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현실화되면서 반제국주의를 주장하는 북한이 직접적으로 러시아를 편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23일 외무성 홈페이지에 ‘지탄받는 일본주재 미국대사의 발언’이라는 글을 올리고 “미국이 일본을 대(對)로씨야(러시아) 압박 공조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지난 7일 람이메뉴얼 주일 미국 대사가 러시아의 실효 지배 아래있는 쿠릴열도 문제에 대해 일본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영토 야망을 추구하는 일본을 정치군사적으로 적극 뒷받침해주어 대로씨야 압박 전략 실현에 써먹으려는 미국의 도발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선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13일 외무성 홈페이지에 올라온 ‘나토는 결코 방위동맹이 아니다’라는 글에서도 북한은 “미국이 나토의 동쪽 확대를 끊임없이 추진하면서 동유럽지역에 미싸일(미사일)방위체계를 전개하고 나토 무력을 로씨야의 국경 가까이에 전진배치하는 등 로씨야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미국이 로씨야의 우크라이나 침공설을 내돌리고 있다”며 “로씨야를 힘으로 제압하기 위한 저들의 무력증강을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 같은 주장과 달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지역 2곳의 독립을 승인하고 파병을 지시하는 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될 경우 제국주의를 비판해온 북한이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두둔하기 힘들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24일 데일리NK에 “북한은 기본적으로 반제국주의와 반식민주의적 자주 노선을 대외 정책의 핵심으로 삼고있다”며 “반제국주의를 앞세운 정치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침탈이 명확해질 경우 러시아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면적으로 나타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반제국주의를 사회적 통합의 수단이자 정치적 절대 가치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독립국에 대한 침탈을 옹호한다면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은 자국 노동자를 러시아에 파견해 적지 않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고, 러시아가 북한의 제2 교역국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러시아와를 간접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세계가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집중된 틈을 타 북한이 미사일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에게 그동안 미뤄왔던 ‘정찰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할 수 있는 호기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며 “2017년에 시험발사한 ICBM 화성-14형과 화성-15형의 검수사격시험이나 모형은 공개했지만 아직 비행시험을 하지 않은 화성-17형 ICBM의 시험발사가 이뤄질 수 있다”고 관측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 악화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으로 인해 북한이 ICBM을 다시 발사한다 해도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구해 새로운 대북 제재를 채택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 정 센터장의 설명이다.
다만 미국의 군사·외교력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돼 있어 북한이 도발을 한다해도 미국에 주는 정치적 메시지가 부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박 교수는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여지지만 레드라인을 넘는 대미 도발의 경우 실질적인 무기 개발보다 정치적 목적이 크다”며 “미국의 대외정책이 러시아에 집중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대미 도발을 한다해도 북한이 기대한 반응을 얻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