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아리랑] 김여정의 대남 협박 행보에 대한 4가지 의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각지에서는 대규모적인 대남 삐라(전단) 살포를 위한 준비 사업이 맹렬히 추진되고 있다”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지난 4일 김여정의 담화문 발표 이후 남북관계의 시계는 2017년 상황으로 돌아갈 듯한 모양새다. 보름 동안 북한에서는 몇 차례의 담화문이 발표되었고 2018년 ‘판문점의 봄’으로 탄생된 남북연락사무소는 지난 2008년 영변 핵시설 폭파와 같이 무너져 내렸다. 다른 점은 2008년은 비록 쇼였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비추어졌다면 이번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그 반대였다.

4일 김여정 담화 이후 남북관계의 흐름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현상을 보며 4가지 의문이 들었고 그에 대한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현재 북한의 행태를 보며 많은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다분히 ‘남한적’이라는 느낌이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북한의 입장에서, 그리고 김여정의 입장에서 하나의 가설을 생각해 봤다. 먼저 4가지 의문점을 살펴보고 가설을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의문점 하나, 김여정은 담화문에서 남북관계 중단의 핵심적인 문제로 대북 전단지 문제를 지목했다. 하지만 대북 전단지는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2010년부터 주기적으로 우리 측에 북한이 요구하던 불만 사항 가운데 하나였다. 김여정은 왜 ‘현시점’에서 이 문제를 빌미로 남북대화 중단과 대적 관계로의 전환을 선언했을까?

의문점 둘, 이번 사태로 김여정이 대남부문의 책임자로 드러났을 때 필자는 귀를 의심했다. 북한에서 대남담당은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이 꺼리는 자리다. 잘해봐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책임만 돌아오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차기 지도자로서 후계수업 내지 실적을 쌓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있으나 북한에서 후계자 수업을 쌓을 분야는 따로 있다. 김정일이 그랬듯 조직부와 선전부가 바로 그곳이다. 설득력이 떨어진다. 대남분야는 항상 등 뒤에서 당과 군의 원칙주의자들로부터 견제를 받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보직이 아니다. 후계자라면 더더욱 위험부담이 큰 자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김여정이 대남담당 책임자로 나섰을까?

의문점 셋, 4일 김여정 담화문 발표 이후 남북관계는 폭풍같은 변화를 예고했다. 그 가운데 7일 김정은이 정치국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정치국회의에서는 현재 상황과 전혀 동떨어진 화학공업, 평양시민 복지문제, 인사문제 등이 언급됐다. 그리고 이후 이 난리통에도 김정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김여정이 인민군 총참모부에 이후의 일정에 대해 지시를 내리는 모양새였다. 보통 군사행동을 동반한 파격적 움직임은 최고사령관 혹은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김정은 명의로 지시가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았던가? 김정은은 어디 갔나?

의문점 넷, 북한은 왜 특사파견을 거부했을까? 보통 남북대화 과정에 북한이 몽니를 자주 부리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특사를 자주 활용해 왔고 기본적인 만남까지는 대부분 성사됐었다. 북한도 우리 측 특사를 통해 본인들이 원하는 조건을 은밀히 제시했고 막후 특사접촉을 통해 대화가 성공한 사례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왜 특사거절뿐 아니라 그 사실까지 발표하는 행태를 보였을까?

이상의 네 가지 의문은 지난 보름간 발생한 사태를 보며 퍼뜩 떠오른 것들이다. 북한 전문가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의문들이다. 여기에 필자는 한 가지 가설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설일 수도 있다. 검증된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바로 현재 김정은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고 거기에 친동생인 김여정의 개인적 분노가 가미되었을 것이란 가설이다. 위에서 제시한 4가지 의문은 그러한 김정은의 건강 악화 원인 및 과정과 연관이 있다. 중증일지 경증일지는 알 수 없으나 김정은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가설을 중심에 두고 하나씩 살펴보자.

북미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만났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2018년부터 시작된 북핵 폐기를 둘러싼 협상과정은 김정은에게 생소함을 넘어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생애 최초로 노회한 주변국 정상들과 만남을 이어갔다.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협상과정 중에 김정은 본인의 의지로 파격적인 정책전환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2018년 이후에도 경제 제재는 계속 유지됐고 남한 정부가 약속했던 남북철도연결, 금강산, 개성공단 문제도 오리무중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유일하게 배급제가 유지되던 평양시민들의 생활 수준도 정치국 회의에서 별도 안건으로 다루어질 정도로 좋지 않다. 7일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는 내부경제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자리였다. 현재 김정은의 통치 피로도는 지난 2018년 이후 정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정신적 압박감은 상당했을 것이다. 과로와 음주, 불면증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김정은의 모습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바라봤을 사람이 바로 김여정이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김정은의 옆에서 남북미 간 진행되는 시소게임을 누구보다 잘 보아온 인물이 김여정이다. 친오빠의 건강이 악화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습을 바라본 여동생의 심기는 매우 불편했을 것이다. 문제의 매듭을 단도리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을 것이다. 올해 11월은 미국 대선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현재 입장은 그때까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연임을 장담하기에는 국내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렇다면 남한은?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북핵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국내 여론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이기도 한 국회의원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이 최대 의석을 차지했다. 북한 입장에서 자신들이 요구한 사항은 하나도 관철되지 못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만 그 수혜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5월 24일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열렸다. 핵심적인 내용은 핵무력과 초장거리 방사포 등 신형무기 배치 및 제도화를 골자로 한 것이었다. 당시 김정은은 향후 국가운영방안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을 설정했을 것이다.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지만 핵무력을 기반으로 한 신형무기 실전배치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필요했다. 핵무력과 경제건설 두 축을 기본으로 한 김정은의 국정 목표는 절름발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뚜렷한 경제실적이 없는 상태에서 격무로 건강상태도 그다지 좋지 못했을 것이다. 이때 김여정은 김정은에게 본인이 대남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그것이 김정은에게 받아들여지면서 대남 담화문 포화가 열렸을 것이다.

현재까지 나온 김여정의 담화문 내용은 상당히 신경질적이다. 거기에는 오빠인 김정은을 힘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원망이 가득 묻어 있다. 김여정이 대남부문을 담당한 것은 김정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김여정이 치료 중인 김정은에게 간청해서 받아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빠인 김정은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준 남한 정부를 괴롭혀 주겠다고 말이다. 동시에 한반도 긴장 조성으로 경제성과 미진의 핑곗거리도 만들고 시간도 벌 수 있는 일석삼조의 묘수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남한 정부에서 특사를 보내겠다고 했으니 그것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4일 김여정 담화문 이후의 한반도는 한동안 냉전을 겪을 것이다. 건강이 악화된 김정은과 김정은을 대신해 몽니를 부리고 있는 김여정. 그런 의미에서 김여정의 대남 행보는 하나의 해프닝일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 적대적 위협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예정되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이 고개를 내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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