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첫 승전’..”동락전투를 아시나요”

“그때는 정말 대단했지. 북한군이 반격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졌으니….”

6.25전쟁 당시 서울을 점령하고 물 밀듯이 남침하던 북한군을 맞아 동락전투에서 국군의 첫 승리를 경험했던 신용관(83. 서울 거주. 당시 중위)씨는 2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59년 전 그때를 설명하며 목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내 “지금은 승리의 흔적이 너무 초라해 안타깝기만 할 뿐이지”라며 불편한 심정도 감추지 않았다.

동락전투는 당시 대대원 모두가 1계급 특진할 만큼 엄청난 승리였고, 유엔군의 참전을 이끌어낸 계기가 됐다고 전해지는 등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으나 6.25전쟁 첫 전승지라기에는 보잘 것 없는 데 따른 노병의 아쉬움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충주시 신니면 문락리 동락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동락전투의 가치를 재조명해 이 일대를 성역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첫 승전고를 울리다 = 서울이 점령되자 위수지역인 강원도 춘천을 포기하고 충주.음성 지역까지 철수한 국군 제6사단 예하 7연대가 북한군을 맞이한 것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12일 만인 1950년 7월 7일.

당시 임부택 중령이 인솔하던 7연대는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1대대를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와 음성읍을 잇는 도로에, 2대대를 충주시 신니면 동락리 부용산 644고지에 배치, 북한군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2대대를 인솔하던 김종수 소령은 동락초교 교사인 김재옥(당시 19세.여)씨로부터 “2시간 전에 3천여명의 적군이 동락리로 진격해 학교와 주변 마을에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정탐 결과 주민들로부터 “국군이 철수했다”는 허위 정보를 들은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48연대가 학교 주변 일대에 집결해 교정에 10여대의 포를 설치하고 장갑차와 각종 차량을 줄지어 세워놓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김 소령은 사안이 급박하다고 판단해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기로 하고 오후 5시 공격명령을 내렸다.

M1소총이 불을 뿜으며 작전은 시작됐고, 신용관 중위가 이끄는 박격포부대는 적진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이튿날 오전 10시까지 벌어진 전투에서 국군은 북한군 2천186명 사살, 132명 생포, 트럭 60대를 비롯한 군수품 1천200여점 노획이라는 성과를 거두며 모든 대대원이 1계급 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초라한 전승지..대책은 = 동락전투는 6.25전쟁이 벌어진 이후 국군이 거둔 최초의 승전으로 기록됐으며 유엔에 보내진 노획 군수품이 당시 소련제로 확인되면서 유엔군이 한국전에 참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국방부는 북한군의 위치를 제보했던 김 교사의 반공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쟁과 여교사’라는 영화를 제작해 전국적으로 상영했으며 박격포부대를 이끌었던 신용관씨는 준장 예편 후 1968년 해양 경찰대장으로 재임한 뒤 고인이 된 김 교사의 충혼을 달래기 위해 동락초등학교에 ‘김재옥 여교사 현충비’를 건립했다.

충북도도 1973년 동락마을 4천여㎡의 동산에 전승비를 제막했고, 충북도교육청은 1990년 동락초등교에 ‘김재옥 교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동락전투가 잊혀지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전투 전승지에 비해 초라하게 보존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인근 음성 무극전적국민관광지(감우재 전승지)에는 전승비와 전승탑, 충혼탑은 물론 기념관까지 들어선 반면 동락전투 전승지는 작년 말부터 지난달까지 도비 등 2억원이 투입돼 전승비 보수, 가로수 및 공원정비 등 사업이 진행되긴 했으나 안내판 조차 없는 상태다.

신용관 씨는 “동락전투는 당시 계속 적에게 밀리던 비극적 상황에서 국군이 거둔 최초, 최대의 전과로 국군 역사에 길이 빛날 금자탑”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국군이 남쪽으로 도주해 한 명도 없다’고 북한군에게 허위 제보를 해 전투가 끝나고 나서 퇴각하는 북한군에게 학살을 당한 주민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동락 전승지를 꼭 성역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부대원 유족들은 7월 그 날만 되면 추모제를 열면서 넋을 기리는 한편 성역화 작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충주시 관계자는 “충북도와 국가보훈처 등과 연계해 역사적인 현장으로 보전하기 위한 성역화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