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갇힌 인권] “피 줄줄 났지만…” 北 파견 노동자 울분

<편집자주>
데일리NK는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도하고자 합니다. 현재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파견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 이를 더 강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데일리NK는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 주민들이 해외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억압된 채 인권을 유린 당하는 사례들을 수집·취재해 국제사회에 전함으로써 그들의 인권이 개선되고 상황이 변화되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2019년 6월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상점으로 들어가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사진=데일리 NK

“동태 같은 것을 손질하다 칼에 베여 피를 줄줄 흘렸고 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대충 붕대만 감고 일해야만 했어요.”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한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 A씨는 작업 환경을 묻자 이같이 울분을 터트렸다. A씨에 따르면 치료는 대부분 자력으로 감당해야 하는 구조라 이곳에서 일하는 다른 북한 노동자들도 작업 도중 크게 다쳐도 대충 처치하고 계속 작업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지린(吉林)성의 한 수산물 가공공장에 파견돼 있는 북한 노동자 B씨도 비슷한 경험담을 쏟아냈다. 특히 그는 작업 현장에 ‘흐름식’(자동) 노동이 강조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1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는 체계로 공정이 돌아가기 때문에 다쳐도 작업 중단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유통기한이 지난 의약품이 전부인 상황에서 치약으로 소독하고 붕대를 감는 식의 치료가 반복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심지어 사고가 은폐되거나,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가 귀국 조치 위협을 받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쳐도 작업 멈추지 못 해…치료는 노동자 개인의 몫

북한 노동자들에게 부상은 일을 쉴 사유가 되지 않았다. A씨의 사례처럼 크게 다친 순간에도 붕대만 감고 곧바로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현장의 북한 관리자는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할 대신 “왜 너만 왜 다치냐”, “왜 일에 집중하지 못하냐”는 비난만 할 뿐이다.

B씨는 “손에 피가 줄줄 나는데도 계속 상자 운반 작업을 하라고 했다”면서 별다른 조치 없이 일을 이어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동무는 칼에 손가락이 깊게 베였는데 (간단한) 지혈만 하고 2시간 넘게 그대로 일을 해야 했다”면서 “조장은 ‘흐름식인데, 멈추면 집단이 너 하나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본다’는 말만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자들은 이렇듯 다쳐도 작업을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국제 기준에 따르면 이는 명백한 안전권, 건강권 침해이자 강제노동으로 간주될 수 있는 심각한 인권 문제다.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는 기본적인 의약품조차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결국 치료는 노동자 각자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A씨는 공장 내 치료 체계에 대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간단한 도구는 있어 웬만한 상처는 자체로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통약이나 감기약 같은 것은 있긴 하나 떨어질 때가 많고 머리 아파서 (두통) 약을 좀 타 먹으려 해도 잘 주지 않는다”면서 “열이 불덩이 같아야 아픈 거지, 미열이면 아픔도 아니고 참으라고 하는 실정”이라고 증언했다.

B씨도 치료 환경의 열악함을 토로했다. 그는 “붕대, 꼬마 밴드나 옥도정기(소독약)가 있긴 하지만 유통기한이 지난 게 많다”면서 “보통은 일 끝나고 방에 와서 본인이 외출 때 사 놓은 약을 바르거나 그마저 없는 사람들은 치약 같은 걸로 상처 소독하고 고약(연고)을 바른다”고 전했다.

사고 은폐하고 문제 제기하면 위협…심한 부상자는 강제 귀국 조치

수산물 가공공장에서의 사고는 대부분은 상부에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았고, 은폐된 채 넘어갔다.

A씨는 “사람이 사망한 사고조차 은폐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치는 건 수백 번 은폐된다. 밑에 사람이 잘못하면 그 책임자가 처벌받는 연대책임제가 작동하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자도 무사할 수 없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은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씨 역시 “기계에 손 끼인 경우는 아예 기록을 안 남겼다”면서 “손가락뼈가 보일 정도로 다친 경우도 있었는데 조장이 ‘이건 개인 실수다. 외국 나오면 건강은 도급제(개인별 과제)’라면서 보고도 안 하고 그냥 다음 날 다른 작업에 또 넣었다”고 전했다.

이런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A씨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파리보다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무슨 문제를 제기하겠는가. 제기하면 ‘본인 앞에 차례진(분배된) 일이나 똑바로 하라’는 식이고 제기한 사람만 나쁜 놈이 된다”고 했다.

B씨는 “한 번은 한 주에 3명이 연거푸 다친 적이 있었는데 너무 위험하다고 조장과 반장, 책임자한테 말했더니 ‘불만 있으면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론 다들 입 닫고 다쳐도 조용히 넘겼다”며 위협을 받은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2019년 10월 여성들을 태운 버스가 조중우의교를 건너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중국 랴오닝성 단둥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 단둥으로 출근하는 북한 여성 노동자들로 추측된다. /사진=데일리NK

실제로 심하게 다친 노동자가 강제 귀국 조치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B씨는 “노동자 1명이 지난해 말 사고로 손목뼈가 부러졌는데 치료가 길어질 것 같다고 판단해 본사(총국)에서 ‘귀국 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은 중국 병원에서 자비를 들여서라도 빨리 치료하고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공장에서 중국 병원 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냥 실려 나갔다”면서 “귀국한 노동자는 사고로 인해 공장에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얼마를 떼먹히는 등 그동안 번 돈의 절반만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본보는 지난 2023년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 북한 당국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치료비는 국가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비용을 절대 지원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바로보기: 북한 “해외 노동자 치료 국가책임 아냐…비용 절대 지원말라”)

전문가들은 북한 파견 노동자들이 처한 이런 현실을 ‘국제 기준상 안전과 보건권이 철저히 박탈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구조적 강제노동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다.

류지성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본보에 “부상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강요받는 북한 파견 노동자의 현실은 단순한 노동문제를 넘어 국제사회가 다뤄야 할 인권 의제로 확장될 수 있다”면서 “UN 인권이사회 실태보고서, 한반도 관련 국제 포럼,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변협 등의 채널을 통해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고, 향후 강제노동 실태를 유엔 총회나 인권이사회 등을 통해 보다 폭넓게 확산시키는 방안도 강구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 연구위원은 이어 “북한은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자유권 규약에는 가입해 있어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대응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면서 “북한은 내정불간섭을 이유로 외부 개입을 거부하지만, 대북 제재 자체가 해외파견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으므로 인권 침해 사안으로 동시에 접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데일리NK 기획취재팀=이상용 기자(AND센터 디렉터), 황현욱 AND센터 책임연구원/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