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6자회담, 핵심 관전포인트 5가지

▲ 지난해 6월 진행된 3차 6자회담 (출처:연합)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 13일 한 목소리로 6자회담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가 돼야 한다고 운을 뗐다.

김 위원장은 이날 탕자쉬안 (唐家璇) 중국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6자회담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중요한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도 “한반도의 비핵화에는 고농축 우라늄(HEU) 프로그램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미 양측 모두가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상이하다. 김 위원장과 라이스 장관의 발언은 4차 6자회담에 임하는 양국의 전략을 대변한다.

북한은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워 불가침 협정, 미군시설을 포함한 남북 동시사찰을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방식의 先 핵폐기 주장으로 맞서 이행 우선순위를 놓고 양국의 충돌이 예상된다.

우리 정부 역시 이번 4차 회담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고 있다. 여전히 북∙미간의 시각 차가 크다는 것이다. 4차 6자회담 결과는 참가국(특히 북한)의 핵폐기 결단, 주요 의제, 회담 형식에 달려 있다. 이러한 회담 관전 포인트를 분석해보면 4차 회담 결과를 개략적으로 예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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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차 6자회담 경과 요약

  ‘조선(한)반도 비핵화’에 숨겨진 북한의 협상전략

북한 외무성은 10일 6자회담 복귀 발표에서 ‘조선반도 비핵화’를 다섯 번이나 강조했다. 2002년 10월 제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후 북한은 조선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먼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조선반도의 핵문제는 미국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비핵화도 미국이 선(先)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지난달 17일 김위원장이 직접 언급하면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를 4차 회담 협상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주장이 핵 포기로 가닥을 잡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인식은 1차 북핵 위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북한의 핵전략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북한은 94년 이전 은폐전략, 그 이후는 평화적 원자력 프로그램, 2002년 10월 이후에는 미국의 위협에 따른 자위적 수단이라는 조선반도의 핵문제, 그리고 최근에는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한반도 비핵화’ 주장은 대미(對美) 적대정책 철회 요구의 또다른 표현방식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군축회담 요구를 포함하고 있다.

▲ 북한의 ‘조선반도 비핵화’는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까지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사진은 주한미군 훈련 모습.

지난 5월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핵 보유국의 핵군축이 선행돼야 핵무기 비확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비핵화를 위해 군축회담 필요성을 제안한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근본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핵 개발의 책임을 미국에 덮어 씌우고, 군축회담, 불가침 협정,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면서 북한 핵 보유를 정당화 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러한 선전전략은 남한과 주변국에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회담 전망은 어두워진다. 군축회담, 불가침 협정, 주한미군 철수 등은 한국과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다. 북측이 최근 ‘한반도 비핵화’를 부쩍 강조한 배경에는 국제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면서 회담을 질질 끌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미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 ∙ 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제시한 `先 핵포기 後 경제지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 리비아식 해결방식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은 3차 6자회담 제안(June Proposal)에 북한이 답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해체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종전 ‘핵폐기 완료시 지원’ 입장을 3차 회담부터 ‘핵폐기 전제 동결돌입시 반대급부 제공’으로 유연성을 발휘했었다.

북한이 먼저 핵 프로그램 포기 의사를 천명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떠한 보상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13일 “앞으로 북한은 먼저 비핵화 선언을 한 뒤 실제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약,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없을 경우 미국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북핵을 안보리에 회부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이 이번 회담을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한 데는 미국의 단호한 조치가 임박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 남한은 북한에 “힐 차관보를 활용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더 이상 늘이지 않는 조건으로 현 수준에서 핵 프로그램 동결이라는 카드를 꺼내 ‘제2의 제네바 합의’와 같은 정치적 타결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미국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 프로그램, 단 한 개의 핵무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핵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북한과 미사일과 인권 문제로 협상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인권문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입장이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에 북한이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에 4차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협상력도 두고 볼 만하다. 힐 차관보는 워싱턴의 신임이 두터운데다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힐 차관보를 적극 활용하라’고 주문할 정도로 협상력을 인정받고 있다. 북한이 힐 차관보의 외교적 ∙ 평화적 노력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면서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 논란

라이스 장관은 13일 “6자회담의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여야 하고 여기에는 HEU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연계돼 있으며 칸은 민간의 핵 사용에는 관여한 적이 없다”면서 “그 점(HEU)에 많은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리비아-북한 정부 사이의 트라이앵글 HEU 밀거래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은 지난 세 차례 6자회담에서 HEU 프로그램을 부인했다. 북한은 HEU 프로그램 존재를 시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직접 시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음을 공식 인정했다.

미국은 고농축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을 목표로 한다. 북한 HEU 프로그램 보유를 계속 부인한다면 협상은 진전되기 어렵다. 이 문제가 이번 회담의 최대 장애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4차 회담이 또 다시 성과 없이 끝난다면 그 이유 중 하나가 HEU 프로그램 공방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북-미 양국의 진실 공방은 결국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미국에 유리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002년 7월 말 북한이 1990년경부터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방식의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확고한 정보(solid intelligence)를 파키스탄으로부터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 켈리 전 차관보는 2002년 10월 자신이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강석주 외무성 부상이 직접 “북한이 이(HEU)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본합의서(제네바 합의)는 무효화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3월 북한이 6불화우라늄(UF6)을 리비아에 판매했다고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 통보했다. 미국 정보기관과 정부 과학자들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북한이 가공된 우라늄을 리비아에 판매했다는 “거의 확실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이 HEU 핵 프로그램 밀거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핵기술 밀매 혐의를 받고 있는 칸 박사는 지난해 4월 파키스탄 당국의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1990년대 말 본격적으로 우라늄 농축 관련 장비와 기술을 북한에 넘겼다”고 진술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1996년 가을경 전병호 군수공업담당비서가 나에게 ‘파키스탄과 비밀 협정을 맺어 농축우라늄 기술을 통한 핵무기를 개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외에도 북한은 북한이 2003년 4월 독일 회사로부터 22톤의 고강도 알루미늄관 수입을 시도하다 프랑스 독일 이집트 당국에 적발됐으며, 미 정보 당국은 북한과 파키스탄 핵 밀매를 증명하는 영수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6자회담 내 양자회담,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인가

북한은 6자회담 복귀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이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들었다. 일부에서는 북한의 발표를 통해 미국이 6자회담 내에서 접촉(contact)이 아닌 회담(meeting)을 수용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끈질기게 미국과 양자회담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이 정답이라고 반응했다. 6자회담은 주변국이 북한을 포위, 핵 포기로 몰아가는 형태인데다 미국과 정치적 타결도 힘들어 북한은 계속해서 형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북-미 양국이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이라는 절충안에 합의하면서 회담 진전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양국간 직접 담판이 회담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미국은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의 지위를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있다.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는 수준인지, 구체적인 협상이 이루어지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6자회담 내 양자회담이 주 협상 통로가 될 경우 6자회담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있긴 하다. 북한은 무력화를 적극 시도하겠지만 미국은 이를 철저히 경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과 정치적 타결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회담 형식을 두고 다시 회담이 공전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제4차 6자회담을 한달 기간의 상설 회의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회담 참가국들에게 적극 제안할 방침이다. 이에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번 4차 6자회담에서는 최소한 한달 회기 정도의 ‘끝장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그동안 진행돼온 세 차례 회담처럼 4일간 전체회의를 해서는 회담의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주변국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가 변수다.

또한, 정부는 6자회담 사전협의에서 장관급 ‘조정위원회’ 산하에 핵, 기술-경제-정치 등 국장급이 단장인 3개 소위를 구성, 이들 소위가 거의 매주 회의를 열어 의제를 논의한 뒤 그 내용을 조정위원회로 올려 결정하는 `독일ㆍ영국ㆍ프랑스-이란간 핵회담 방식’도 적극 제안할 방침이다.

그동안 두 차례 진행된 실무그룹(W/G)회의 운영을 체계화시키고 역할을 상승시켜 회담 진척을 서두르겠다는 의미다.

이러한 제안들이 받아들여진다면 회담의 실질적 진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이 구체화되고 장기화되면 북한에 대한 압력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끝장 토론’은 회담 당사국들이 핵 해결에 합의할 경우에는 매우 유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무의미한 시간 끌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입장

정부는 14일 외교통상부에서 한∙미∙일 3국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갖고 한국의 북에 대한 중대제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3개국 6자 회담 수석대표들은 북한의 핵폐기시 독자적으로 북한에 직접 전력을 공급키로 한 우리측 ‘중대제안’과 기존의 대북제안을 조화시켜 북한의 핵 포기를 설득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정부는 이번 중대제안이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유인책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대북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6자회담 틀에서 보장하는 방안을 제안할 계획이다. 다자 틀에서 전력공급을 관리하게 되면 북한에 제안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력지원만으로 핵 포기 결단을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남한에 전력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시스템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한국은 중대제안을 비롯해 양자회담을 적극 활용하는 등 북한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는 체제보장과 경제지원만 보장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해석이 깔려 있다.

일부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이 북한 핵 포기의 촉진제 역할보다는 방패막이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에도 북한이 핵 보유를 고집하면 한국 정부는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과연 한국 정부가 미국 ∙ 일본과 함께 단호한 대응에 나설 수 있는지, 민족공조로 조성된 반미 분위기가 어떻게 작용할지도 미지수다.

▲ 6자회담 참가국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서로의 입장을 조율 중이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 회담 타결에 의욕을 보일 전망이다. 중국이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면서 대북(對北) 압력을 행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렇다고 당장 북한 정권을 흔들 수 있는 경제 지원을 포기할 수도 없다. 중국은 북한 김정일 정권이 대미 견제용으로 아직 유용하다는 타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중재 노력은 아직은 북한 쪽으로 기울어 있다. 미국이 먼저 안전보장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중국은 6자회담에서 핵 포기 원칙은 강조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협상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정치적 무게가 북한에 실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협력을 강화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에 견제를 가속화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대미 견제 움직임도 협상에서 북한 쪽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러시아도 미국이 먼저 북에 안전보장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4차 6자회담에서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주변국들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북한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일 “조선반도 비핵화를 지지하는 주변 나라들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노력했지만 일본만은 6자회담 재개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일본을 비난했다.

일본 역할은 회담장에서 제한돼 있지만 북한에 대한 압박이 필요할 경우 강력한 협력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6자회담이 경과해오면서 북-미는 핵심 당사국, 한국과 중국은 유력한 중재국, 러시아와 일본은 회담 협력국 수준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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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