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평양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의 한 연구사는 평양시 내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의심 증상자의 검체를 연구하던 중 국제적인 연구 논문과 비교해 과학적으로 확진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했다.
이 연구사는 즉시 상급 기관에 자신의 연구 사례를 보고했으나, 이는 코로나 청정국임을 강조하는 당시 북한의 대외 선전과 상충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1명도 없다는 이른바 ‘제로(0) 코로나’를 주장해 오던 북한 당국에 이 연구사의 보고는 국가 방역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됐다.
귀중한 발견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한 이 연구사는 오히려 국가에 의해 반역 혐의자로 낙인찍혔다. 이후 그해 12월 이 연구사는 실내 처형됐고 그 가족들 역시 하룻밤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사건은 국가과학원 생물공학분원의 동료들은 물론 북한 과학계 전반에도 커다란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이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연구사들의 과학적 연구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더욱이 연구사가 처형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 평양 시민들 사이에 불안과 혼란이 확산했다. 평양 시민들은 국가의 방역 정책 집행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며 북한 당국이 공개하는 공식적인 정보보다 소문에 의존해 내부의 진짜 현실을 파악해야 했다.
당시 북한은 방역 성공이라는 미명하에 김정은의 정치적 기반을 한층 더 두텁게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몸살을 앓을 때 코로나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은 김정은의 탁월한 영도력의 결과물이라고 선전하는 데 열을 올렸다.
국경을 닫고 외부와의 모든 연결을 차단하며 주민들을 강력히 통제하는 극단적인 조치도 전 세계적인 코로나 위기에서 국가가 인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취한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는 데 주력했다.
북한은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 아니면 버티고 견뎌 내면서 자식들을 살리겠는가 하는 운명적 선택 앞에 서 있다”고 강조하며 오직 김정은을 믿고 따르면 현재의 코로나 청정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수령의 리더십을 부각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던 북한의 이 같은 주민 통제 논리는 주민들의 고통 감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됐다. 이 과정에 수많은 주민의 목숨이 희생되기도 했고, 코로나 확진이라는 것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를 발견한 연구사 역시도 그중 하나였다.
한 평양시 주민은 “국가가 코로나 확진자 0명이라고 선전할 때 사람들은 코로나를 코로나라고 부를 수도 없었고 그저 입을 닫고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며 “그때 겪었던 신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차라리 죽느니만 못할 정도였다”고 암울했던 코로나 시기를 회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연구사가 실내 처형된 지 6개월 후인 2022년 5월 북한은 국내 확진자 발생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그리고 이후 7월에는 코로나19 최초 발생 지역이 남측 접경지역인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라고 주장하면서 사실상 대북전단을 지칭하는 ‘색다른 물건’이 원인이라고 밝히는 등 확진자 발생 사실조차 남측에 책임을 떠넘기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