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 비핵화 의지, ‘진실의 문’에 다가서나?

김정은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공식방문을 마치고 5일 오전 전용열차로 평양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 간의 장외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하면서도 영변 핵시설의 어느 부분을 폐기할지 불명확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북한은 자신들이 요구한 것은 민생용 일부 제재 해제이며 영변 핵시설 전체의 폐기 의사를 밝힌 것이 분명하다고 맞서고 있다.

언뜻 보면 북미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그런 것도 아니다. 제재 해제와 관련해 북한은 2016~2017년에 채택된 유엔 제재 5건 가운데 민생 관련 제재를 해제해달라고 주장한다. 석탄과 광산물, 수산물, 섬유류 수출 금지, 원유 수입 제한, 노동자 송출 단계적 금지 등 북한을 옥죄는 제재들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를 일부 민생 제재라고 표현했지만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든 아픈 부분이 이 같은 제재이니만큼, 북한이 말하는 일부 제재는 미국이 볼 때는 제재 전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내놓은 카드가 영변 핵시설의 일부냐 전체냐의 논쟁은 양측의 주장에 편차가 있긴 하나 북한의 주장을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영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놓은 역사가 없다”고까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북한이 영변에 대한 과학적 검증을 수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1일 새벽 하노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의 작업으로 (영변 핵시설을)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고 말했다. ‘입회’라는 말은 보통 참관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리 외무상의 말은 미국의 전문가, 기술자들을 영변에 불러 폐기 작업을 하기는 하겠으나 시료 채취를 통해 과거 핵의 자취를 찾는 과학적 검증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2008년 6자회담 좌초의 이유가 됐던 과학적 검증을 여전히 수용할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영변 폐기할테니 거의 모든 제재 풀어달라

북한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영변 핵시설을 전부 폐기하는 대가로 최근의 유엔 제재 5건 가운데 민생 제재, 즉 북한이 아파하는 거의 모든 제재를 풀어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영변 이후의 비핵화 과정이 제대로 진행되겠느냐는 것이다.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개발의 상징적 장소이고 여전히 중요한 곳이긴 하지만, 영변이 북한 핵의 전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영변 외 지역에 존재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과 이미 추출된 핵물질, 핵탄두, ICBM 등의 문제는 영변 핵시설이 폐기된 뒤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더구나 영변 핵시설은 이미 실체가 알려진 곳이지만, 영변 이외의 핵시설과 핵물질 등은 실체가 명확히 파악돼 있지 않기 때문에 비핵화 협상이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변 폐기와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제재들을 교환해버리면, 더 어려운 영변 외 비핵화를 강제할 협상카드가 미국과 국제사회에게는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사실상의 전면 제재 해제를 요구한 것은 협상용인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일단 크게 불러놔야 일부 제재라도 해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사실상의 전면 제재 해제를 협상용으로 올려놓았다면 영변뿐 아니라 영변 외 비핵화 역시 협상용으로 올려놓았어야 했다. 자신들은 영변 폐기 의사만을 밝히면서 사실상의 전면제제 해제를 요구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최선희 리용호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1일 새벽(현지시각) 2차 미북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데 대한 입장 등을 밝혔다. 리영호의 입장 발표 후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범위는?

지난해 초 북한이 국면전환을 시작한 이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은 여전한 논란의 대상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 시각이 다를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히는 상황에서 딱히 이를 부인할만한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단 북한의 말을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비핵화의 범위를 영변으로 한정하려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영변 외 핵시설과 핵물질 등이 현존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영변 외 지역의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좀 더 지켜볼 부분이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이번 협상안을 “첫 단계 공정”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리 외무상의 이 말이 첫 단계 공정은 영변 핵시설 폐기, 그 다음 단계 공정은 영변 외 지역의 핵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다행한 일이다.

미국이 북한의 카드를 거부한 만큼 북미 간 협상이 재개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카드의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관건은 북한이 영변 외 지역의 핵폐기를 받아들일 것이냐이다.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이 있는지 ‘진실의 문’을 마주할 때가 된 것이다.

, ‘진실의 문통과할까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의외의 결렬로 끝난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중재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북한과의 관계가 괜찮다는 지금 우리 정부가 북한을 접촉해 교착상태의 돌파구를 찾는 일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있게 될 남북 접촉의 핵심은 북한이 ‘진실의 문’을 통과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물론 단순 확인이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진실의 문’을 통과하는데 미온적이라면 우리 정부가 설득해서 그 문을 넘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보여줘야 미국을 설득해 제재의 일부 완화라도 추진해볼 수가 있다. 우리 정부가 과연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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