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북한인권 지원 칼 거쉬만 “인내 필요하지만 포기말자”

[은퇴 인터뷰] "갈라지기 시작한 집 혼자 서 있을 수 없어…북한도 이미 흔들림 시작돼"

칼 거쉬만 NED 회장.

여당의 단독 표결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에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통과됐던 지난 12월, 칼 거쉬만(Carl Gershman)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회장이 통일부를 공개 비판했다.

통일부가 대북 전단 금지와 관련된 법 개정의 필요성을 밝히면서 ‘거쉬만 회장도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앞서 거쉬만 회장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아주 효과적인 정보 유입 방법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NED가 지원을 하지는 않는다”면서도 “그럼에도 대북전단이 위협이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를 통일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한 셈이다.

이렇듯 북한과 관련된 문제는 정파적으로 이용돼왔으며 때로는 정치적 전략에 따라 쉽게 왜곡되기도 하는데, 아마도 거쉬만 회장은 북한 관련 활동의 이러한 문제를 이미 예견했던 것 같다.

어떤 문제에 대한 침묵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해당 문제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폐쇄된 환경 가운데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문제를 제기할 때 비난이 쏟아지고 갈등이 유발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 문제를 제기할 때 이것이 문제 자체로 인식되기 보다는 정파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983년 설립 때부터 최근까지 미국 NED를 이끌어온 거쉬만 회장의 25년 전 연설의 일부다. NED가 북한인권 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이후. 거쉬만 회장은 전세계 민주주의 전문가들이 모인 학회에서 앞서 서술한 연설을 통해 “북한인권에 대한 침묵을 끝내야”한다고 했다.

NED가 북한인권 개선 활동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 주민은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거쉬만 회장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결국 이것은 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헝가리와 폴란드를 비롯해 소련까지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을 직접 목도(目睹)한 그였기에 그 울림이 적지 않다는 평가다.

38여 년 동안 북한을 비롯해 정치적으로 폐쇄된 국가들의 민주주의 발전에 천착해 온 거쉬만 회장. 그가 NED 회장직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인생의 상당 시간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쏟아온 그에게 이메일을 통해 지난 삶과 활동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다음은 거쉬만 회장과의 일문일답

로널드 레이건 미 행정부 시절 전체주의 국가의 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NED  중남미, 아시아 등 100여 개가 넘는 나라들의 민주주의 발전을 도왔다. 당신은 창립 때부터 NED와 함께 했는데 지난 40여 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

사실 NED는 미국 의회의 자금을 받으면서도 독립적인 활동을 하는 기관이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미국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진보와 보수 양당 의원들은 각각의 정치적 입장에서 NED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는데 좌파는 우리가 너무 극단적인 반공산주의자가 되지 않길 바랐고, 우파는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리는 우리 활동의 진실성을 증명해야 했는데 결국 그들은 칠레,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만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지지한 우리의 역할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특히 냉전 종식에 큰 역할을 했던  폴란드에서의 지원 활동이 기억이 남는다

지난 수십 년간 기억에 남는 중요한 투쟁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달라이 라마와 체코의 극작가이자 인권운동가이고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 그리고 체첸학살을 고발한 후 살해당한 러시아 기자 안나 폴리티코프스카야,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 중국 류샤오보의 부인 등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용감한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것을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 NED는 미국 의회로부터 예산을 받아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등 100여 개가 넘는 나라들의 민주주의 발전을 도왔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NED가 특히 북한인권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이후 1990년대에 우리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NED의 이사였던 전 국방부 차관 프레드 이클 박사(Dr. Fred Ikle)와 민주당 의원으로서 북한을 방문했던 스테판 솔라즈(Stephen Solarz)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에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때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창립자인 벤자민 윤(윤현) 목사를 만났다.

그는 당리당략이 아닌 인권에만 관심이 있는 매우 드문 사람이었다. 우리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을 통해 북한에 대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유엔에서도 북한에 대한 침묵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유엔은 특별보고관을 임명했고 북한이 저지른 고문, 살인, 강간, 강제 낙태, 종교적 박해 등 반인권적 범죄를 기록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또한 잘 알다시피 북한에 정보를 송출하고 인권과 관련된 정교한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당국이 예상보다 건재하게 유지되고 있다. NED가 북한인권 상황 개선에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하나?

우리의 지원 프로그램들은 중국에 발이 묶여 있던 북한 난민들을 구조하기도 했고 북한 주민들에게 정보를 주고 개방과 인권에 대한 의식을 높였다. 이런 활동들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북한 체제가 개방되기 시작할 때 주민들로 하여금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물론 북한 정권이 예상보다 공고해 보일 수 있지만 폐쇄적인 시스템은 스스로의 모순을 가지고 있다. 전체주의 정권의 개방은 늦출 수는 있지만 완전히 막을 수는 없고 북한은 이미 그 흔들림이 시작됐다. 링컨이 말했던 것처럼 갈라지기 시작한 집은 스스로 서 있을 수 없다.’”

민주화라는 과정은 상당히 오랜 인내를 필요로 한다. 40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해 오면서 얻게 된 삶의 지혜는 무엇인가?

“NED에서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장애물이 종종 혁신의 기회가 됐다. 1987년 우리의 활동은 언론에서 끔찍한 공격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활동을 비공개로만 할 것이 아니라 의회와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전세계 활동가를 모아 국제회의를 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갔다. 이것이 세계적인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다.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항상 문제를 기회로 보라. 그리고 현재의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지 말아라. 우리는 우리 사회를 더 정의롭게 만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