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조선노동당 출판사가 지난 2020년 발간한 김정은 혁명역사 책 전문을 데일리NK가 입수했다. 책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후계자로서 처음 결심한 순간부터 제2차 북미 정상회담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본보가 입수한 책 제목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 혁명역사’로, 총 5장 33개의 절로 구성돼 있다.
북한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혁명역사’와 같이 최고지도자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주요 선전 도서로 제작해 우상화를 꾀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을 정당화하고 각각의 업적과 혁명성을 부각해 정치적 권위를 확보하려는 의도에서다.
김정은 혁명역사는 선대 수령들의 혁명역사와 달리 출생에 대한 부분이 빠져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혁명역사에는 각각 1912년 평양 만경대, 1942년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가 1장 1절의 가장 첫 문장부터 나온다.
김정은 혁명역사에 출생 부분이 담기지 않은 것은 이와 관련된 북한 당국의 선전 방향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만 향후 증보판에서 김정은의 출생에 관한 내용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혁명역사는 1998년 10월 1일 아버지 김정일 그리고 어머니(고영희로 추정)와 함께 백두산에 올라 혁명을 계승할 것을 천명하는 ‘백두산 맹세’를 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김정은의 출생 연도는 1984년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미뤄보면 당시 김정은은 14세의 청소년이었다.
또 김정은은 이즈음에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학 중이던 시기에 백두산을 방문해 맹세를 했다는 것으로, 사실 여부를 떠나 이는 후계자로서의 정당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연출로 해석된다.
실제로 김정일은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본격적으로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그 직후 김정은이 ‘백두산 맹세’를 통해 후계자로서의 의지를 천명했다는 것은 김정일 체제 출범과 동시에 김정은이 후계 수업에 들어갔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체제의 안정성을 부여하려는 선전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아울러 책에는 김정은의 우월성, 특출함을 선전하는 내용도 담겼는데, 특히 “원수님(김정은)께서는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을 비롯한 모든 군종과 병종, 전문병, 근무병 부문에 완전히 정통했다”, “세계 전쟁사에 기록된 수많은 전법들과 각종 무장 장비들, 최신 군사과학기술을 깊이 습득했다”는 등 군사 분야에 능통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이밖에 “기초과학 분야는 물론 컴퓨터 공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기술과 정치와 경제, 문화, 역사와 지리, 주체농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 걸치는 방대한 서적들을 전면적으로 탐독하시면서 풍부한 지식을 쌓았다”는 언급도 있었다.
최고지도자가 정치·경제·군사 등을 망라해 모든 분야를 ‘통달’했다는 내용은 기존 선전물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우상화된 지도자 형상을 구축하기 위한 북한의 수사로 분석된다.
또한 책에는 김정은이 김정일의 신변 안전에 깊이 관여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2004년 11월 20일 김정은이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앞서 행사장을 직접 사전 점검하고 최고지도부를 노리는 적의 위협에 대비한 대책을 세웠다는 내용이다.
앞서 그해 4월 22일 평안북도 룡천역에서 열차 폭발로 150여 명이 사망하고 1300여 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한 바 있는데, 중국 순방 후 귀국 중이던 김정일의 열차가 해당 구간을 지나기 불과 30분 전에 사건이 일어나 일각에서는 이를 김정일 암살 시도와 연계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할 때 룡천역 열차 폭발 사건이 신변 안전 챙기기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 아니라 책에는 김정은이 2005년 8월을 비롯해 여러 차례 ‘적들의 암해(暗害) 책동에 각성을 높이고 이를 적발·분쇄하기 위한 빈틈없는 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는 내용도 있다.

한편, 2018년과 2019년에 열렸던 1, 2차 북미 정상회담 관련 내용도 김정은 혁명역사에 담겨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차 싱가포르 북미회담에 대해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조미(북미)수뇌상봉과 회담은 조미 사이의 극단적인 적대관계를 끝장내고 두 나라의 이익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세기적 만남”이라며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지니신 천리 혜안의 예지와 출중한 정치 실력, 높으신 국제적 권위와 탁월한 영도력의 일대 과시였다”고 서술돼 있다.
그리고 결렬된 2차 하노이 북미회담에 대해서는 “미국이 조미 관계 개선과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풀어나갈 똑똑한 방향과 방법도 없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 방법에만 매달려 회담에 난관을 조성했다”고 밝혀, 책임을 미국에 전가했다.
그러면서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회담에서 자주 적대를 확고히 세우시고 우리 국가의 이익에 저촉되는 문제는 어느 하나도 양보하지 않으시면서 원칙적인 투쟁을 벌이시여 미국 측을 궁지에 몰아넣으셨다”며 김정은의 외교력을 치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