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칼럼] 북한 평양, 비날론 신화를 꿈꾸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25일 평양시 서포지구 새 거리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이는 평양시 화성지구 2단계 1만세대 살림집(주택) 건설과 별도로 진행되는 4100세대 건설사업이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1953년 10월 김일성 주석은 전후복구를 위한 한 회의연설에서 주택문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가운데“전체 인민들이 비단옷을 입고 이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살도록 하겠다”라는 의지를 밝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수없이 그 목표를 채워보려고 다양한 정책과 함께 애를 써보았지만 결국 실현하지는 못했다.

또한, 북한의 3대를 이은 김정은 위원장 역시 후계자 시절이었던 2010년 11월 초 평양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3년 안에 국민경제를 1960∼1970년대 수준으로 회복시켜, 흰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생활 수준을 달성해야 한다”며 자신의 지향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10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목표에 가까워졌는지 묻고 싶다.

과연 김정은 위원장이 꿈꾸는 1960∼1970년대 수준은 어떠했을까? 1970년대는 지금까지 북한에서 가장 황금기라 할 만큼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북한은 1953년부터 소련과 동유럽 국가의 지원으로 전후복구를 마치고 1960년대는 민간 경제부문의 발전도 상당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이어 1970년대 들어서면서 그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에서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는데, 특히 중화학공업뿐만 아니라 경공업에 이르기까지 민간경제 부문의 발전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루었다. 경제 수준을 남한과 비교를 한다면 비슷하거나 또는 나은정도라 할 만큼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인민들의 세금을 폐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평양 지하철, 컬러TV 송출 등 많은 분야에서 남한보다 앞서간 모습을 보인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의 성장과 발전 신화는 이후 더 이상 언급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남한은 고도성장의 탄력을 받아 북한과의 격차를 계속 벌려나간 반면, 북한은 여러 정책적 실패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그중 북한의 비날론 개발과 산업화 과정은 북한 사회주의 시스템의 모순과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비날론은 1950년 월북한 리승기박사에 의해 발명된 합성섬유로서 당시 북한경제와 산업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비날론이 북한 사회주의의 당면과제인 ‘의·식·주’ 문제에서 주민들의 피복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방안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일성 주석은 즉시 양산체제를 갖추기 위해 50년대부터 함흥지역에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에는 더욱 큰 규모의 공장을 평안남도 순천에 건설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비날론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량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데 있었다. 다시 말하면 비날론은 실험실에서 발명된 신소재였으나 경제성 등 신중한 검토를 통해 개발단계를 거친 후 실행했어야 하는데 최고지도자의 결정에 따라 막대한 투자가 먼저 이루어진 것이다. 결국, 이것은 충분한 전력공급이 지속되지 않았던 고난의 행군 시절 인민들에 대한 국가 보급망이 끊기면서 비날론의 수요 역시 동시에 급감하며 공장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비날론이 ‘주체섬유’로 불리는 것은 외부로부터 원자재나 기술의 지원없이 생산 공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30여 년이 흐르면서 부분적으로 생산 재개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다양한 소재의 섬유가 북한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아직도 자력갱생의 구호 아래 비날론에 대한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공개한 평양시 서포지구 건설 조감도. /사진=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3년간 평양을 비롯한 외곽지역에 대규모 주거단지 등 대규모 건설사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아직도 화성지구 등의 대규모 주거단지가 건설되고 있으며, 지난해는 대동강 변의 다락식(테라스형) 살림집이 완공되어 고위층 인사들이 입주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이러한 건설 행보는 애민사상에 따른 듯 인민들의 살림집 건설에 집중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과거 10년 전부터 관광산업에도 막대한 건설투자를 해왔다. 삼지연 관광지구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는 남한의 대규모 건설사업을 비웃기라도 하듯 과감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삼지연 관광지구와 원산갈마 해안관광지구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수차례 현장을 방문하며 부진한 공사진척에 대해 간부들을 호통치는 등 애태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원산갈마지구는 당초 목표보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완공되지 못하고 골조를 드러낸 채 방치된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북한이 현재 핵 문제에 따른 경제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국경 폐쇄로 인해 관광사업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상황인 점에 비춰본다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 역시 막대한 사업을 시행하는 데 있어 체계적인 경제성 분석이나 의사결정 절차에 따르기보다는 최고 권력자의 정책적 판단이 우선된다는 점에서 공통된 원인이 될 수 있다. 물론 평양에 지어진 고층아파트의 문제점들이 터무니없이 부족한 주거문제에 가려져 있지만, 잦은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추어 서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먹는 물까지 계단으로 길어다 먹여야 하는 고층아파트의 현실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추진되는 김정은 위원장의 건설 행보를 결코 성공적인 정책이라 평가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건설사업은 다양한 정책과 정치적 판단에 의해 시행되지만 체제유지와 평양주민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의도와 무관치는 않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평양의 고층건물과 화려한 색상연출 등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도시와 건축은 제대로 된 기능과 성능을 갖춰야만 주민들에게 안전과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다. 그러나 단순 반복적 건축행위만으로는 주민들의 만족을 충족시키는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충분한 도시 기반시설이 확보되어 급수와 배수, 충분한 전력 등의 에너지 공급, 안전한 도로 등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또한, 건축물에 사용되는 단열재, 창호, 전기 및 설비 관련 기자재 등이 충분한 성능을 갖출 때 건축물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다양한 산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더욱이 산업이 고도화된 시대에는 대외무역을 통해 부족한 원자재와 설비의 수입을 통해 관련 산업이 원활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비날론 산업에서 보았듯이 북한의 무리한 자력갱생은 더욱 많은 비효율성과 과잉투자를 유발하게 된다.

최근까지 평양에 우뚝 선 수많은 고층 살림집, 과거에 경험했던 비날론 미완성 신화를 교훈 삼아 주민들의 사랑받는 보금자리가 되길 바란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