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 NK] 권력의 세습이야말로 비사회주의적인 행태다

김일성
지난해 김일성 사망 25주기를 맞아 북한 주민들이 만수대 언덕을 찾았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이 지난해 연말 당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위한 정면돌파전을 제시한 이래 연일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비사회주의적 현상과의 투쟁은 전 군중적인 사업’이라는 제목의 논설(3.10)에서 “이색적인 현상은 사람들의 정신을 침식하고 사회를 변질·타락시키는 비사회주의적 현상의 한 형태이므로 사소한 현상에 대해서도 강하게 투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옷차림과 머리 단장을 우리 인민의 정서와 미감에 맞지 않게 하고 다니는 현상, 문화어를 쓰지 않고 외래어나 사투리를 섞어가며 언어생활을 망탕하는 현상, 사치한 생활을 하면서 사회주의 영상에 먹칠하는 안일·해이하고 나태한 현상 등을 이색적인 현상의 구체적인 사례로 지적했다.

한편 지난 1월 27일에는 김능오 평양시당위원장을 비롯해 평양의 선전일꾼들과 방송원·예술선동대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인민문화궁전에서 평양시 사상일꾼회의를 진행했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서 사상일꾼들의 책임과 역할을 촉구하는 회의였다. 이날 보고자로 나선 김봉석 평양시 당위원회 부위원장은 “모든 사상일꾼들이 항일 빨치산처럼 배낭을 메고 군중 속에 들어가 고락을 함께 하며 정면돌파전의 진두에서 참신한 선전 선동을 박력 있게 진행해야 한다”라고 하는 한편 ‘온갖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을 말끔히 쓸어버리기 위한 사상전을 강도 높이 벌여나갈 것’을 강조했다.

북한당국이 이처럼 옷차림과 몸 단장하는 것까지 지적하면서 ‘이색적이며 불건전한 현상을 뿌리 뽑기 위한 투쟁’과 ‘덮어놓고 남의 식, 남의 풍을 따르는 현상들을 맹아 단계에서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K-POP과 같은 이른바 K 컬처가 중국과 러시아 등 연선(沿線) 지역을 통해 대량으로 전파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당국이 비사회주의 현상을 지속 단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마당’이라고 하는 생활문화 공간이 확산하면서 외국, 특히 한국 문화와 상품 유입이 계속되어 북한 주민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드라마는 물론 무한도전 같은 인기 예능프로그램들도 방영된 지 1주일 만에 북한 장마당에서 유통이 된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또 간부들이나 잘사는 사람들이 쿠쿠 밥솥 같은 아랫동네(한국) 물건을 자녀의 혼수품으로 챙겨주는 것이 일상이 될 정도로 북한은 한류열풍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이런 실정은 탈북민의 추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와 음악, 상품을 통해 한국을 간접 경험한 청장년층 사이에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심이 늘면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입국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 문물에 대한 동경은 일반 주민이 아니라 북한 최고위층이 더 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조선중앙TV가 2017년 1월 3일에 방영한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의 1월 1일 새해맞이 공연이다. 당시 공연에서는 ‘쿵푸팬더’ 등 미국 애니메이션의 주제음악과 영상이 대거 등장했으며, 또한 라이언킹, 미키마우스, 미녀와 야수, 드래곤 길들이기 등의 주제음악이 전체 공연 약 64분 중 12분에 걸쳐 연주되어 눈길을 끌었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더구나 지난 2014년 NBA 농구선수 로드먼이 귀걸이에 입술 피어싱까지 하고 김정은 생일 축가를 부른 모습은, 아마 북한 주민들에게 호기심을 넘어 기괴할 정도의 문화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색적인 옷차림과 머리 단장, 그리고 미국 만화영화의 주제곡 연주 등은 비사회주의 현상의 자본주의적 측면일 뿐이다. 북한당국이 교묘하게 은닉해 놓은 가장 뿌리 깊고 대표적인 비사회주의 현상은 절대권력의 세습이다.

흔히들 자본주의만을 사회주의의 적대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쪽에는 모든 권력과 부를 세습하는 봉건군주제가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이른바 과학적 사회주의) 이념 어디에도 ‘권력의 세습’ 원칙은 없다. 또 사회주의를 표방한 어느 나라도 스탈린, 모택동과 같은 무자비한 당대의 독재자는 있었을지언정, 권력을 세습한 국가는 없었다.

김일성도 이를 의식해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할 때 이른바 ‘자질론’을 내세웠다. 그러더니 3대 세습에 이르러서는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백두혈통’을 지도자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그 어떤 동의나 합의도 받지 않았다. 바꿔말하면, 특정 핏줄만이 최고권력자에 올라설 수 있는 군주제를 내부적으로 관습화한 것이다. (다만 아직은 주변의 비난을 우려했음인지 공식적인 왕조 선언으로까지 이어지지 않고 있는데, 김일성민족이니 사회주의조선 시조를 운운하는 등으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이 기도하는 방식대로 한반도를 무력통일할 경우 군주제로 체제를 전환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선전매체들은 비사회주의 현상과 관련, “사회주의 사상과 배치되는 사소한 현상도 소홀히 하거나 방심하면 피로써 쟁취한 사회주의가 하루아침에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지게 된다”라고 경계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 기본 이념과는 다르게 권력을 세습하고 있는 북한은 이미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다. 그들 주장대로라면 현재 북한의 사회주의는 물먹은 담벼락처럼 허물어진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단지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북한당국이 ‘사회주의를 지킨다’라는 구실 아래 자본주의를 일컫는 이색적인 현상과 투쟁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것은, ‘절대권력의 세습’이라는 비사회주의적인 행태이자 중세 봉건시대로 되돌아간 퇴행적인 역사를 은닉하기 위해 주민들을 기망하고 호도(糊塗)하는 것이라 하겠다. 마치 마술사가 속임수를 사용해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마술사의 속임수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독재자의 기만은 주민들에게 고통과 절망만을 가져다줄 뿐이라는 것이다. 지구촌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 체제에서 철저한 통제 아래 살아가야 하는 북한 주민들의 현실이 이런 평가를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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