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건국절은 왜 9월 9일일까?



▲북한 당국이 1948년 7월 10일
헌법제정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

대부분의 국가들은 건국절이 있다. 대한민국은 8월 15일, 중국은 10월 1일, 미국은 7월 4일 등이다. 그리고 국민은 이 날이 왜 건국 명절로 정의되었는지 알고 있다. 1948년 8월 15일에 서울 중앙청 앞에 태극기가 게양되었고 미군정이 종료돼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해 공산주의 중국이 태어났다. 1776년 7월 4일 미국의 13개의 주 대표자들은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미합중국 건국을 선언했다.

북한에서도 그런 명절은 있다. 바로 9월 9일이다. 북한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설립  날이 1948년 9월 9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날에 확실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날은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을 선언한다!” 같은 연설도 하지 않았으며 북한 땅에서 인공기가 처음에 게양된 날도 아니었다. 이 글에서 1948년 북한 건국과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북한의 건국 명절이 왜 9월 9일인지 설명하려고 한다.

일본 제국 패망 이후 얼마 안 돼 소련 당국은 한반도 북반부에서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고 결정했지만 남한에서는 영향을 키운 세력들이 통일에 대한 토론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미군정하에 있던 이승만 등은 모스크바 3상회의 등의 결과를 보면서 통일이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북한 건국 준비 과정은 1947년에 본격시작됐다. 소련 당국은 북한에 임시헌법을 만들라는 지시를 하고 북한의 국기인 인공기의 도안도 제시했다. 그러다 1948년 2월에 평양에서 임시헌법위원회는 구성되고 임시헌법제안이 제정됐다. 물론, 헌법제안은 다시 모스크바에 보내고, 전소련공산당(볼셰비키) 중앙위원회 지시에 따라 편집되었다. 헌법을 아직 실행되지 않았다.

남한에서 1948년 5월 10일에 제헌 국회의원 선거가 진행된 것을 본 소련 당국은 북한 건국을 조속히 결정하게 된다. 1948년 7월 10일에 평양에서 북조선인민회의 제5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을 북조선지역에서 실행할 결정이 다음과 같이 나왔다.

회의의 부의장인 최용건은 대의원들에게 결정서에 대하여 이의가 없느냐고 물어봤고 없다는 대답을 듣고 투표를 진행했다. 물론, 전원 찬성이었다. 최용건은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에서 찬동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시에 관한 결정서는 원안대로 만장일치로 접수되었습니다”고 말했다. 김두봉이 연단 뒤에 있던 태극기를 끌어내고 대신하여 인공기를 게양하였다. 최용건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행 만세!”라고 외쳤다.

실제적으로 이 순간을 북한의 탄생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날에 북한 헌법도 실행되었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상징인 국기도 처음에 게양되었다. 그리고 최용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실행 만세!”로 북한 건국을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 날에 한반도의 영구 분단이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7월 10일은 북한의 건국 명절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북한이 전체 한반도의 합법적인 정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 8월 25일에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실시됐다. 그리고 북한은 남한에서도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진행됐다고 주장했고, 투표 참석자가 77.5%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가장 노골적인 사실을 왜곡이었다.

1948년 9월 2일에 최고인민회의가 소집됐다. 최고인민회의 제1기 1회의가 제정된 결정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 헌법을 전체 한반도에서 실행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은 9월 9일이 아니고, 9월 8일에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이 설립됐고, 바로 이 날짜는 북한 공식적인 건국 날짜가 됐다.

날짜의 선택은 조금 이상한 것 같다. 9월 9일은 집행권의 최고기관인 내각이 설립된 날뿐이었고, 전체 국가의 시발점으로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1948년에 나온 우표에서 이 날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으로 표시하지 않고 그냥 “중앙정부수립”으로 표시했다. 그러나 바로 내각 설립 직후에 소련은 북한을 독립 국가로 공식적으로 인정해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테렌티이 시트코프 상장을 주 북한 대사로 임명했다. 즉, 북한 건국 날짜도 소련으로부터 결정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