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가 북한 당국이 환율 안정화를 위해 배포한 정치사업자료를 입수했다. 당국은 “환율 안정화에 국가와 인민의 운명이 걸려있다”고 강조했지만 북한이 제시한 정책에 환율 하락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는 결여돼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데일리NK가 입수한 정치사업자료 《모두 다 높은 공민적 자각을 가지고 환율안정사업에 적극적으로 떨쳐나설 데 대하여》는 지난 20일 내각이 전국의 당기관과 인민위원회에 배포한 것으로 것으로 총 9페이지에 걸쳐 환율 안정화의 중요성과 이를 위한 경제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설명 중간에 “※ 자기 단위의 구체적인 과업을 결부할 것” 이라는 문구가 수차례 반복돼 있는 것으로 볼 때 해당 자료는 당기관이나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일반 주민들에게 당의 경제 조치를 설명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 당국은 해당 자료에서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한 원인이 유언비어와 심리적 불안감에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내화 가치가 떨어지고 외화의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일부 기업체와 주민들의 외화 수요를 급격히 증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환율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유언비어에 말려들어 외화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구입하여 저축하는 현상을 철저히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외화 암거래 등 국가의 통제권 밖에서 현금을 유통시키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히 “모든 단위와 공민들은 현금을 유통할 때 국가가 정한 협동화폐거래소 환율인 1US$ : 8900원을 무조건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신고체계를 확실시 세워 환전상들이 협동화폐거래소 환율보다 높게 화폐를 교환해 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법 및 통제 기관에도 “국가의 통제권 밖에서 외화를 암거래하고 유언비어를 내돌려 환율 안정에 저해를 주는 행위들을 사정을 보지 말고 단호하게 쳐갈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국가가 정한 환율보다 비싸게 외화를 교환하거나 물자를 거래할 경우 현금과 물자를 무조건 몰수하고 이를 어기는 대상에 대해서는 공개투쟁을 끝까지 반복하는 등 “끝장을 볼 때까지 법적 투쟁의 도수를 높이라”고 명령했다.
이 밖에도 북한 당국은 해당 자료에서 국가의 통제권 안에서만 물자를 유통할 것, 국가가 승인한 가격표를 제시하고 공시된 시장한도 가격 내에서 물건을 판매할 것, 국가기관이나 국영상점의 외피를 쓰고 돈벌이를 하는 행위를 절대 하지 말 것, 전자결제체계를 적극 이용할 것 등을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이번 정치사업자료에서 환율안정과 관련해 새롭게 시행되는 국가적 조치들을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으로는 ▲모든 은행에서 기관과 기업체 사이의 대금결제를 돈자리를 통한 환치결제 위주로 진행하지만 필요에 따라 현금도 지출 가능, ▲전자결제를 이용할 경우 우대 조치 적용, ▲봉사단위에서 치약·치솔·세수비누 등 15가지 필수 소비품을 승인된 가격대로 판매, ▲기관이나 기업이 개별 주민과 거래해 생산 물자를 구입할 경우 책임자가 사인한 영수증 발급, ▲경공업공장이 생산한 상품을 국영상업망에서 직접 판매, ▲기업체 호상(상호)간 또는 인민경제 부문에서 외화와 내화의 교환 가능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의 새로운 경제 정책에 대한 사상 교육을 받은 주민들은 인민들의 경제 활동을 억압하는 통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미 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이 국가가 정한 환율의 두 배에 달하는데, 이제 와서 이런 지침을 내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결국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본보가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북한 시장물가 조사에 따르면 지난 15일 북한 평양, 신의주, 혜산 지역 평균 북한 원·달러 환율은 1만 6150원으로 북한 당국이 제시한 협동화폐거래소 환율(8900원)보다 1.8배 높다. 협동화폐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손해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이를 이용하지 않고 있고 상당수는 협동화폐의 존재 여부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소식통은 “정치사업자료대로 한다면 지금 거래되고 있는 모든 물자와 돈을 몰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파렴치한 행위라며 불만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