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공기가 뼈를 에는 함경남도 두메 산골의 한 농장,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연말을 맞아 솟아나는 온기와 북한 농촌 주민들이 나누는 소박한 웃음과 음식은 이들의 겨울을 조금은 덜 춥게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19일 데일리NK에 내부 소식통은 “함경남도 당은 12일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도안의 농업 근로자들이 한해동안 수고를 평가하고 연말 행사를 통해 화합을 다지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함경남도 내 농장들이 소박한 연말 망연회(송년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지난 15일에는 한 농장에서 연말을 맞아 농장원들이 함께 저녁 한 끼를 나누는 작은 잔치가 열렸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모임…경제난 속 농장원들의 연말 행사
올해는 경제 상황이 전년보다 더 어려워져 음식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서로 힘을 모아 선전실에서 작업반 별로 소규모 잔치를 준비했다. 만둣국, 두부밥, 감자떡 같은 소박한 전통 음식이 한데 모였고 주민들은 그 음식을 나누며 서로의 건강을 묻고 안부를 챙기는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는 게 소식통의 이야기다.
도당의 지시로 집행된 이번 연말 농장 행사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 주민들이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연대와 단합을 느끼는 따뜻한 시간이 됐다는 후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민들이 손을 맞잡고 소규모로 준비한 이 행사는 힘든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하고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는 특별한 자리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실제 소식통은 “한 농장원은 ‘농장에서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새벽부터 두부를 만들어 두부요리와 두부밥을 준비했는데 비록 양은 적었지만 이웃들과 함께 나눠 먹으니 마음도 따뜻하고 한 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며 연말 농장 행사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 해 동안 농사일로 몸도 마음도 지쳤지만 이번에 도당의 지시로 연말에 농장원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잔치를 열고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서로의 정을 나누다 보니 살아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과 땔감을 나누다…연말을 보내는 북한 농촌의 정(情)
이런 가운데 올해 연말에는 도에서 주관한 ‘농업 근로자 연말 행사’가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돕는 취지로 한층 확대돼 시행됐다.
이 농장 마을에서는 주민들이 연말 농업 근로자 행사의 일환으로 작업반별 어려운 농장원 세대를 돕기 위해 구멍탄과 땔나무를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주민들은 구멍탄 몇 장이라도 더 필요한 이웃에게 내어주며 혹독한 겨울을 함께 이겨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도당은 도안의 농장 농업 근로자 연말 행사를 통해 주민들이 서로 돕고 이끌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지시했다.
소식통은 “한 여성은 ‘우리 집도 어렵지만 땔감이 없는 옆집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요, 나눌 수 있을 때 나누고 어려울 때는 도움을 받는 것이 농촌의 미덕’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이어 “마을에서는 작업반별로 음식 가짓수 경쟁을 벌이거나 음식을 낭비하지 않고 주민들이 감자떡과 강냉이(옥수수)술을 나누며 추운 겨울에도 서로 위로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는 술과 먹자판 대신 소정의 술과 소박한 음식을 나누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라는 지침이 내려졌다”며 “농장 관리위원회 간부들이 작업반별 식사 장소를 일일이 돌며 격려한 덕분에 마을 전체가 한층 따뜻하고 훈훈한 분위기로 가득했다”고 밝혔다.

남북한 연말 나눔 풍경…같은 정서, 다른 모습
북한의 연말 풍경은 한국의 나눔 문화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지자체와 자선 단체나 봉사 단체가 주도해 연탄 나눔이나 푸드뱅크 같은 방식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는 반면 북한은 주민들의 자발성보다는 중앙에서 주도하는 집단 행사가 강조된다. 이는 체제 특유의 조직적이고 계획된 방식으로 연말을 보내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북한은 농장 마을마다 조직적인 참여를 독려하며 경제난 속에서도 주민들이 공동체적 의무감을 통해 연대하도록 이끌고 있다. 이번 연말 행사도 농장원들이 연말을 맞아 서로 돕고 함께 겨울을 극복하도록 단합을 독려하는 북한 체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연말에 나눔의 가치를 실천한다는 점에서는 이번 농장의 연말 행사가 정서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북한의 올해 연말 나눔 풍경은 중앙의 조직적 지시 속에서도 주민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연대와 의지를 보여주는 시간이 됐다. 농장의 작은 잔치와 땔감 나눔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추위를 이겨내는 힘이 되었고 주민들은 “내년에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속에 따뜻한 정을 나눴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이번 연말 작업반 별 한끼 식사와 땔감 도와주기 사업이 힘들고 척박한 농장 현실에도 사람들에게 단합된 힘과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계기로 호평이 많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