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해 12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지칭한 데 대해 “무력 사용 언급보다 더욱더 기분 나쁜 것은 최고 존엄에 대해 감히 비유법을 쓴 것”이라는 담화를 냈다. 최선희의 「최고존엄」 운운도 그렇지만, ‘인민방송원’으로 북한의 대표 아나운서 리춘희가 자못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최고존엄을 언급할 때면 한 편의 유치한 희극을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북한에서는 절대권력자를 찬양하고 우상화하는 호칭은 일찍이 김일성 시대부터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한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1인 독재체제 기반을 마련한 김일성은 개인숭배운동을 본격화했다. 이런 움직임은 항일 무장투쟁의 날조·과장과 함께 상징조작, 사상교육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이 같은 개인숭배운동의 중요한 하나가 김일성을 우상화하는 호칭이다. ‘어버이 수령’을 비롯해서 ‘김일성 그이는 한울님’에 이르기까지 김일성을 호칭할 때면, 으레 이름 앞에 최상의 경어와 장황한 수식어를 붙인다. 우상화 작업의 초기인 1960년대, 김일성의 이름 앞에 붙은 수사가 무려 180여 자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김일성의 뒤를 이은 김정일도 자신의 우상화 호칭에 대해 매우 집착했다. <조선노동당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우리 인민의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이는 김정일의 공식 호칭으로, 65자에 이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2003. 11. 21)은 ‘절세의 위인에 대한 만민의 호칭’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5대륙 방방곡곡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호칭은 지금까지 공개된 것만도 1,200여 가지에 달한다”고 소개하면서, 김정일을 태양으로 찬양하는 호칭만해도 ‘주체의 태양’, ‘인류의 태양’, ‘혁명의 태양’, ‘선군태양’, ‘사회주의의 태양’ 등 수십 개나 된다고 자랑한 바 있다.
그런데 이처럼 난삽하기까지 했던 북한 최고 권력자에 대한 우상화 호칭이 최근 들어 「최고존엄」 이라는 용어로 정리되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북한은 국격(國格)과 유사한 의미로 ‘공화국 존엄’, ‘체제 존엄’과 같은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지만, 개인을 지칭하는 최고존엄이라는 말은 없었다.
이 용어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2009.5.3)에서 처음 사용했다. 2008년 월터 샤프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김정일 급서에 대비해서 만일의 사태에 대응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었다”는 발언을 한 데 대해, “남조선(한국)을 강점하고 있는 침략군 사령관이라는 자가 우리의 「최고존엄」까지 걸고 들며 호전적인 망발을 늘어놓고 있다”며 “추호도 용납할 수 없는 적대행위”라고 맹렬하게 비난한 것이다.
또 2010년 1월에 국방위원회 대변인 성명으로 ‘남조선과의 모든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며 이 표현을 썼으며, 천안함 폭침 사건과 관련해 김정일 책임론이 나온 데 대해서도 ‘최고존엄 모욕’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후 북한은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비난이 있으면, ‘최고존엄 모욕’이라며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김정은 집권 이후 더욱 뚜렷하다.
문제는 「최고존엄」이라는 호칭에 내재하고 있는 희극성(喜劇性)이다. 이 용어는 아마도 백두혈통 우상화를 담당하는 선전선동부의 회심작으로 추정되는데, 이 단어를 선택한 배경이 우연의 일치이든 의도적이든 간에 로마의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로마 공화정 시기, 옥타비아누스는 양부(養父)인 시저가 독재정을 시도하다 부루투스 등 귀족들에게 암살당하자 안토니우스·레피두스와 함께 삼두정치를 이끌다가 이들 정적을 제거하고 원로원으로부터 프린켑스(Princeps 제1시민)와 임페라토르(Imperator 최고사령관)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원로원과 군대를 장악하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어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으로부터 ‘존엄한 자’라는 의미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초법적 권한·길조(吉兆) 등의 뜻을 지닌 종교 언어 ‘아욱토리타스’와 어원을 같이 한다고 한다. 결국,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채택한 것은 자신이 헌법을 초월해 최고의 우월성을 지니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었음을 보여주려는 교묘한 의도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종신 호민관의 권한을 유지하여 자신이 평민의 옹호자이자 민주정을 지지한다는 노회함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옥타비아누스에게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한 일련의 과정을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친인민적 지도자상을 부각시키고 있는 북한의 현재 상황을 오버랩시켜 보면, ‘최고존엄’이라는 호칭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면밀하게 계산된 모방품임이 분명해진다. 더욱이 ‘존엄’(아우구스투스) 앞에 ‘최고’를 덧붙임으로써 옥타비아누스를 넘어서겠다는 유치한 희극성까지 더 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 지도자들이 선호하는 ‘최고사령관’이라는 호칭에도 저의가 있다. 임페라토르는 원래 ‘개선장군’이라는 뜻이었지만, 이후 군 통수권자인 최고사령관을 거쳐 황제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북한의 절대자도 내심으로는 황제의 지위를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김일성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원래 금수산기념궁전이었지만, 2012년 현재 명칭으로 변경)이 언급될 때마다, ‘짐(朕)이 곧 국가’라고 말한 태양왕 루이 14세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모르겠다.
끝으로 북한 선전 담당 부서에 충고 한마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의 반대편에는 ‘명의(名醫)는 산중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 온다’는 명언이 있다. 다른 사람의 업적이나 지위를 도용해서 억지스러운 우상화 호칭을 만들어 내는 일을 이제 중지해야 한다. ‘천출(天出)장군’이 ‘천출(賤出)장군’으로 변형돼 세인의 조롱거리가 된 전철도 있지 않은가? 차라리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갔다가 「사쓰마 도기」(薩摩燒)라는 명품을 만들어 낸 심당길(沈當吉)의 후손들이 조상의 도자기 기법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면서도, 자신들은 그저 ‘제 몇 대 심수관(沈壽官)’이라 부르는 예를 따르는 것이 선전 효과를 더욱 높일 것이다. 명실(名實)이 상부할 때, 이런 단순·질박(質朴)함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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