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지은 하버드대 연구원 “北 주민 도울 기회는 축복”

10여년 간 '북한 인권과 기술' 주제로 지속 연구… "정보 확대될 때 실질적 변화 일어날 것"

/그래픽=데일리NK

북한 당국이 코로나19 차단을 명목으로 2020년 1월 국경을 봉쇄하고 같은 해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외부 영상물에 대한 시청과 유포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음에도 북한 주민들의 욕구는 감소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데일리NK와 사단법인 통일미디어(UMG)가 진행한 ‘2022 북한 주민의 외부 정보 이용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북한 주민 50명) 중 98%가 ‘한국 또는 미국 등 외국 영상물을 시청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카르(Carr) 인권정책센터의 백지은 연구원은 “드라마와 영화 등 외부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의 욕구가 지속되고 있다면 북한에 전달되는 정보 유입 경로를 다각화하면서 동시에 그들이 단속에 노출되지 않도록 기술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0년 전부터 기술을 통해 북한 인권 향상 방안을 연구해온 백 연구원은 최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카르 인권정책센터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담당하는 리서치 프로젝트 매니저로 활동을 시작했다.

학부 시절에도 대학 내에서 북한 인권 단체를 직접 조직하고 인권 향상을 위한 활동을 해온 백 연구원은 졸업 후 구글에 입사해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북한 주민의 정보 이용 확대와 기술’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 석사 과정을 통해 폐쇄 국가들의 정보 접근 정책을 공부하면서 이를 북한 사례에 적용할 방안을 연구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 동안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 확대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NGO) ‘루멘’을 설립했던 그는 올해 하버드대 학생들과 함께하는 ‘북한의 기술과 인권’에 대한 스터디그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 증진에 어떤 기술을 접목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는 백 연구원을 서면으로 만나봤다.

백지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카르(Carr) 인권정책센터 연구원. /사진=백지은 연구원 제공

–미국 내에 북한 인권을 연구하거나 지원하는 단체들이 이미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하버드 내에서 북한 인권만을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언급한 것처럼 미국에는 인권을 연구하는 많은 NGO들이 있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인권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다. 기술을 북한의 인권 향상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가 나의 주된 연구 주제다. 하버드에서 12년 동안 공부하거나 근무를 해왔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모든 연구와 행사들은 북한의 인권과 기술이라는 주제에 집중돼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많은 교수진과 학생들로 이뤄진 많은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연결해서 북한 인권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싶었다.
올해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북한 인권과 기술에 대한 스터디그룹을 조직해 연구 주제에 대한 토론과 멘토링 작업을 진행하고 탈북민들이 북한의 기술 상황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를 마련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국경봉쇄가 시작된 후 주민에 대한 북한 당국의 통제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주민에 대한 단속과 통제, 검열이 강력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이라고 보나?

“외부 세계가 북한 주민들에게 질적으로 의미 있는 내용을 담아 양적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확대될 때 북한 주민들의 인권 향상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탈북민들에게 장학금이나 리더십 개발 교육, 전문성 교육 등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탈북민이 새로운 나라에서 자유롭고 발전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인식한다면 그들도 삶의 가치에 관한 생각이 변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 스스로 그들의 삶과 그들의 사회, 그리고 정치에 대해 비판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루멘’이라는 비영리단체를 통해서 북한에 유입되는 정보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다. 북한에 들어가는 정보가 많아지면 주민의 알권리도 충족되겠지만 이 과정에서 처벌받는 주민도 증가할 수 있다. 외부 정보를 이용하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기술적 방안을 실천할 수 있을까?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단순히 정보 유입을 확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단속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방안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우선 북한 주민에게 전달하는 콘텐츠의 내용이 전략적이고 세심하게 관리돼야 한다. 예를 들어 외부 영상물만 전달하는 경우에는 단속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단속의 상황에서 이를 모면할 수 있도록 북한 당국이 허용하는 콘텐츠를 함께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또 북한 정권이 콘텐츠나 정보 검열을 위해 어떤 기술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발 빠른 인식과 분석이 중요하다. 북한 당국의 외부 정보 이용자 색출을 위한 기술 검열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 북한 인권 증진이라는 목표를 위해 집중해왔다. 북한 문제에 집중하고 헌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실 2005년 하버드대에 입학할 때는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료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북한 정치범수용소에서 탈출한 강철환 씨의 강연을 듣고 북한의 인권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내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 모두가 자신보다 취약한 환경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성경 속에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던 한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상해를 입고 쓰러져 있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를 보고도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은 그를 도와줬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유명한 설교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 멈추면 나는 어떻게 될까’ 라는 ‘나 중심적인’ 질문을 했겠지만, 사마리아인은 ‘내가 저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될까’라는 상대 중심의 질문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두 번째 질문(사마리아인의 질문)이 나에게 큰 영향을 줬다. 내가 북한 주민을 돕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을 돕지 않으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지구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다. 북한 주민을 도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축복이다. 자유로운 북한을 위해, 북한 주민을 돕기 위해 내 인생을 바치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