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에 강냉이 훔쳤다가 악명 높은 교화소 ‘징벌 독방’에…

[북한 비화] 애도기간 운운하며 야산 왕복 벌까지…시신 아무렇지 않게 훼손하는 교화소 만행

북한 양강도 삼수군의 한 옥수수밭. /사진=데일리NK

2018년 12월 17일 오후 교화소의 철문이 열리고 사람 몰골이 아닌 20대 청년 이모 씨가 축 늘어진 채 교화소 초병들에게 들려 사방 1m 크기의 징벌 독방으로 옮겨졌다. 그가 악명 높은 징벌 독방 처벌을 받은 이유는 강냉이(옥수수) 두 이삭 때문이었다.

공무반에서 일하던 이 씨는 일손이 모자란 축산반에 잠시 동원돼 강냉이 이삭 마대를 나르는 일을 했는데, 그 과정에 두 이삭을 몰래 빼돌려 옷 속에 감춰뒀다가 작업 마감 때 진행되는 검신(檢身)에서 발각돼 초병들에게 끌려가 뭇매를 맞았다.

그는 교화소 초병들에게 너무 배고파서 마른 강냉이 두 이삭을 훔쳐 틈틈이 뜯어먹어 검신 전까지 다 먹어 치우려는 계획이었는데 먹을 틈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당시 교화소에서는 ‘장군님(김정일) 서거 7주기 애도 기간인 만큼 사건 사고나 비행을 저지르는 자는 무조건 징벌 독방 처벌을 내리겠다’는 지침이 선포된 상태였다.

이번 사건으로 이 씨가 속한 교화반이 ‘낙오자반’으로 오명을 쓰게 되자 담당 안전원과 초병은 이에 분격했다. 그리고는 이 씨의 목에 그가 훔친 마른 강냉이 두 이삭을 끈으로 마주 매 걸고 야산 중턱을 오르락내리락하게 하는 가혹한 벌을 줬다.

안전원과 초병은 무릎 꿇고 잘못했다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이 씨에게 “애도 기간에 배고프다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짐승”이라며 고문과도 같은 야산 왕복을 여러 차례 시켰다.

그렇게 1시간 조금 지났을까. 끝내 이 씨는 쓰러져 기절하고 말았다. 초병들은 개머리판과 구둣발로 이 씨의 몸 이곳저곳을 건드려보고 그가 완전히 정신 잃은 것을 확인하고는 질질 끌고 가 징벌 독방에 가두고 돌아갔다.

▲징벌 독방 수감 1일째

몇 시간 뒤 머리에 들이 부어진 찬물 한 동이에 겨우 정신을 차린 이 씨가 눈을 뜨자 그를 지켜보고 있던 감방 지도원(안전원)은 “오늘이 무슨 날인데 자빠져 있냐. 똑바로 무릎 꿇고 앉아있으라”고 소리쳤다.

감방 지도원은 야산 왕복으로 지쳐 몸을 움직이기도 힘겨워하는 이 씨를 강제로 일으켜 똑바로 앉히더니 “장군님 서거 날에 강냉이나 훔쳐먹는 반동”이라며 모욕을 주고 “오늘이 다 지날 때까지 똑바로 앉아 있으라”고 명령했다.

이후에도 감방 지도원은 감시카메라로 이 씨를 지켜보면서 그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하면 그 즉시 일으켜 앉히기를 반복하면서 내내 괴롭혔다.

▲징벌 독방 수감 2~6일째

이튿날 이 씨가 갇힌 징벌 독방 창살 앞에 잡부가 밥그릇을 내려놨다. 징벌 독방 수감자의 하루 급식량은 교화생 기준치의 절반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그러나 이 씨는 밥 덩이를 보고도 허겁지겁 달려들지도, 이렇다 할 반응도 보이지도 않고 기절해 쓰러지고 일어나기만을 거듭했다.

자신의 잘못을 씻기 위해서는 징벌 독방에서 그 어떤 것도 견뎌 내야 한다는 게 교화소의 입장이었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징벌 독방 수감자가 정신을 잃든, 굶어 죽든 교화소에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씨는 이곳에서 살아남아 고향에 홀로 남아 있는 여동생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징벌 독방 수감 3일째 되는 날부터 억지로 밥을 욱여넣기 시작했고 스스로 몸을 가누려 노력했다.

▲징벌 독방 수감 7일째

징벌 독방에 갇힌 지 7일째 되는 날 아침, 갑자기 감방 지도원과 잡부, 병방 위생원이 달려와 이 씨가 있던 독방 바로 옆의 독방 문을 열더니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그들은 몸을 구부린 채 누워 독방에서 사망한 교화생을 복도에 꺼내놓고 아무렇지 않게 시신을 훼손했다.

난생처음 보는 교화소의 시신 처리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끼친 이 씨는 ‘여기서 죽으면 저렇게 버려지겠구나’하는 생각에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징벌 독방 생활을 악착같이 버텼다.

사망을 확인한 뒤에는 무조건 시신의 다리 등을 부러트려 소각해 버리는 것이 교화소의 시체처리 규정이었다는 것을 이 씨는 후에 알게 됐다.

이는 비단 이 씨 혼자만이 보고 겪은 일이 아니다. 이 같은 교화소 내 만행은 형기를 마치고 나가 자신이 보고 겪은 일들을 용기 있게 증언한 수많은 주민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