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비핵화 협상 실패…북한 목표는 동북아 지역강국”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의 랜드연구소가 『북핵 위협,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며칠 전 언론에서 2027년에 북한의 핵무기가 최대 242개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됐던 보고서다.

많은 언론들이 북한의 미래 핵무기 전망치를 가지고 제목을 뽑았지만, 83쪽에 이르는 보고서 전체를 읽어보면 북한의 핵전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비핵화 협상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러한 접근법이 과연 타당하냐는 것이다.

북한, 핵포기할 가능성 거의 없어

비핵화협상의 토대를 이루는 근본 전제는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이유가 핵무기 자체의 보유보다 핵을 매개로 해 안전보장과 경제적 보상을 얻으려는 데 있다’는 믿음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안보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관계 정상화,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이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거론된다. 우리 정부도 2018년의 대화 국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입을 통해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확실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북한은 핵능력을 향상시키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18년의 대화 국면에서도 북한이 핵개발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북한은 또 수차례의 대외 입장표명을 통해 핵포기는 없다고 반복적으로 밝혀 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대표단을 만나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고, 북한이 수차례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통해 핵개발 의지를 강력히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어디에 무게중심을 둬야 할까. 보고서는 “핵무기는 김정은 정권에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라며, “비핵화 협상은 지금까지 실패해왔고 앞으로도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말한다.

핵무기가 김정은 정권에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고, 핵무기를 통해 정권과 국가를 보전할 수 있으며, 핵보유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을 경우 이를 배경으로 주변국의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한편 지역정세를 주도해 북한 주도하의 통일과 동북아 지역강국으로의 부상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금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핵탄두 장착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충분히 보유하게 되면, 미국이 과연 한국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 생겨날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북한을 공격했다가 북한 ICBM이 1∽2기라도 미국 본토로 날아가게 되면 미국에게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고 서울을 지킬 것인가’라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북한에 대한 공격을 결정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신뢰가 저하되면 동맹은 불안하게 되고 북한과 타협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북한이 지역정세를 주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력한 억제와 격퇴 신호 줘야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북한이 비핵화의지를 갖고 있다면 비핵화의 유인(incentive)을 제공함으로써 핵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하지만, 북한이 핵을 보유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당근을 제공한다고 해서 핵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확대되고 우리의 안보위협은 높아질 뿐이다.

보고서는 이 점에 착안하면서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을 달리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이 2027년 최대 242개의 핵무기를 가질 것으로 추산되고 핵무기 사용을 한반도 전쟁의 한 방편으로 고려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핵전쟁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핵전쟁에 대비하는 것과 함께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더라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믿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와 북한 지도부를 표적으로 삼는 선제적 작전개념, 북한 정권을 제거할 수 있다는 의지와 능력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것 등을 통해,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위험으로 느끼게 하는 힘의 전략이 향후 다가올 북한의 핵위협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보고서가 협상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협상은 북한 비핵화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진전시키는 것이었다며, 북한의 핵공격을 강력히 억제하고 격퇴시킬 것이라는 신호를 줬을 때 북한이 비로소 핵능력을 줄이는 진지한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가 자산이 아닌 부담이라는 확신이 들 때에만 진지한 협상에 나서리라는 것이다.

비핵화 협상 잘 안 될 경우도 대비해야

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바이든 정부 인사들과의 교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검토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의견 수렴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고서의 내용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얼마나 반영될 지는 알 수 없다.

보고서를 읽어보면 보고서가 제시하는 추론과 내용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다. 보고서가 제안한 전술핵 재배치 등의 방안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해봐야 할 것은 보고서가 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이 사실상 거의 없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제로 형성돼 있고, 우리 사회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갈등도 사실 이 지점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 중 상당수도 내심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이를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꺼려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투발수단 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개발 의도와 관련된 논란은 조만간 사치스러운 것이 될지도 모른다. 북한의 핵 위협이 좀 더 가시화되게 되면 우리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든 대처방안을 심각히 고민해야 하게 될 것이다. 비핵화 협상은 계속 추진한다 하더라도 협상이 잘 안될 경우에 대비한 준비도 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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