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재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근간 개최될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가 나와야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겠지만 현재 돌아가는 형국으로 봐서는 조만간 6자회담이 다시 열릴 것 같은 눈치다. 그러나 6자회담의 명분과는 별개로 그 실효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뒤따른다.
북한 핵무기 쟁점을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불법적인 행위를 하지 않도록 대가를 지불하는 게 합리적인가? 예컨대 한 배고픈 불량배가 이웃들을 갈취하는 등 나쁜 짓을 일삼다가 경찰에게 체포되지 않으려고 도끼를 꺼내들어 타인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도끼를 버리면 돈을 주겠다고 불량배를 회유하는 게 상황을 수습하는 최선의 방법인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가 핵무기를 폐기해 달라고 북한에게 경수로를 포함한 각종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이성적인가? 제네바합의가 이뤄진 1994년 이후 우리는 이 같은 물음에 대한 정답 내리기를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문제는 북한이라는 불량배가 영악하기 그지없다는 점이다. 다섯 명이나 되는 경찰이 불량배 하나를 때로는 다그치고 때로는 달래면서 도끼를 버리라고 구슬러 봤지만, 그 도끼를 내던지는 순간 체포될 거라고 믿는 불량배 북한은 다섯 경찰을 가지고 놀면서 주린 배도 채우고 도끼날도 세우는 등 갈수록 득의양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중국이라는 든든한 경찰도 매수해 놓은 상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경찰들은 미묘한 의견 차이는 있으나 대화를 통해서만 불량배를 순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북한과의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위의 비유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측면도 없지 않으나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동원됐다. 중요한 내용은 위의 비유를 기초로 할 때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대화와 협상 이외의 방법은 군사적이고 물리적 수단을 통한 해결책뿐인데 그 같은 방법을 구사하는 데에는 엄청난 희생이 뒤따른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한 핵시설을 정밀타격식으로 폭격할 경우 전면전으로 치달을 위험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개입이 뒤따라 국제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대화와 협상 외의 수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6자회담에 명분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6자회담은 북핵 문제의 해결에 있어 어떠한 유용성을 발휘했는가? 이 물음과 관련해서 많은 논란이 존재하지만 필자의 견해로 볼 때 6자회담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동 회담의 가장 큰 목표가 북핵 폐기라고 할 때 6자회담은 목표달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6자회담은 결과론적 측면에서의 기능적 무용성뿐 아니라 과정론적 차원에서도 두 가지 커다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먼저 절차의 원심력에서 비롯되는 합의도출의 어려움을 꼽을 수 있다. 6자회담은 만장일치의 합의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만 특정 사안을 의제로 채택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한다. 때문에 어떤 주요 사안을 의제로 채택하기 위해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취약성을 지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참가국들의 개별적인 이해관계로 인해 회담 의제를 채택하는 데에도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북핵 문제와 연관성이 없는 납북 일본인 문제를 시종 제기함으로써 회담의 원심력을 강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둘째, 회의 진행의 산만성을 들 수 있다. 6자회담은 순차통역의 경우 각국의 수석대표들이 발언할 때마다 영어, 중국어, 일어, 러시아어, 그리고 한국어로 통역하는 데에만 엄청난 시간이 걸려 신속한 협의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특정 쟁점에 대해 6개국이 합의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소비됨으로써 상대적으로 북한에게는 우호적인 대외환경 속에 내부정비를 위한 시간을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다줬다. 그 결과 북한은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공고화했고 1차 핵실험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지니게 됐으며, 아울러 최근 쟁점화한 농축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도 착실히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노정하고 있는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그것은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혹자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이 발휘한 긍정적 기능으로 9․19 공동성명의 발표, 2․13 합의 및 10․3 합의의 채택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문서들은 모두 북한의 논리를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 이 같은 합의들에서 명시돼 있는 키워드(key word)는 북한이 주장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다. 북한이 언제든지 협상에서 철수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향후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기존의 문서들은 백지화하고 새로운 합의의 틀을 마련할 필요성이 대두한다. 과거의 문서화된 약속에 연연하다간 또 다시 북한이 생떼를 쓰는 낯익은 풍경을 목격함과 동시에 우리는 익숙한 좌절에 빠질 것이다.
기존의 6자회담이 상술한 병폐들을 노정하고 있다면 그 대안으로 어떤 제도적 틀을 생각해볼 수 있는가? 이와 관련 우리는 2012년 4월에 개최될 핵안보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를 그 대체 기구로 고려해봄 직하다.
지난해 4월 13일 미국 워싱턴에서는 제1차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됐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7개국 정상과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유럽연합(EU) 등 3개 국제기구 대표가 참석한 대규모 회의였다. 2012년 4월에 개최될 2차 회의에서는 우리나라가 의장국이 된다. 핵안보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위상을 지닌 한국은 그 하위 협의체로 ‘가칭 핵안보정상회의 실무급 접촉회의’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닐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에 따라 차기 의장국 권한으로 한국이 ‘실무급 접촉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서 참가국들이 북한 및 이란 핵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다면 기존 6자회담의 외연을 확대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6자회담의 병폐를 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 실무회의에서는 6자회담의 ‘합의제적 성격’을 폐기하고 의제선정부터 안건의 도출까지 참여국들의 협의와 다수결주의를 원칙화함으로써 6자회담의 원심력을 구심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전략적 규칙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실무회의는 기존에 6자회담 의장국 행세를 하던 중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중국의 반대가 있을 시에도 다른 참여국들의 이해가 전제된다면 북한에 대한 중요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6자회담보다 상대적으로 효과적인 대북협상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북한의 핵폐기 시한을 합의함으로써 그 내용을 북한에 요구하는 것이다. 가령 특정 시점까지 모든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을 시 핵안보정상회의 참가국들의 이름으로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겠다는 식의 합의가 실무회의에서 이뤄질 경우 이것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효과를 지닐 것이다. 불량배에게 도끼를 내려놓도록 하기 위해선 설득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금품을 제공하며 구걸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더구나 불량배가 막가파식의 배짱을 부리며 도끼를 휘두를 때 경찰은 총을 뽑아들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이 바로 과거 6자회담의 실패에서 도출되는 중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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