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에게] “존엄한 존재는 지도자가 아니라 인민들입니다”

지난 2019년 3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할 때 모습. /사진=연합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들었습니다. 오랜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북중무역 중단으로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농사철이지만 비료와 농자재가 크게 부족하고, 국가 재정이 없어 올해 계획했던 15개 국가주력건설 사업을 5개로 축소했다면서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담화를 발표했더군요. 북한 주민에게 전단을 보낸 탈북민들을 ‘바보’, ‘똥개’, ‘들짐승보다 못한 인간추물’이라는 원색적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습니다. ‘쓰레기들이 함부로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건드리며 <핵문제>를 걸고 무엄하게 놀아댔다’는 이유를 들어서 말이죠.

‘전단 보내기 활동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금강산관광을 폐지하거나 개성공업지구를 완전히 철거하거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문을 닫거나,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할 것’이라며 한국 정부에 대한 협박도 잊지 않았군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언론에 노출될 때 보이는 차분한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주장과 용어를 사용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용어와 표현을 사용했다면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김 제1부부장이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닐 것으로 믿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나 우리민족끼리 같은 대외선전매체에 통일전선부나 인민군의 중하급 간부 이름으로 담화를 발표했어도 될 일을 굳이 직접 담화를 발표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군요. 북한 내부에서는 어떤 지 모르지만, 적어도 외부사회에서 볼 때, 이번 담화는 김 제1부부장의 품격을 스스로 깎아 먹는 것이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정무적 판단능력이 부족해 보이는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부부장은 지난 몇년간 꾸준히 권한과 역할을 확대 강화해왔습니다. 조선노동당의 핵심부서인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올랐습니다. 최근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경제개발5개년계획 평가를 총괄 진행하고, 부족한 국가재정을 메우기 위해 발행한 ‘공채’ 중간 평가를 주도하면서, 당과 국가의 핵심업무를 챙기고 있습니다. 급기야 노동신문에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정치적으로 압박하는 담화를 발표하며 대남사업까지 앞장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김 제1부부장의 지속적이면서도 발빠른 권력 강화의 배경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김 위원장이 2014년부터 심혈관 질환이 지속되고 있고, 작년 여름부터 상태가 나빠지더니 결국, 지난 4월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장시술 후 김정은 위원장이 몸과 마음을 추스리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시술 후 김정은 위원장은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음식도 싱겁게 골고루 먹어야 하고, 매일 30분 이상 적절한 운동도 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해야 할 겁니다. 정기적으로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을 측정하고, 적정 체중과 허리둘레도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흔들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시술 후 매사에 의욕을 잃을 수도 있고, 감정 기복도 심해질 수 있습니다. 수출급감, 물가인상, 핵문제, 코로나 사태, 국가재정부족, 자신의 건강문제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도 없으니 정신적 압박감도 크겠지요. 이것을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시술 당시, 국가기구 관리는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에게, 노동당 관리는 김 부부장에게 맡겼다고 들었습니다. 김 위원장이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동안 김 제1부부장이 당과 국가 업무를 앞장서 챙겨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 제1부부장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핵심 간부가 되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권력과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을 하는 것이 국가와 인민을 위한 길인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게 됐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의 변화와 발전, 북한 주민을 위해 나름 대로 일해온 사람으로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김 제1부부장은 탈북민들이 ‘최고존엄’인 김위원장을 비판했다고 화를 냈지만, 제 생각에 북한사회에서 가장 존엄한 존재는 지도자가 아니라, 2500만 북한 인민입니다. 지도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화를 내는 것보다, 인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8년 3월, 노동신문에 “신성한 인권이 일부 세력들의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되고 있다”며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국제사회를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김 제1부부장이 생각하는 ‘신성한 인권’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을 위해 일하는 목적은 ‘북한 주민들도 김정은 위원장이나 김 제1부부장과 같은 권리를 누리게 하자’는 겁니다.

능력만 있으면 가고 싶은 학교에 갈 권리, 원하는 직장에서 일할 권리, 보고 싶은 드라마 영화 마음 편히 보고 좋아하는 노래 마음껏 부를 권리, 다른 나라에서는 두 살짜리도 한다는 인터넷 할 권리, 언제라도 해외 여행할 권리, 내 자신과 가족을 위해 자유롭게 일할 권리, 지도자와 정부에 불평을 해도 정치범수용소에 가거나 사신 고사총으로 처형당하지 않을 권리를 누리게 하자는 겁니다. 당신의 오빠와 당신이 이미 누리는 그 권리를 북한 주민도 누리게 하자는 겁니다. 그 권리가 불순하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면, 당신과 오빠도 그 권리를 반납해야 겠지요.

둘째, 한국 사회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자유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국민이 한국 정부에 불만이 있거나, 당신을 비판한다 해도, 그것이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가치이자 질서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당신의 지도자와 당신 국가의 가치를 존중받고 싶다면, 당신도 한국 정부와 국민의 가치와 권리를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기라 해도 인민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을 중심에 놓고 고민하고 연구하면 반드시 길이 보일 것으로 믿습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020년 6월 5일

서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