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한국을 ‘적대국가’로 규정하고 반(反)통일 학습과 강연을 지속하며 대주민 사상교양 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북한 내 탈북민 가족들 사이에서는 가족과 생이별한 듯한 심리적 상실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4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에 따르면, 각급 기관·기업소와 학교, 인민반 등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지으며 민족 동질성과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하는 내용의 정치사상 학습과 강연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식통은 “공화국과 한국은 별개의 나라라는 두 국가 인식을 주입하기 위한 학습과 강연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며 “시작은 물론 마무리 때마다 한국은 더 이상 화해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 적대세력들의 도발 책동을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께서 단호히 짓부수고 국가의 존엄을 지켜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23년 말 당 전원회의에서 대남 노선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선언하며 선대의 통일 노선을 사실상 폐기한 데 따른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당시 김 위원장은 “우리가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 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북남(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올해 2월 열린 9차 당대회를 통해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가장 적대적인 실체인 대한민국과 상론할 일이 전혀 없으며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다시금 천명했다.
또 북한이 3월 말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에서 개정한 헌법에는 기존 헌법에 있던 통일 관련 표현이 모두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개정 헌법 2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역은 북쪽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 로씨야(러시아)연방,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라는 영토 조항을 신설해 두 국가 노선을 사실상 명문화했다.
소식통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 ‘하나의 민족, 하나의 핏줄’이라는 말이 위안이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통일이 더 이상 시대적 과제가 아니라는 학습과 강연이 이어지면서 주민들, 특히 탈북민 가족들은 마치 생이별을 당한 심정이라며 착잡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내 탈북민 가족들에게 통일 담론의 공식 폐기는 언젠가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마저 차단당하는 가혹하고 잔인한 선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기존에도 한국은 주적이라는 사상교양을 늘 받아 왔다”며 “그래서 적대국이라는 표현 자체는 낯설지 않으나 더 이상 한민족이 아니며 통일은 필요 없다는 말은 주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고, 탈북민 가족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아쉬운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소식통은 “5000년 역사를 가진 같은 민족이 완전히 적국으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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