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당국이 양강도 삼지연시를 3단계에 걸쳐 개건하고 농촌진흥의 모델로 내세우는 과정에서 일부 주민들을 인근 보천군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산간 문화도시의 표준으로 북한 매체에 화려하게 소개된 삼지연시의 이면에는 터전을 잃고 내몰린 주민들의 깊은 상처와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3일 데일리NK 양강도 소식통은 “3년여 전 삼지연시 꾸리기 사업 과정에서 포태노동자구(현 포태동)에서 보천군으로 강제 이주된 주민들이 아직도 현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삼지연시에서 보천군으로 강제 이주된 주민들 가운데는 탈북민 가족을 비롯해 북한이 소위 ‘적대계층’으로 분류하는 주민들이 대다수 포함돼 있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북한이 삼지연시를 이상적인 본보기 지방 도시로 선전하면서 적대계층에 해당하는 주민들을 선별적으로 이주시킨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강제 이주된 주민들 특히 노인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육체적·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포태에서 보천군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지만, 노인들에게는 50~60년 살아온 터전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으로 큰 압박”이라며 “더구나 자신들이 살던 마을에 새 살림집이 들어서 누군가 살고 있는데 자신들만 낡고 허름한 곳으로 옮겨졌다는 데 상당한 허탈감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강제 이주된 주민들로서는 허무감이나 소외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보천군으로 강제 이주된 60대 노인의 사망 사건이 조명되고 있다. 이 노인은 자식 중 1명이 한국으로 간 탈북민 가족으로, 이에 강제 이주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21년 말 보천군으로 옮겨졌을 때부터 “마치 뿌리 뽑힌 채 척박한 땅에 던져진 기분”이라며 깊은 상실감을 드러내 왔고, 강제 이주된 후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결국 지난달 숨을 거뒀다고 한다.
소식통은 “젊은이들도 새로운 곳에 적응해 사는 게 쉽지 않은데 나이 든 노인들은 어떻겠느냐”면서 “더 좋은 곳으로 더 좋은 집에 이주했다면 몰라도 낡은 집으로 쫓기듯 옮겨 가 심신이 쇠약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삼지연시 개건을 계기로 ‘혁명의 성지’에 걸맞은 주민 구성을 새롭게 하려 강제 이주를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 체제 선전을 위해 일부 주민들이 오랜 터전을 잃고 낯선 곳에 내몰리는 등 고통을 겪은 셈이다.
소식통은 “TV나 신문에서는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삼지연시를 내세워 사회주의 문명국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뒤편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는 신음하는 주민들이 있다”면서 “적대계층이라는 이유로 강제 이주된 주민들은 지금도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며 살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백두산을 끼고 있는 삼지연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약 5년간 세 단계에 걸친 대규모 개건 사업이 진행됐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삼지연시를 ‘군’(郡)에서 ‘시’(市)로 승격시켰고, 현재까지도 국가적인 본보기 도시로 내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