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4월 1일은 「세금 제도 폐지의 날」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세금 제도 폐지의 날」에 즈음하여 지난 3월 24일, ‘세금 없는 첫 나라’ 제목으로 “1974년 4월 1일부터 세금 제도를 완전히 철폐한 첫 나라로 되였으며 세금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려던 우리 인민의 꿈이 실현되게 되었다”라고 선전하였다.
실제로 북한에는 ‘형식상의 조세’가 없다. 북한이 세금 제도를 폐지한 경과를 보면, 1964년 김일성이 「사회주의 농촌문제에 관한 테제」를 발표하면서 수확량에 따라 농민들에게 현물로 부과되는 세금인 ‘농업현물세’를 폐지했다. 이후 이른바 ‘사회주의 헌법’이라고 불리는 1972년 개정헌법에서 “국가는 낡은 사회의 유물인 세금 제도를 완전히 없앤다”라고 규정(제33조)하였으며, 후속 조치로 1974년 3월 제5기 제3차 최고인민회의에서 제정한 「세금 제도를 완전히 없앨 데 대하여」라는 법령을 통해 “같은 해 4.1부터 낡은 사회의 유물인 세금 제도를 완전히 없앤다”고 규정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든 국가는 국방, 치안, 복지 등 정부 활동에 필요한 비용의 대부분을 조세 수입, 즉 세금을 통해서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금을 폐지한 북한은 국가재정을 어떻게 꾸려나가고 있는가?
현재 북한은 재정의 대부분을 집단화된 기관과 기업소로부터 징수하는 「거래 수입금」과 「국가기업 이익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거래 수입금」은 소비재의 도매가격에 일정 비율의 금액을 가산하여 판매함으로써 얻어지는 수입으로서 부가가치세와 유사한 일종의 간접세이며, 「국가기업 이익금」은 기업소 등이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소득 중 일정액의 유보금을 공제한 잔액으로 법인세와 비슷한 일종의 직접세이다. 이외에도 북한은 주민들에게 인민군대 지원금, 농촌 지원금 등 각종 지원금과 사용료, 당비, 맹원비(盟員費) 등 여러 가지 명목의 「부과금」을 부과해서 국가의 자금 수요를 충족하고 있다.
북한이 체제우월성을 선전할 때 내세우는 3대 제도가 무상 교육, 무상 치료와 함께 바로 세금 제도를 폐지했다는 것이다. 봉건왕조 시대, 일반 백성들이 몸으로 체감하는 정치는 세금의 경중(輕重)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나라의 조세는 일반 백성들에게는 매우 가혹했다. 오죽하면 공자가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가 호환보다 무섭다)라는 말을 했겠는가?
이처럼 백성들 원성의 대상이었던 세금 제도 폐지에 대해, 북한 선전매체들은 ‘세금 제도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인민의 세기적 숙망인 동시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염원이고 확고한 결심’, ‘김일성 주석이 “세금 제도를 완전히 없앤 것은 김을 잘 맨 밭에서 마지막 돌피(잡초)를 뽑아낸 것과 같다”라고 뜨겁게 말씀’, ‘사회주의제도가 더욱 공고 발전되고 자립적 민족경제의 위력이 강화된 조건은 세금 제도를 없앨 수 있는 담보’라는 등으로 김일성의 애민(愛民) 정치와 체제 우월성을 부각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북한 당국이 ‘세금 없는 첫 나라’라고 하며 내놓은 허울이다.
하지만 ‘세금 제도 폐지’는 북한의 모든 정책과 마찬가지로 양두구육(羊頭狗肉)에 불과하다. 삼국 시대 이래 조선 시대 후기까지 우리나라의 세금 제도는 중국 당나라 시대에 확립된 조용조(租庸調)제도에 근거해서 운영되었다. 조(租)는 토지를 대상으로 하여 곡식에 매기는 세금으로서 일종의 소득세이며, 용(庸)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고, 조(調)는 지방 특산물을 공납하는 것이다.
먼저 소득세에 해당하는 북한의 조(租)에 대해 보면 북한 일반 노동자의 월급은 북한 돈 3,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는데, 이 돈으로는 장마당에서 쌀 1㎏도 구매할 수 없는 액수이다. 이쯤 되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말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도 세금 면제는 물론이고, 오히려 극빈 계층으로 분류하여 나라에서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이런 실정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세금 없는 나라’ 운운하는 것은 그야말로 ‘삶은 소가 웃다가 꾸레미(부리망) 터질 일’이라 할 것이다.
조(租)보다 심각한 문제점이 있는 것은 용(庸)이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인 마르크스는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실제 임금은 그가 제공한 노동시간의 일부 가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머지 노동시간(잉여노동)의 가치는 자본가의 잉여가치(이윤)로 귀속된다’라는 착취이론을 주장했다. 러시아 혁명을 비롯해 초기의 공산혁명은 이 같은 착취이론을 내세워 노동자·농민을 선동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들의 구호대로라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이상사회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잉여노동에 상응한 적정한 보상은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한 바와 같이 ‘(악덕 자본가가 착취하는) 남조선(한국) 노동자 일당이 북한 노동자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정권에 의한 노동 착취가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북한은 발전소나 관광특구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에 주민들의 노력(勞力)을 수시로, 그것도 무보수로 동원하고 있다.
결국, 북한의 세금 제도 폐지의 실체는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한 소득에 대한 조(租)를 폐지한 대신 또 다른 세금인 용(庸), 즉 노력을 무한 동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세금 제도를 철폐한 첫 나라’, 북한의 정체이다.
여기에 망상(妄想)이기를 바라면서도, 떨쳐 지지 않는 상념이 또 하나 있다. 원래 국가의 모든 구성원은 국가 (또는 군주)에게 세금을 바칠 의무가 있다. 단 하나 세금을 면제받는 예외 계층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노예들이다. 이런 역사적 전례를 비추어 볼 때,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통해 절대권력을 장악한 「위수김동」이 세금 제도를 폐지한 것은 애민 정신의 발로에서가 아니라 사실은 북한 주민들을 노예로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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