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북한은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다

북한 국방과학원이 11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해 ‘대성공’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2일 보도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도 시험발사 현장에 참관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새해 들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재개를 시사한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북한의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고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북한을 우선순위로 만들어 북미협상을 하기 위해 북한이 도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의중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22일 이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조선신보는 “조선(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벼랑끝전술’을 쓴다고 본다면 그것은 오판”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신보의 주장은 이렇다.

“조선(북한)과 미제국주의와의 대결이 장기성”을 띄고 있으며 “대미외교 그 자체는 조선(북한)의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 시기 반드시 실현해야 할 (북한의) 선차적인 과업은 사회주의 강국의 건설”이며, “조선(북한)의 힘을 점차 소모약화시키자는 것이 미국의 본심”인 만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대외정치활동의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는 것이 조선신보의 주장이다.

물론,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 북한 매체든 조선신보든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홍보하는데 급급한 매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대결이 장기성을 띄고 있고 북한의 궁극적인 과제는 힘을 키우는 것이라는 주장은 눈여겨볼만 하다. 북한이 최근 들어 이런 주장을 반복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장기적 대결강조하는 북한

지난 19일 진행된 북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 보도에서도 비슷한 문구가 나온다.

“미제국주의와의 장기적인 대결에 보다 철저히 준비되여야 한다는 데 대하여 일치하게 인정하면서”

“물리적 힘을 더 믿음직하고 확실하게 다지는 실제적인 행동에로 넘어가야 한다고”

2020년 7월 김여정의 담화에도 비슷한 문구가 있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고 그러한 위협을 억제하며 그런 속에서 우리 국익과 자주권을 수호할 전망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실제적인 능력을 공고히 하고 부단히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상대해야 하며 그 이후 미국 정권, 나아가 미국 전체를 대상해야 한다.”

미국의 장기적 위협과 북한 자체의 힘에 대한 강조, 이는 “미제국주의라는 적대적 실체가 존재하는 한 대조선(대북)적대시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19일 정치국 회의)이라는 미국에 대한 근본적 불신과 맥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북미관계가 아무리 개선된다 한들,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는 근본적인 고민을 북한이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안보위협 해소는 국제사회 편입 여부에 달려

일각에서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 이뤄지면 북한의 안보위협이 해소될 것이라고 말한다. 북미 간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면 북한의 안보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이 핵을 가질 이유가 없어지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성사된다면 북한의 안보위협 경감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북미 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한다고 해서 북한의 안전이 절대적으로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라고 해서 미국이 절대로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미 간 외교관계가 수립된다고 해도 미국은 북한의 인권문제 등을 꾸준히 지적할 것이고, (미국은 한국의 인권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선별적인 경제제재 등도 계속할 수 있다. (한국도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이 적대정책을 버리지 못했다며 반발할 수 있다.

북한의 안보위협 해소 문제는 국교 수립이나 협정에 달린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북한이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얼마나 편입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전 세계에 수많은 나라들이 존재하지만, 미국과 적대관계가 아닌 나라들은 미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미국으로부터 안보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 일본처럼 미국과 동맹인 경우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미국과 동맹관계가 아닌 나라라고 해도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서 자유롭게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나라라면 안보에 심각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쉽게 말해 트럼프 타워가 평양에 건설되고 미국인들이 평양에서 관광과 사업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고, 북한 사람들이 미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외부 정보를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세상이 되면 북한의 안보위협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되려면 대외 개방이 이뤄져야 한다. 외부와의 교류를 상당한 수준으로 허용하고 외부 정보의 유입도 허용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과 같이 김일성 일가가 우상화를 넘어 신격화돼 있는 나라에서는 적극적인 대외 개방이 이뤄지기 어렵다. 외부 정보가 유입되면 김일성 일가 우상화에 대한 허구가 드러나고 김일성 일가의 절대적인 기득권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2020년 말 ‘반동사상문화배격법’까지 제정해 남한 영상물을 유입 배포하면 사형까지 시킬 정도로 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은 외부 정보 유입이 체제에 큰 위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증거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틈만 나면 ‘비사회주의와의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적극적인 대외 개방을 하지 못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사회에 편입되지 못한다면 북한의 안보위협은 궁극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미국으로부터의 장기적 위협’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일성 일가가 절대 독재 수준을 하향조정하는, 즉 김일성 일가가 외부세계와의 적극적인 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독재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필요한데, 백두혈통이라는 김정은과 김여정의 행보를 보면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북한 체제의 경직성이 이렇게 계속된다면 북한의 대외 개방과 국제사회로의 편입은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북미 간의 장기적 대결’은 불가피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북한이 ‘미국의 장기적 위협’이라는 명제에 주목한 것은 나름대로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장기적 위협’이 초래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은 서로 다르겠지만 말이다.

북한의 핵 개발, 대미 협상용인가

북한이 ‘미국의 장기적 위협’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면, 핵능력을 부단히 발전시키는 북한의 행보가 단순한 대미 협상용이 아니라는 북한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북한은 북한의 주장대로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국과 대적할 힘을 갖춰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여기서 북한 체제는 김일성 일가 정권을 의미한다) 핵개발을 하고 있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지향하기는 하겠으나, 그 협상은 우리가 바라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핵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협상일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대북정책의 궁극적 목표로 북한 비핵화를 상정하고 북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대북정책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수립되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이를 통한 북한의 안보위협 해소, 북한 비핵화라는 명제는 그 이상의 숭고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작동하기 쉽지 않게 됐다. 북한이 지금 ‘미국과의 장기적 대결’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핵 개발의 길에 매진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보다 현실적인 대응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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