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포커스] 잇따라 담화 쏟아낸 북한…南만 외면하는 ‘메시지’

지난 2019년 3월 2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묘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할 때 모습. /사진=연합

지난 2일 북한 당국이 대남, 대미 비난 담화를 세 차례나 쏟아냈다. 미중 갈등과 대립이 갈수록 첨예화하는 상황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공개된 직후였다. 북한 당국의 의도는 향후 있을지 모르는 미북 대화 국면에서 기선을 제압하고 한국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이날 북한 당국에선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 권정근과 외무성 대변인, 노동당 부부장 김여정 등이 시차를 두고 각각 담화를 내놓았다. 이들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반발하며 경고하거나(권정근, 외무성 대변인) 한국 시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관해 재차 ‘후과’를 위협했다(김여정).

지난달 28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북핵 문제를 미국과 세계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그 해법으로 ‘외교’와 ‘억지’를 강조한 바 있다. 또한 한국에선 지난달 25일에서 29일 사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 전단 50만 장을 살포했다고 한다. 이 단체는 10개의 대형 풍선을 이용해서 소책자 500권과 1달러 지폐 5천 장 등도 함께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런 움직임들에 대해 북한 당국이 반발하며 하루에 세 차례나 공식 담화를 쏟아낸 것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석 달 동안 고심 끝에 나온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필자가 보기에 그 핵심은 ‘tit-for-tat strategy(단계적 상응 전략)’로 생각된다. 이 같은 판단의 근거는 미국 정부가 외교의 문은 열어놓되 제재와 압박은 유지한다고 밝힌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 연설에서 ‘단호한 억지 전략’을 내놓았고 백악관 차원에선 ‘외교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지난 3일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북한 당국이 외교적으로 관여할 기회를 잡으라며 대화 재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같은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성을 종합해보면, 북한 당국에 대해 외교와 대화를 우선적인 해법으로 제시하지만, 북한 당국이 협력을 거부할 시에는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북한 당국이 미국 정부가 제시한 1단계 협력 방안을 수용하여 비핵화를 위한 의미있는 조치를 취할 경우 미국 정부는 더 큰 보상과 협력을 제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과거의 패턴을 답습하는 경우 미국의 채찍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실제로 블링컨 국무장관은 향후 북한 당국이 하는 말뿐 아니라 행동을 지켜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는 북한 당국이 대화와 도발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는 것이며, 북한 당국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미국 정부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사실 ‘단계적 상응전략’은 북한 당국이 먼저 채택했다. 지난 1월 개최된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은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맞대응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의도는 당시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의 향후 대북정책 정립에 영향을 미치기 위함이었다. 이제 골격을 갖춘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미국식 ‘강대강 선대선’ 원칙이라고 할 때 미국과 북한은 또다시 공을 서로에게 넘기며 지루한 샅바싸움을 전개할지 모른다.

문제는 미중 관계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강대국이 패권 다툼을 계속하는 와중에 북한 당국의 대미 비난 담화가 나왔다는 점은 미중 갈등을 이용하여 미북 대화에서 북한 당국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겠다는 전략적 사고의 일환으로 보인다.

미북 사이에 탐색적 차원의 대화라도 성사될 경우, 북한 당국은 한국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북한 당국은 트럼프 정부 시절 한국 정부가 개입해서 성사된 일이 없다는 점을 교훈으로 체득하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뜩이나 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하며 정권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북한 당국은 미북 대화에 한국 정부를 불참시키려 할 것이다.

한국 시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때마침 좋은 구실로 작용했다. 대북 전단 금지법에 대한 한국과 미국 정부의 입장차가 큰 만큼 북한 당국은 이를 계기로 한미 사이에 더욱 균열이 생기기를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을 때리면서 미국에 시위하는 성동격서(聲東擊西)의 효과를 위해 저강도 도발의 감행도 예상된다. 북한 당국은 한국을 완전히 배제한 채 중국과 러시아를 뒷배로 삼고 미국과의 대화에 나서며 전략 핵무기와 다양한 전술 핵무기의 완성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당국에게 한국 정부는 더 이상 쓸모없는 카드가 되어 버렸다. 그나마 남아있던 남북경협 카드도 코로나19의 확산과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로 인해 북한 당국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상태다. 앞으로도 북한 당국의 통미봉남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라도 한국 정부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고심해야 한다. 언제까지 북한 당국에 저자세를 취하며 국제무대에서 고립을 자초할 것인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