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최대 오판, ‘한류(韓流)’와의 전쟁 선포”

[김정은 집권 10년 기획④] 외부 콘텐츠 탄압 지속 강화...‘LOVE 한류’ 청년층은 성장

평양시민
한류의 영향으로 북한 주민들의 옷차림이 과거에 비해 세련돼졌다. 사진은 지난 평양정상회담 당시 평양시민들 모습.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김정은 집권 10년 최대 오판은 세계가 인정하고 북한 청년들도 사랑하는 ‘한류(韓流)’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일 사망으로 2011년 12월 30일 북한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듬해인 2012년부터 종전의 엄격한 통제에서 탈피해 대중문화를 이끌 목적으로 그해 7월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 악단’ 공연을 선보였다.

당시 모란봉악단은 어깨를 드러낸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 그리고 짙은 화장을 하고 레이저 조명 아래 전자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김정은식(式) 북한 문화 선풍에 앞장섰다. 심지어 공연에는 미국 디즈니 만화영화 주인공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미국 영화 ‘록키’의 장면과 주제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체제선전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북한 사회에서 모란봉 악단이 자유분방한 ‘한류’를 대체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자력갱생, 간고분투를 내세우는 선전‧선동은 북한 주민들이 원하는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북한판 문화 선풍에 실패한 김 위원장은 2013년 봄 당 선전선동부, 사법, 보위, 안전기관에 새것에 민감한 청년층을 ‘혁명의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교양 대상자들’로 낙인찍었고 적들의 사상 문화 침투 책동에 대항한 통제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또한 최근까지 지속 북한에서는 한류를 중심으로 외부 문화, 향유 움직임에 대한 감시-감독 및 처벌이 강화됐지만, 북한판 MZ세대인 장마당 세대에서는 이에 대한 열망이 점점 커져갔다.

이에 따라 김정은 시대 들어 본보는 외부 콘텐츠 유입은 어떻게 진행돼왔고 그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이를 어떻게 통제해왔는지, 그리고 당국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포한 ‘한류와의 전쟁’의 10년 역사를 2차례에 걸쳐 돌아보고자 한다.

방탄소년단(위), 아이즈원(아래). /사진=연합

20대 김정은의 젊은층 겨냥 비사·반사 통제’…‘법기관 만성적 부패로 되레 한류 확산

북한에서 한류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식량난 및 사회체제 이완 과정을 겪으면서 주민들의 대량 탈북, 북중 간 국경통제 장벽이 상대적으로 느슨해짐에 따라 중국발(發) 외부 정보 및 문화가 점차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2010년 들어 시장화의 바람을 타고 이 또한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북한에서 유통되는 한국 영상물은 일단 중국에서 불법 복제 과정을 거쳤다. 이후 북중 국경지역 밀수꾼과 화교(華僑) 등을 통해 북한으로 유입됐다. 이렇게 반입된 외부 영상물은 시장을 거점으로 대량 유통된 것이다.

이에 혁명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한 사상교양, 체제교양 강화 주문도 제대로 먹혀 들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각종 부정부패도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시장마다 설립된 ‘판매소’는 당초 ‘조선예술영화 촬영소’, ‘4.25예술영화촬영소’, ‘극립연극단’등 목란비디오회사에서 제작-승인된 국영 음악, 영화, 만화들을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지만 되레 음성적으로 한국 영상물을 몰래 판매하거나 대여해주는 거점으로 전락했다.

또한 시장 내에서도 밀매업자들이 생겨나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불법영상물 암시장이 활성화됐다. 특히 그중에서도 말이 통하는 ‘남조선(남한) 콘텐츠’가 북한 주민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집권 초기인 2012년 20대 김정은은 이를 사회주의를 좀 먹는 비사회주의적 행위로 규정해 강력한 법적 통제를 강화하도록 했다. 이에 주모자들을 체포해 가두기 시작했지만, 사법 기관들은 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호황기를 즐겼다.

법관은 법을 구실로 돈을 벌어 좋고 젊은층은 돈을 바치고라도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결말을 봐야 성이 풀린다는 풍조가 생겨날 정도였다. 주민들은 ‘낮에는 국가 세상’, ‘밤에는 우리 세상’이라면서 비아냥댔다. 다만 상부에서는 법적 통제가 잘 돼 가고 있다고 인식했다.

당국의 고루한 인식도 한류 확산에 한몫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관영매체는 ‘조선의 별’ ‘민족의 태양’ 등을 방영했는데, 북한 새세대들은 이런 후진 문화콘텐츠에 점점 관심도가 떨어졌다. 오죽했으면 ‘우리는 사랑도 수령을 위해, 죽음도 수령을 위해라는 영화만 있냐’라고 했을까. 그렇게 한류는 점점 확산됐다.

▲북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영상 재생기 노트텔 모습.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주민들, 더 많은 외부 콘텐츠 원해다양한 사고인식 형성에 기인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외부 콘텐츠를 향유 했을까. 지금에 와서는 위험한 사안이지만 김정은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영상물을 확보한 주민들은 친구들과 서로 바꿔보기를 했다. 혹은 자신이 구입했던 가격보다 싸게 판매하기도 했다.

평양, 평성(평안남도), 원산(강원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국경지역을 통해 중국에서 들여온 한국 영상물을 북한 내부에서 보위부에 미등록한 컴퓨터를 이용해 재복제해 판매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 같은 일은 IT 기기에 능숙한 이른바 ‘장마당 세대’가 주도했다. 북한 당국이 최근 ‘청년교양보장법(’21.9 채택)’을 제정하는 등 젊은층 사상 교양에 주력하는 이유다.

또한 ‘남조선의 모든 게 궁금하다’는 주민들이 갈수록 늘어나서 웃음과 정보를 모두 담은 예능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평양 상류층을 중심으로 백종원의 ‘레시피(요리법)’가 담겨진 영상물이 유통되는 경우도 포착됐다. 북한 주민들이 즐기는 한국 영상물의 종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콘텐츠는 북한 주민들의 문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2011년 말 평양 상류층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보고 중국 쪽 지인에게 이른바 ‘현빈 츄리닝’을 구해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북한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애인,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게 유행이 됐고, 비록 상류층 일부지만 아이돌 그룹의 패션(스키니 진)을 모방하는 사례도 전해진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미스, 미스터 트롯’ 시리즈에 열광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투표하는 진풍경도 펼쳐졌었다고 한다. 심지어 가수 나훈아를 우리처럼 오빠라고 부르는 풍조도 생겨났다.

한국 영상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평과 열광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보다 많은 양의 콘텐츠가 주민들의 다양한 사고를 끌어내고 있다. 혁명의 세대교체가 되고 장마당 세대가 주력으로 등장하면서 이런 ‘한류’에 대한 열광은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폭발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종영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시청한 주민들의 반응이 그렇다. 일단 “총정치국장 아들이 지방에서 중대장을 하고 꽃제비 출신이 보위부원이 되는 게 말이 되냐” “왜 개성 사람이 양강도 말투를 쓰느냐”는 비판이 쏟아내는가 하면, “우리 같은 평백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는 긍정적 목소리도 동시에 나왔다.

또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주인공들이 어떻게 화합해 나갈까”라면서 남녀의 순수한 사랑에도 몰입하는 양상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특히 “체제를 반대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혹은 “우리를 헐뜯으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서 보기가 편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지속 관련 정보를 섭렵하면서 평가의 잣대가 조금씩 고차원적으로 변해가는 양태라고 볼만한 대목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