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겸허하신 장군님(김정일)께서는 김정일주의는 아무리 파고들어야 김일성주의 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 당의 지도 사상을 자신의 존함과 결부시키는 것을 극력 만류하시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직후인 2012년 4월 6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나눈 담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정은이 전한 말처럼 김정일 본인 스스로도 ‘아무리 파고들어도 김일성주의 밖에 없다’고 인정한 ‘김정일주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 결합한 ‘김일성-김정일주의’는 무엇?
김정일 시대 북한의 지도사상은 ‘김일성주의’였다.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이던 1974년 2월 19일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선포하고 김일성주의를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로 규정했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적 원리, 지도적 원칙 등을 집대성해 정리·심화·발전시킨 김일성주의는 북한 내에서 막스-레닌주의보다 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정립된 사상으로 높이 숭상되고 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후 정권을 이어받은 김정은도 아버지(김정일)를 흉내내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선언하고 김일성주의에 김정일의 이름을 더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공식화했다.
실제 김정은은 2012년 4월 11일 당대표자회의에서 “조선로동당은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사상으로 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투쟁하는 영광스러운 김일성-김정일주의 당”이라면서 이를 노동당 규약에 담았다. 이로써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정은 집권 시기 북한의 지도사상으로 정식화됐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사회주의 건설 시기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사회주의 위기 시기 김정일의 선군정치 이론 등을 집대성한 김정일주의가 더해진 것으로, 이렇듯 선대 수령들의 사상을 정립하는 것은 후계자인 김정은이 거처야 할 첫 번째 관문이었다.
김정은, ‘김정일 애국주의’ 첨부해 유일영도체계 확립에 활용
2012년 3월 2일 김정은은 전략로켓사령부(現 전략군사령부)를 시찰하면서 처음으로 ‘김정일식(式) 애국’을 언급했다. 김정은이 체계화한 ‘김정일 애국주의’의 주된 내용은 ‘수령에 대한 충정의 일편단심’ ‘미래에 대한 숭고한 헌신’ ‘사회주의 제도에 대한 뜨거운 애국심’이다.
선대의 사상을 계승하는 통치이념으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공표한 김정은은 김일성주의 반열에 올린 김정일주의의 미흡함을 보강하는 동시에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확립의 수단으로 김정일 애국주의를 활용했다.
실제 김정은은 “전(全) 인민을 김정일 애국주의로 튼튼히 무장시켜 새로운 주체 100년대의 혁명적 진군을 충정의 진군, 애국의 총진군으로 수놓으며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위업을 실현해 나가려는 것이 우리 당의 의도”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국은 곧 수령이고, 수령은 곧 조국이라고 교양하는 북한에서 애국이란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뜻한다. 김정일 애국주의는 한마디로 김정은에 대한 세대를 이은 충성 강요인 셈이다.
집권 10년차 자신만의 영도사상 내세운 김정은…주민들은 ‘무관심’
김정은은 올해 1월 8차 당대회에서 선민사상, 즉 ‘인민대중제일주의’를 내세웠다.
집권 10년째를 맞아 ‘주체의 태양’ ‘주체조선의 힘’ ‘영원한 승리의 기치’라며 김정은 띄우기에 나선 당 선전선동부는 “수령이 위대해 나라와 민족이 위대하다” “혁명은 수령의 권위로 전진한다”면서 전당·전군·전민이 김정은의 절대적인 권위에 충성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10년차에 자신만의 현명한 영도사상을 내놓아야 했다. 이는 북한이 이야기하는 노동계급의 혁명 투쟁에서 수령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론에 부응해야하는 절박한 문제였다. 자신만의 영도사상을 내놓는 것은 겉으로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차적 강박감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북한은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 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신념을 간직하는 것은 우리 혁명의 지상의 요구”라며 김정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의 탁월한 혁명지도사상은 더 이상 주민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 장기화로 주민들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 그들의 삶은 점점 무너져내리고 있다. 실제 주민들은 새로운 ‘김정은주의’가 나온다 해도 생활이 달라질 게 없다는 건 자명한 이치라고 꼬집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청년들은 선대 수령들의 혁명지도사상에 충실했던 부모세대의 생활난을 직접 목격하면서 수령에 충실할 필요성을 잃어가고 있다. 북한은 ‘수령의 절대적 권위가 인민의 영광’이라고 교양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게 청년들 사이의 대체적인 반응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