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커스] 북한의 SLBM과 준비 안 된 비핵화 협상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 3호’. /사진=조선중앙통신

미국과 북한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지난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7개월여 만이다. 그 사이 6월에는 판문점 남북미 정상들의 ‘깜짝 회동’도 있었지만, 그 회동엔 ‘만남을 위한 만남’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물론 이번 협상은 정상들의 만남이 아닌 실무 차원의 회담이지만 이번 만남에서도 비핵화와 관련한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오긴 어려울 것 같다. 양측이 여전히 비핵화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나는 것이고, 비핵화 방식이나 순서와 관련해서도 이전과 동일한 난항을 겪을 개연성이 짙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북한 당국의 불신은 생각보다 훨씬 뿌리 깊은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차례의 미사일 도발에 그토록 관대한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미북 실무협상을 앞두고도 이중 플레이를 하며 여전히 자신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샅바를 쥐려 하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 당국은 미국에 비해 수세적 위치에 몰려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협상도 하기 전에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시작하려는 그들의 낡은 습성은 11번째 도발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지나치고 말았다.

지난 1일 북한 외무성 제1부상 최선희는 자신의 명의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10월 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 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고, 다음날인 2일 아침 북한 당국은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인 북극성-3호를 발사 실험했다. 대화 제의 후 도발이라는 철지난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북한 당국은 지난달에도 미국에 대화를 제의한 지 반 나절 만에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었다. 9월 9일 북한 당국은 당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대화 제의 담화문을 발표하고 나서 이튿날인 10일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같은 북한 당국의 행태는 근래에 등장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2006년 7월 3일에도 북한 당국은 우리 측에 군사분야 접촉 등 대화를 제의해놓고 이틀 후인 7월 5일에는 스커드 및 노동급 미사일 6기와 대포동 2호 미사일 1기를 쏘아올린 바 있다.

북한 당국의 최근 SLBM 도발은 미국의 위기감을 극도로 조성하며 이틀 후에 있을 예비협상에서 미국의 반응을 확인해 보려 한 것일 수 있다. 예비협상에서 북한 대표는 미국이 새로운 접근법을 가져올 것인지, 여전히 자신들이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을 제시할지를 확인한 후 다음날 예정돼 있는 실무협상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내놓으려 했을 것이다. 헌데 이번 SLBM 도발로 미국이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자신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SLBM 도발은 선을 넘어서는 오버 액션이었다. 북한 당국의 이번 도발로 실무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을 내놨지만 향후 대북 인식이 근본적 변화를 겪을 공산도 크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차례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관대하게 여긴 것은 그것들이 미국 안보와는 무관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나 SLBM은 성격이 판이하다. 그 은밀성 때문에 탐지가 어렵고, 사실상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탄도미사일과 동일한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도발은 예사롭지 않게 판단할 것이다. 북한이 협상 지렛대의 확보 차원을 넘어 완전한 승리를 담보한 후 협상에 나서려고 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가뜩이나 국내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당국의 이번 도발은 대북 추진력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도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인해 탄핵 조사의 위기에 몰려 있다. 대북 협상에서 원 톱(one top)이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스캔들에 연루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화, 민주 할 것 없이 미국 의회 내에서는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 혹은 동시 병행적 조치를 반대하며 일괄타결식 해법만이 북한 비핵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들이 부쩍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단계적 비핵화의 방안으로 북한의 잠정적인 핵동결을 모색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국내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있기 때문에 자신의 구상을 추진해나갈 동력은 많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향후 탄핵 정국이 본격화할 경우에는 의원들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있어 자신의 뜻을 접을 수도 있다. 이 경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법이 등장할 개연성도 짙어지는 것이다.

셋째, 북한의 SLBM 도발과 국내정치적 위기가 맞물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숨겨왔던 자신의 본래 스타일을 드러낼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초기에 ‘최대의 압박’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초기 대북정책 입안에 관여했던 캐슬린 맥팔런드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김정은을 패배자나 로켓맨으로 다시 부르면서 협상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맥팔런드 전 부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정국을 맞아 북한과 손쉬운 합의를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판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SLBM 도발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어놓은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중대한 도발이었고, 자신의 입지가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강경책으로 회귀하는 것이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믿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의 양보를 새로운 접근으로 수용하려던 북한 당국의 계산은 커다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넷째, 한국의 중재자(촉진자) 역할에도 물음표가 붙을 수 있다. 최근 첨예화한 ‘조국 법무무 장관 사태’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국민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북한 비핵화 이슈를 부각시키며 정부가 더욱 중재자 역할에 매진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정치 현안에 집중하기 위해 북핵 문제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방안이다. 전자의 경우,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변경된다면 가시적인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그 같은 결과가 더욱 명백해질 것이다. 이래저래 한국의 비핵화 촉진자 역할도 약발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들을 종합해볼 때 4일 열릴 예정인 비핵화 예비협상이나 5일 실무협상에서 예전과 다른 해법이 등장하거나 양측의 입장이 조율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오랜 기간 교착 상태에 빠졌던 실무협상을 재개한다는 의미 외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에는 양측 모두 준비가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미북 비핵화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여전히 결여돼 있다는 점은 향후 협상 과정을 다시 공전케 하는 근본 요인이 될 것이다. 한 차례 더 ‘만남을 위한 만남’보다는 실질적인 협상이 되도록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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