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만에 北고향땅 밟은 안승룡씨

“아, 여기가 내 고향이구나…” 안승룡(78)씨는 지난 8일 평양에서 묘향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나지막이 탄성을 지른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평안남도 안주군(현재 안주시)임을 알리는 ’안주→개천’ 도로 표지판을 우연찮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안주군 입석면이 고향인 안씨는 이곳에서 소학교를 마친 뒤 중국 창춘(長春)의 신경상업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평양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고 1951년 1.4후퇴 당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는 정성수액제공장 준공식에 참여하는 남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고향을 떠난 후 첫 방북이었다.

“고향땅을 한 번은 밟겠지 생각은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너무 많이 변해 잘 알아보기 힘들지만 고향의 공기를 마시니 기분이 묘합니다.”

안씨는 고속도로 변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도 모내기가 끝난 들판과 멀리 보이는 농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주평야는 고구려 시대 중국의 12장수가 병졸 3천씩 거느리고 쳐들어왔다고 ’열두삼천벌’로 불리는 이름난 곡창지대다.

“이곳에 부모와 손위 누이들과 동생을 두고 왔어요. 부모님의 묘소도 보고 싶고 혈육이 살아 있다면 꼭 만나고 싶어요.”

안씨는 그러나 동생이나 친척들의 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군에서 정보 관련 업무를 봤던 자신의 이력이 행여 해가 될까 두려워서였다.

아버지의 방북을 신청한 장녀 향선(49.기아대책 사업본부장)씨도 “아버지는 은퇴한 뒤에도 고향의 친지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았고 북한 방문은 엄두도 못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조심스러웠던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묘향산 인근에는 동굴이 많았는데 13살 때 그 곳에 놀러간 적이 있었어. 마침 종유석에서 물이 떨어지기에 쪽쪽 빨다 누이한테 얼마나 혼났는지…종유석 물을 빨면 아들을 낳는다는 말이 있었거든.”

딸에게 뒤늦게 고향 이야기를 펼쳐내는 안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지만 표정은 누구보다 밝았다.

안씨는 10일 평양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내일이라도 오라면 당장 달려오겠다”고 되뇌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