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 NK] “경제난에 사상까지”…심상치 않은 북한 내부

제8차 당 대회 결정 관철을 추동하기 위한 청년전위의 궐기대회가 평양에서 열렸다고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2월 19일 보도했다. /사진=노둥신문·뉴스1

5월 13일, 노동신문은 자본주의 문물 유입에 경각심을 가질 것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투쟁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신문은 ‘자기 고유한 생활양식이 흐트러지면 아무리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라 해도 물먹은 담벼락처럼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심각한 교훈’이라며, ‘지난 시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일부 나라들에서 자본주의 복귀라는 비극적 사태가 빚어지게 된 원인의 하나는 자본주의 생활양식 침습 방지에 실패’, ‘특히 청년들 속에서 나타나는 이색적이며 퇴폐적인 생활 풍조에 대해서 각성 있게 대하지 못하고 예사롭게 간과’ 등을 사회주의 체제 붕괴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건설에만 치중하면서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확립하는 사업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고 방심한다면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낼 수 없게 된다’라며 ‘자본주의 생활양식의 자그마한 싹도 경계하고 제거하기 위해 투쟁을 전당·전국가적·전사회적 사업으로 강하고 끈기 있게 진행’, ‘특히 청소년들이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물 젖지 않도록 엄격한 사상 교양과 통제’를 강조했다.

이번 노동신문 기사를 비롯해 북한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취하고 있는 일련의 동향을 보면, 경제난 심화와 함께 반사회주의 현상이 증대하면서 북한 사회 저변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하나씩 짚어본다.

북한 라진 시장
2018년 11월에 촬영 된 라진(나진)시장 내부. /사진=데일리NK 자료사진

경제난 심화, 그리고 주민 생존 공간인 장마당

북한의 심각한 경제 상황은, 김정은이 지난해 열병식(10.10)에서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면목이 없다”라고 언급한 것을 비롯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요 경제 사업의 ‘축소’, 혹은 ‘실패’를 자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20 북한의 주요 통계지표’에 따르면, 2019년 북한 국민총소득(GNI)은 35.6조 원으로 한국(1,935.7조 원)의 1/54, 1인당 GNI는 약 141만 원으로 남한(3,744만 원)의 1/27이며 특히 북한 무역총액은 32.4억 달러로 한국 무역 규모(10,456억 달러)의 1/322에 불과한 수준으로, 남북의 경제력 격차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에 직면한 주요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사회 주의국가들이 채택했다 실패를 경험한 ‘계획 경제’의 태생적인 비효율성에 기인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중·소 이념분쟁 틈바구니에서 채택했던 폐쇄적인 ‘자력갱생 원칙’, 인력과 자원을 군사 부문에 우선 투입하는 ‘선군 정책’,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에 속수무책인 ‘사회간접자본(인프라)’ 부족과 함께 핵·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 제재 자초 등 북한 체제의 특수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냉전 체제가 종식되어 중국과 소련로부터의 지원이 급감하자, 그동안 근근이 지탱해 오던(muddle through) 북한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어 국가배급체계가 붕괴하고 ‘고난의 행군’ 시기로 직결되었다.

1990년대 중반,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구한 것은 ‘어머니 당’으로 선전해 왔던 노동당이 아니라 「장마당」이었다. 장마당은 이른바 ‘7.1 조치(’02. 7. 1)’인 「신경제 관리체제」의 도입과 “장마당을 상설시장 형태인 종합시장으로 합법화시킨다”라는 「시장관리 운영 규정」(’03.5) 등을 통해 양성화하면서, 당국이 공식 허가한 장마당만 500여 개, 종사 인원이 11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북한 전역에 급속하게 확산하였다. 일반 주민들은 생필품의 80∼90%, 식량의 60∼70%를 장마당에서 조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으며, 이에 따라 “노동당이 아닌 장마당이 우릴 먹여 살린다”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처럼 장마당의 영향력이 증대하자 북한 당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장마당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대부분은 ‘장마당이 현재 북한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확인시켜주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11월 30일 기습적으로 단행했던 화폐개혁이다.

최근에도 김정은이 8차 당대회(‘21.1) 사업총화 보고에서 “국영 상업을 발전시키고 급양(식당), 편의 봉사(미용, 사우나, 가내 수공업 등)의 사회주의 성격을 살리는 것은 현시기 매우 간절한 문제”로 상정하여 ‘장마당에 대한 국가 통제’를 예고한 직후 장마당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없던 일’로 된 바 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은 공권력을 앞세워 장마당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지만, 주민 생활 저변에 깊숙이 자리 잡은 장마당(사경제)의 저력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팽팽한 힘겨루기를 하면서 불안한 동거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본지가 입수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설명자료에는 “많은 양의 남조선 영화나 녹화물, 편집물, 도서를 유입 및 유포할 경우 무기노동교화형 또는 사형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진=데일리NK

반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 강화…민심 이반 심각 반증

장마당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자, 휴대전화 등으로 다른 지역 물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한국과 중국 등의 외국 문물이 유입되는 등 제한적이지만 외부세계와 접촉하면서 비교 안목이 생김으로써, 사회 저변에서는 이른바「반사회주의 현상」이라고 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장마당 세대」라고 불리는 청소년층에서 더욱 뚜렷하다. 장마당 세대는 북한에서 1980∼1990년대 태어난 20·30대 청소년 세대를 이르는 말로써, 이들은 장마당을 통해 자연스럽게 시장원리를 습득하고 자본주의 세계의 문물을 접하면서 이데올로기보다 경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또 장마당 세대는 경제난으로 인해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성장했기 때문에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앞 세대와는 다른 성장 환경 때문에, 질풍노도(Sturm und Drang) 시기에 있는 이들 청소년층은 – 어떤 계기가 마련된다면 – 급격한 체제 변화의 주역 또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엄격한 통제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 가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20. 12)에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남측 영상물 유포자는 사형,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채택을 시작으로 거의 총력전이라고 할 만큼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에 나서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2.8∼11)에서 ‘반사회주의와 비사회주의 현상은 일심단결을 저해하는 악성종양’이라며 ‘강력한 연합지휘부를 조직해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와 투쟁을 집중적으로, 다각적으로 강도 높이 전개할 것’을 강조하는 한편 당 세포비서대회(4.8 폐회사)에서도 “새 세대들의 사상·정신 상태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며 청년들의 옷차림과 언행 등을 당세포가 통제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 북한은 ‘왜’ 지금 이 시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현상과의 투쟁,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북한은 정당성을 결여한 ‘절대 권력의 부자세습’이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혁명역사 날조, 체제 우월성 등의 세뇌 교육을 통한 ‘사상 통제’,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등의 공안기관을 통한 ‘감시 통제’, ▲당국이 식량과 주택을 나눠주어 주민들을 국가에 복종케 하는 ‘배급통제’ 등 3개 방향의 통제 정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난이 심화하면서 통제 정책의 한 축인 ‘배급통제’가 이미 오래전에 와해된 가운데, 국가를 대신하여 인민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장마당’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하여 비사회주의 현상이 확산함에 따라 ‘사상 통제’까지도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북한 당국이 집중적으로 반사회주의 현상 척결에 나선 것은 △ 사상 재무장을 통해 이완 현상을 보이는 ‘사상 통제’의 고삐를 당기는 동시에 △ ‘반사회주의 서식장’으로 간주되는 장마당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위축시켜 사경제 분야를 계획 경제 체제로 끌어들임으로써 ‘배급통제’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이런 동향은, 오히려 장마당 세대를 중심으로 한 민심이 정권으로부터 대거 유리(遊離)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더불어 북한 내부 상황이 외부에서 관찰하는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귀추가 대단히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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