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자치정부 정치력, 실험대 올랐다

▲13일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환영하는 팔레스타인 군중들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이루어진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 일부의 정착촌 철수가 완료된 후 이스라엘 내각은 지난달 11일 가자 지구 점령 종식을 공식 승인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점령한 이래 38년만의 일이다.

지난 8월 시작된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정착촌 절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비로소 진정하고도 실질적인 평화를 가져 올 중대한 계기로서 받아 들여졌다.

그러나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월 24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 및 ‘이슬람 지하드’ 간의 유혈 공격이 재발했다. 이 사건이 빌미가 평화 분위기 역시 완전히 깨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아졌다.

지난달 23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양보 없는 항전을 선동하는 무력시위 선동집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이 집회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17명이 사망하고 140여명이 부상했다.

무장단체, 이스라엘 로켓포 공격

하마스는 이를 즉각 이스라엘의 소행으로 몰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는 오히려 하마스 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이스라엘을 대신해 하마스에 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자치 정부는 집회장에 동원된 사제 무기가 취급 부주의로 폭발해 발생한 사고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지체 없이 로켓 20여 발을 이스라엘을 향해 발사했다.

한편 또 다른 무장 단체인 ‘이슬람 지하드’ 는 같은 날 이스라엘 군이 서안 지역에서 지하드 대원 3명을 사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에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 이스라엘은 이슬람 지하드와 하마스의 로켓 공격에 대한 대응 조치로 가자 지구의 하마스 무기 제조 공장으로 추정되는 건물 2체를 헬기로 폭격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수 조치 이후에도 이-팔 간 분쟁을 불러 일으킬 불씨들이 남아있다.

팔레스타인 내부 분열, 분쟁의 불씨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를 중심으로 한 더이상의 정착촌 철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가자 지구 전부를 내 줄 수 있지만, 서안 지구는 일부 지역에서만 철수하겠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수립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서안 지구 전부를 반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공식 대변하는 자치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서안 지구의 전부를 요구하고 있지만, 향후 협의와를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의 무장단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무장 투쟁을 독려하고 있다. 정착촌 반환의 여세를 몰아 더욱 적극적인 공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와 하마스 등 무장 단체 간의 이러한 이견은 상호 주도권 다툼으로 표면화 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철수가 완료되자 양측은 서로가 자신들의 공(功)이라고 내세웠다. 자치 정부는 이스라엘과의 후속 협의를 준비하고 반환부지 개발 ‘훈령’을 발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으며 하마스 측은 이 성과가 자신들의 투쟁의 소산임을 선동하기에 여념이 없다. 반환 부지에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 눈앞에 다가옴에 따라 정권을 위한 권력투쟁까지 벌어질 양상이다.

무장단체 제어가 평화의 분수령

주목해야 할 점은 다소 온건하고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선호하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하마스에 비해 조직력과 물리력에 있어 현저히 열세에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에 있어서도 가자 지구의 경우, 지방 의석의 65% 이상(총 118석 중 77석)을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가 무장 단체에 대한 통제력을 확고하게 갖지 못하면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내부에 대한 이중 전략을 구사하곤 했다. 자치 정부에 대해서는 협상을 지속하면서도 하마스 등 무장단체에 대해서는 그 지도자들에 대한 표적 살해 등 강경정책을 사용했다.

이-팔 평화가 다시금 좌초함이 없이 진전하기 위해서는 근본주의와 유혈 분쟁에 대한 제어가 필수적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공격은 보복을 부른다. 그간의 반복된 좌절과 그 끝없는 유혈 분쟁에 종지부을 찍기 위해서는 대승적 상생의 결단이 필요하다.

어느 쪽도 모두를 얻을 수 없음을 냉정히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장단체의 선동을 제어하는 것이 이-팔 평화 정착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정치력 실험대 올라

이스라엘 정국도 안심하기 이르다. 이스라엘 국민 다수가 샤론의 정착촌 철수를 지지하고는 있지만, 그 저항도 거세다. 정치적 경쟁 세력은 이 기회에 샤론을 추락시키려 할 것이다. 26일 리쿠드당은 당내 예비 선거 조기 실시안을 상정하였다.

이는 사실상 샤론에 대한 재신임 투표였다. 당원들은 근소한 표차로 이 안을 기각함으로써 샤론을 우선 살려 놓았다. 그러나 샤론은 이 시점과 맞물려 하마스에 대한 공습을 공언, 개시함으로써 표심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외적인 어떤 상황에서든 이스라엘이 강경 무드에 휘둘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하마스 등 무장 단체들의 입장과 태도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팔레스타인의 정국을 자치 정부가 장악하지 못한다면 이-팔 평화는 객관적으로 다시금 암운에 들 가능성이 크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의 정치력은 중대한 고비에 서 있다.

자치 정부로서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더 많은 지지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우선은 주민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해가면서 민심을 얻어가야 한다. 결국,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정치력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분쟁으로 가느냐, 평화로 가느냐가 달려있다.

이종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