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갇힌 인권] “전쟁판에 누가”…해외 파견 꺼리는 평양 주민들

<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건설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파견 노동자들. /사진=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노동자 선발 사업을 지속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 해외 파견을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에는 해외 파견을 ‘집안을 일으킬 기회’로 여기며 경쟁적으로 지원했지만, 최근에는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 소식통은 3일 데일리NK에 “예전 같으면 외국에 나간다고 하면 돈을 바쳐서라도 순번을 잡으려 했는데, 요즘은 로씨야(러시아) 쪽은 선뜻 가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모스크바나 상트(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큰 도시도 우크라이나가 때린다는 말이 돌면서 ‘전쟁판에 누가 돈 벌러 가겠느냐, 딸라(달러) 몇 장 쥐어보겠다고 대포밥 되겠나, 목숨이 더 귀하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러한 소문이 단순 소문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해외 파견에 대한 주민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이 제공하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러시아 본토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나 폭격 소식 등 외부 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평양 주민들 사이에도 일부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 주민들에게 해외 파견은 위험보다 경제적 기대가 더 큰 선택지였다. 직장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서 해외 파견은 장사 밑천을 마련하거나 살림집을 고치고 자녀 결혼 비용을 마련할 기회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파견 대상에 들기 위해 담당 지도원이나 간부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졌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그물에 갇힌 인권] 노동자 대거 파견 준비…인권 지적 눈가림)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에 나가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보다 “전쟁 지역에 가까운 곳에 가게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뇌물을 바쳐 해외에 나가게 되더라도 실제로 얼마나 벌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안전 문제까지 겹치면서 “굳이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정부패 단속에 대놓고 돈 바치기 어려워져…소득 기회도 확대

여기에는 북한 당국의 부정부패 단속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여러 차례 간부들의 부정부패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언급하며 기강 확립을 강조해 왔다. 최근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9기 제2차 전원회의 확대회의(6월 20~22일)에서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박희철 소장)을 부정부패 혐의로 법기관에 넘겼다고 밝히는 등 부정부패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기도 하고 있다.

물론 이런 움직임이 내부에 만연한 부정부패 관행의 근절로 반드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렇게 단속이 강화되는 시기에는 노골적인 뇌물 수수가 일시적으로 줄어들고, 오히려 더 은밀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대학 입시철 다가오자 대입 ‘뽄트’ 배정 놓고 뇌물·청탁 또)

해외 파견 선발 과정에서의 뇌물 행위 역시 잠시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완전히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소식통의 말이다. 다만 최근에는 해외 파견의 매력이 떨어지면서 과거처럼 “무조건 돈을 써서라도 나가겠다”는 경쟁은 다소 약화된 상태라고 한다. 소식통은 “요즘은 괜히 돈을 바쳤다가 단속에 걸릴 수도 있고, 나간다고 해도 나중에 걸리면 위험하다는 말이 있어 눈치를 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 경제 환경의 변화도 해외 파견 기피 현상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일부 공장·기업소 노동자들은 생산 실적에 따라 현물 일부를 받거나 인상된 월급을 받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시장에서 부업을 하거나 가족 단위로 장사를 병행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에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강도 높은 감시·통제 속에서 생활하는 해외 파견을 꺼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나 평양 주민들은 상대적으로 외부 정보 접근성이 높고, 해외 파견 경험자들과 접촉할 가능성도 크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다녀온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약속한 만큼 돈을 받지 못했고, 현장에서는 이동과 통신이 엄격히 제한되며, 문제를 제기할 경우 강제 귀국이나 가족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해외 파견에 대한 환상이 점점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데일리NK AND센터

북한 당국엔 여전히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선발 기반 지방으로 이동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여전히 해외 노동자 파견을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으로 보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등 우호국으로의 노동력 송출을 계속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다만 최근에는 선발 중심이 평양 등 정보 접근성이 높은 도시 주민에서 지방 주민으로 이동하는 조짐도 감지된다. 지방 주민들은 파견 현장의 상황이나 러시아 전쟁 위험, 중국 공장 내 착취 구조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지방 주민들은 해외 파견을 ‘돈 벌 기회’로 인식하고 지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평양 사람들은 이것저것 듣는 게 많아 조심하지만, 지방에서는 아직도 외국에 나가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부 입장에서는 말이 적고 정보가 없는 사람들을 뽑는 게 더 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해외 파견 노동자 문제가 정보 격차의 문제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부 정보를 접한 주민들은 위험을 인식하고 선택을 주저하지만,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착취와 감시 및 통제 구조에 더 쉽게 편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출국 전부터 강도 높은 사상교육을 받는다. 현지에 도착한 뒤에는 여권을 빼앗기고, 숙소와 작업장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임금은 대부분 북한 당국과 파견 기관에 의해 공제돼 노동자가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약속보다 훨씬 적은 경우가 많다. 탈출이나 항의는 개인 처벌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해외 파견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은 실질적인 인권 보호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만 사로잡혀 있는 주민들에게 실제 임금 지급 구조, 감시와 통제, 강제 귀국 위험, 현지 정세의 불안정성에 따른 신변 위협 등을 최소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는 데일리NK에 “외부 정보는 결국 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생각을 변화시키는, 북한 사회 전반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기폭제라고 봐야 한다”면서 “정보의 유입은 인권이나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정보가 차단될수록 인권 보호의 수준이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파견 노동자 보호의 출발점도 결국 정보에 있다”면서 “부조리한 상황을 정보를 통해 알게 되는 만큼, 정보를 접하는 것이 곧 인권 향상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정보 접근권은 보편적 인권의 문제인 만큼 정치적·이념적 해석에 따라 제약돼서는 안 된다”면서 “국제사회 역시 대북 제재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정보 확산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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