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팔아 아들 수술비로 바친 40대 부부의 이유 있는 ‘소란’

[북한 비화] '자력갱생' 관철해야 하는 류경안과종합병원에 애꿎은 주민들이 희생양 돼

류경안과종합병원
평양 류경안과종합병원. /사진=북한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 홈페이지 캡처

평양 문수지구에 위치한 류경안과종합병원 창립 5주년이던 지난 2021년 11월 1일 저녁, 허름한 옷차림의 40대 남녀가 병원 정문에서 “원장이나 당비서를 만나게 해달라”며 애원하듯 소리쳤다. 1년 전부터 이 병원에 다니며 8세 아들의 사시(斜視) 수술을 받은 만경대구역 갈림길동에 사는 주모 씨와 그의 아내 김모 씨였다.

그들이 류경안과종합병원 창립기념일에 이렇듯 병원 정문 앞에서 소란을 피우며 간부들을 만나겠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집을 팔아서까지 아들의 사시 교정 수술 부담비로 넣었음에도 수술 결과가 좋지 못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간부를 만나려고 했던 것이었다.

2020년 주 씨 부부는 외아들의 사시가 자라면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에 심각함을 느끼고 대대적 선전으로 유명해진 류경안과종합병원을 찾았다. 당시 병원에서는 이른 시일 안에 교정 수술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에 주 씨 부부는 가장 빠른 날을 잡아 입원 절차를 밟겠다고 했다. 이에 병원은 담당 의료진을 분담해 개별 진료를 맡기려면 필요한 단계가 많으니 ‘심중한 판단’으로 ‘단단히 각오’하고 입원하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아들의 사시 교정 수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 주 씨 부부는 주저 없이 가능한 가장 빠른 날 입원하겠다고 했고 아내 김 씨가 보호자로 아들 옆을 지키기로 했다.

그런데 이른 시일 안에 수술해야 한다던 병원 의사들은 입원 3일째가 지나도록 주 씨 아들에게 간단한 질문만 하는 회진만 할 뿐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아내 김 씨는 아들의 옷을 챙겨 온 남편과 함께 병원 의료진을 찾아갔다.

“우리 아들은 언제 수술을 받을 수 있냐”는 주 씨 부부의 물음에 돌아온 의료진의 답변은 “준비되면 알려주겠다. 유능한 의료진을 붙여주려고 하는데 워낙 몇 명 안 돼 시간이 없다. 순서가 되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빨리 손을 쓸 수 있게 노력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도 아들의 수술 날짜는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수술받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어느 날 같은 입원실의 또 다른 환자 보호자가 조용히 김 씨에게 다가왔다. 그는 “여기서는 줄 것을 줘야 앞선 순서로 최고의 의사를 배정 받아 수술이 가능하다. 보통 열다섯 장(1500 달러)을 준비해서 담당 의사를 찾아가면 수술하는 진짜 담당 의사를 배정해 주더라. 이게 여기 예절이고 법”이라고 귀띔해 줬다.

아들보다 늦게 입원해도 신속히 수술을 마치고 나온 사람들은 간부 연줄로 뒷배가 있거나 발 빠르게 움직여 돈을 바친 대상들이었다는 것을 김 씨는 그제야 알게 됐다.

류경안과종합병원 내부 시설 모습
류경안과종합병원 내부 시설 모습. /사진=조선중앙통신

북한은 류경안과종합병원을 김정은 시대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산물’이라고 선전했으나 해마다 상납금 계획이 내려지거나 시설, 설비 등을 자체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아 병원 내적으로 이러한 ‘룰’이 생겨났다는 것을 주 씨 부부는 후에 알게 된 것이었다.

주 씨 부부는 그 즉시 만경대구역의 3칸짜리 아파트를 팔고 1칸짜리 낡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했다. 입원한 지 꼭 두 달 만에 받은 수술이었다.

그러나 수술이 잘되지 않아 또 한 차례 수술을 진행해야 해 주 씨 부부는 2차 수술비 마련을 위해 아파트에서 지하 단칸방으로 집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주 씨 부부는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이라 선전하는 무상치료제는 사실상 거짓말이다. 어느 병원에 가나 다 돈을 요구한다”고 한탄했다.

이렇게 재산을 몽땅 팔아 아들 수술비로 병원에 바쳤음에도 수술 결과가 좋지 않자 주 씨 부부는 병원 창립기념일 저녁에 병원을 찾아가 간부들을 만나게 해달라면서 “아들 눈을 고쳐내든지 돈을 내놓으라”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립 5주년 기념 정치행사와 기쁨에 찬 분위기를 망치고 사회주의 보건의료 정책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병원 측은 만경대구역 안전부가 이 사안을 다스려 달라 요청했고, 결국 그날 밤 주 씨 부부는 안전부에 끌려가 “다시 류경안과종합병원에 나타나면 평양시민 자격 박탈까지 검토하겠다”는 경고를 받았다.

김정은은 지난 2016년 10월 18일 완공된 류경안과종합병원을 찾아 “병원다운 병원, 세계적 수준의 병원,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내놓고 자랑할 만한 인민의 병원”이라며 “인민들을 위해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해놓았다. 소원이 또 하나 풀렸다”고 만족감을 표한 바 있다.

이후 류경안과종합병원은 인민의 병원, 사회주의 의료봉사 기지로 국가적 투자를 받아 승승장구했지만, 지속되는 국가적 경제난에 국가적 투자와 공급이 해마다 줄어들면서 류경안과종합병원마저 자체로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당의 ‘자력갱생, 간고분투’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금을 마련하려는 병원의 처사에 주 씨 부부와 같은 주민들이 애꿎은 희생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