‘진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쪽이 ‘보수’라는 편향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듯 하다. 하지만,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차분하게 분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진보나 보수라는 시각에 갇혀 그 시각에 맞춰 현실을 해석하려 한다면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북관계처럼 이념적 성향에서 자유롭기 힘든 분야도 없지만, 남북관계를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해하고 분석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부정적일 이유 없지만 낙관도 일러

지금은 비핵화 협상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중요한 고비에 놓여 있다. 폼페이오의 방북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이는 비건-최선희의 실무협상에서 추가적인 협상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일정 등 분위기는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협상타결의 실마리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 또한 하나의 변수가 될 것이다.

상황을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지만 섣부른 낙관 또한 너무 이르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기대’와 ‘현실’을 냉철히 구분해 볼 줄 아는 차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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