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 NK] 김여정, 북한의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될 수 있을까?

순천린(인)비료공장 준공식(5월 1일 진행)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옆에 김여정 당 제1부부장이 앉아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온갖 억측과 소문 속에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김정은 신변이상설은 김정은이 평안남도 순천에 있는 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5·2 노동신문) 함으로써 해프닝으로 끝났다. 동시에 김정은 잠적 기간 동안 전면으로 부상했던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인가?’라는 호사가들의 화두도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번에 신변이상설과 함께 후계자 문제가 대두됐던 것은 김정은의 자녀들이 권력을 승계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전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후계자로 거론된 인물과 세력은 여동생 김여정, 이복 삼촌 김평일 등 이른바 백두혈통과 함께 김씨 일가 밖의 인물로는 최룡해와 집단지도체제의 등장 가능성 등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김정은의 유고 시 후계자에 가장 근접한 인물은 누구인가?’를 점검해본다. 왜냐하면, 김정은 자녀가 공식 후계자로 지명될 것으로 예상되는 앞으로 10년간은 이런 문제가 계속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최룡해를 짚어본다. 최룡해가 후계자로 거론된 것은 공식서열 2위라는 지위 때문이다. 법적 절차에 따라 권력 교체가 이뤄지는 국가의 시각에서 볼 때, 최룡해는 제2인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권력 구조 특성상 제2인자는 존재할 수 없다.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에게는 권력 서열 2위든, 3위든 모두가 신하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정치 환경에서는 최룡해는 물론이고 그 누구든 백두혈통의 후계자가 될 수 없다. 비유하자면, 어린 아들만을 남기고 주인이 죽었다고 해서 종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집단지도체제의 등장도, 특정 집단이 세력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평소에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

다만 중국이 자신들의 국가이익을 위해 북한의 권력다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면 김씨 일가 이외의 인물이 최고 권력자에 오를 가능성은 있다. 이 경우, 김정은의 후계자 지위로서라기보다는 새로운 권력의 등장, 이른바 정권의 역성(易姓)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백두혈통으로 분류되는 김평일의 후계자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나이(1954년생)도 그렇거니와, 곁가지로 분류되어 너무 장기간 권력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김평일은 ‘모양과 크기는 없이 위치만 존재’하는 점(點)과 같이 존재감 없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복 누나인 김경희가 참석했던 연초의 가족행사에 등장하지도 않았고, 김정은은 고모부(장성택)와 이복형(김정남)을 살해하면서도 이복 삼촌은 살려 두었던 것이다.

끝으로 김여정이다. 김여정은 여타 인물(또는 집단)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후계자 후보로서 유리한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활동영역을 계속 넓혀오고 있다. 사실 그동안 김여정은 ‘김정은 문고리 비서’ 역할만을 충실하게 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특사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해 김정은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을 계기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행사 준비를 주관하여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으며, 사상 첫 남북미 판문점 정상 회동(2019. 6)에서 김정은을 공식 수행하는 한편 같은 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때 ‘시’ 주석과 환담을 하는 등 외교무대에 공식 등장했다. 이어 지난 3월에는 공식 직책인 1부부장 명의로 대남·대미 담화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대내에서도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확인된 바는 아니지만, 김정은이 작년 9월부터 중요 회의 결과를 제외한 일반 사무 처리 권한을 김여정에게 위임했다고 하며,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문서 대부분을 김여정이 사전에 검토한다는 정보도 있다. 또 초대형 방사포 시험 발사 현장(2019. 8)과 전술 유도무기 시범 사격 현장(2020. 3)에 나타나는 한편 자신의 명의로 “여성 군인들의 근무생활과 건강을 특별히 보살펴주도록 하고 그 정형을 파악하라”라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하는 등 군사 분야 행보도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 11일 열린 당 정치국 회의에서 김여정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보선됐다. 김정일이 생전에 “여정이가 아들이었다면 권력을 물려주고 싶을 정도로 총명한 딸”이라고 말했다는데, 권력에의 의지가 상당한 것 같다.

이와 관련, 미국 의회의 싱크탱크의회조사국(CSR)은 지난 4월 29일(현지시각) “(김여정은) 김정은의 복심으로 정상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다”라고 하면서 “김정은이 사망하거나 통치하기 어려운 경우, 김여정이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리의 국회 입법조사처도 “김정은이 김여정에게 후계자 지위를 부여할 수도 있다”라고 유사한 전망을 했다.

CSR이나 입법조사처의 평가와 같이 현재로서는 김여정이 혈통적으로나, 김정은의 신뢰도 등을 고려할 때 후계자 지위에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김정은 유고가 현실화됐을 때, 과연 김여정이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 지위에 올라설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시라쿠스 왕 디오니시오스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을 잊지 않기 위해, 권좌 위에 검을 매달아 놓고 스스로를 경계했다고 한다. 저 유명한 ‘다모클레스의 검’의 일화이다. 이처럼 최고 지위에 있는 당사자의 심리는 구경꾼(looker-on)이나 지나가는 사람(passerby)과는 전혀 다르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쥐고 있는 절대권력은 자식에게 넘겨주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친여동생인 여정을 가장 믿을 수 있지만, 가부장적 사고가 높은 북한에서 다른 집안의 여인이 될 김여정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이렇게 볼 때, 김여정은 북한의 무후(武后)가 되기보다는 김정은 자녀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이들을 후견하는 역할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김정은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김정은 자녀의 성장에 따라, 그 역할은 축소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김여정이 보여주고 있는 역할과 행보는 한시적(限時的)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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