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주요 간부들을 대상으로 백두혈통 구성원들의 혁명위업을 강조하는 내용의 포치문을 하달하고 교양 강연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이 공개되면서 동시에 후손의 위상과 권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18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 현장에 딸과 함께 등장한 데 이어 최근에는 시험발사에 관여한 공로자들의 기념사진 촬영 현장에 동행하기도 했다. 실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7일 기념사진 촬영 소식을 전하면서 김 씨 부녀가 나란히 찍힌 사진을 여러 장 공개했다.
29일 데일리NK 북한 내부 고위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27일 오전 당 주요 간부들을 대상으로 포치문을 중심으로 한 강연회를 진행했다. 북한 매체를 통해 딸의 두 번째 공식 석상 등장 모습을 공개하면서 동시에 간부 대상 사상 교육을 실시한 셈이다.
당국이 이처럼 발 빠르게 관련 포치문을 하달하고 주요 간부를 대상으로 사상 교육을 실시한 것은 김 위원장이 중요 행사에 자녀를 대동한 것에 대한 간부들의 비판적인 평가를 사전에 차단하고 이에 대한 간부들의 동향(여론)을 장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평가된다.
선전선동부와 조직지도부가 공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파악되는 포치문에는 ‘만경대 가문, 백두산 혈통의 존귀한 자제분들은 모두 우리 혁명 위업 완성의 거룩한 토대가 되는 분들’이라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만경대 가문’은 증조부 김형직으로부터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 그리고 김 위원장까지 이어지는 4대를 이르는 것으로, 권력 세습의 정당성과 김씨 일가의 위상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에서 쓰이는 표현이다.
‘백두산 혈통’이 김일성의 항일투쟁 역사와 공로를 바탕으로 혁명의 사명을 갖고 태어난 후손을 의미하는 표현이라면 ‘만경대 가문’은 김형직으로부터 이어진 적통(嫡統)임을 강조하는데 방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2009년 김정일의 뒤를 이은 후계자로 낙점됐을 때에도 “김형직 선생님으로부터 어버이 수령님(김일성)과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대에 이르는 만경대혁명일가의 숭고한 지향과 포부는 무궁 번영할 강성대국”이라고 강조하는 등 ‘만경대 가문’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北 ‘만경대 가문’부각 3대세습 정당화 수순”)
다만 공개된 딸이 김 위원장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낙점된 것은 아니라는 게 내부 고위 소식통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또 다른 고위 소식통은 “공개된 딸이 후계자가 될 수는 없다”며 “만약 후계자였다면 어린아이처럼 아버지와 손을 잡고 있거나 품에 안겨있는 모습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상화는 일반인과 다른 특출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지도자를 신격화하는 것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유약한 어린아이 이미지를 절대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의 경우에도 권력을 잡은 이후 우상화 차원에서 3살부터 총을 쏘고 자동차 운전을 했다는 신화적 일화가 대대적으로 선전됐다.
현재 북한 내부 주요 간부들 사이에서는 후계자는 첫째 아들이라는 인식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후계자는 걸출한 능력을 갖춘 완전한 성인으로 등장해야 하기 때문에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있는 것이라고 소식통은 설명했다.
한편, 김 위원장이 정치적 의미를 갖는 핵무력 관련 행사에 두 번이나 자신의 딸을 대동한 것은 자신의 모든 혈통은 일반 인민과 구별되는 우월성을 가지고 있음을 각인시키려는 목적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소식통은 “로(老)지휘관도 허리를 굽혀서 악수하는데 자제분은 10살 어린 아이임에도 허리를 굽히지 않았다”며 “영도자의 자제도 영도자로 존귀하게 대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