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거쉬먼] “특정국가 범죄, 전세계인이 개입해야 한다”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ational Endownment for Democracy)은 초창기부터 이번 6회에 이르기까지 <북한인권∙난민문제 국제회의>를 공식 후원하고 있다. 일부 국내 시민단체들은 이 단체를 CIA 후신, 또는 행정부의 민간 외교정책 라인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 단체는 국제회의 이외에도 국내 북한인권단체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재정을 후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인권단체들이 미국 정부의 공식후원을 받고 움직이는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칼 거쉬만 (Carl Gershman) 회장을 통해 이러한 한국사회의 시각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이 이번 행사를 매년 공동후원하고 있다. 국제회의가 그동안 북한인권개선에 기여한 부분을 평가한다면

국제회의가 6회째를 맞으면서 처음 시작 때와는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 여건이 많이 달라졌다. 표면적으로도 미 의회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었고, 유엔인권위원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여기에는 물론 탈북자 증가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젠 북한인권에 대한 ‘침묵의 마침표’를 찍었다. 국제회의가 이러한 국제환경 조성을 위해 많은 역할을 했다.

-한국내에서는 NED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NED가 미국정부의 외교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민간기구, 또는 과거 정보기구의 역할을 일부 수행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NED는 독립적이다. 지금까지 2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지속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클린턴과 부시 정부를 거치면서 NED는 아무런 정책의 변화 없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 정책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정부가 바뀌어도 우리의 사명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그것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NED에는 여당과 야당이 초당적으로 참여해왔다. 한국과 같이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첨예한 경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겠지만, 세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함께 일하고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 우리는 미 행정부의 예산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제3세계 국가에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비도덕적인 개입을 했다면 상대 정당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실제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확고한 인식이 합의됐을 때 지원하게 된다.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파트너가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델란드 등의 국가에 이미 존재하고 아시아에서는 대만에서 이 기구가 출범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국제적인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은 국제적 자세의 기본이다.

-제3국의 인권∙민주주의 문제로 개입하는 것은 주권침해라는 지적이 있는데.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이 북한인권법안을 반대하는 성명을 미 하원에 보내왔는데, 여기에는 “(인권문제는) 정치 경제 체제에 따라 북한주민들이 결정할 문제이며, 이것이 인권향상의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러한 견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조그만 이견만 가져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잔혹한 전체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면 북한주민들이 어떻게 그러한 결정을 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부터 35년 전,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은 자신의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인권에 대하여 “이 혼란스런 지구상에서 이제 더 이상 국내문제라는 것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코피 아난(Kofi Annan) 유엔사무총장은 자신의 노벨상 수상소감에서 “오늘날 국경은 국가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 자유와 구속, 특권과 굴욕 사이에 있다”고 선언한 것도 주권개념을 따른 것은 아니다.

국가주권의 원칙은 더 이상 국제관계에서 절대적 원칙이 될 수 없으며, 어느 한 국가가 자국민을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국제사회는 이에 대해 행동할 권리와 더불어 도덕적 책임을 진다는 원칙으로 대체되었다.

-북한인권개선과 탈북난민지원에 한국 NGO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 내에서 이들의 역할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생각이 있는가?

우리는 인권과 교육에 관련된 일을 지원할 뿐이지 직접적으로 탈북자를 돕거나 북한인권과 관련한 일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다. 다만, 모든 국제사회가 북한인권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북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먼저 북한주민들이 스스로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북한민주화는 매우 긴 여행과 같은 과정이다. 여행은 북한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정권의 압박을 줄이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권의 시스템을 조금씩 공개적으로 외부에 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 한 발자국씩 가야 한다. 북한에도 결국 정치적으로 해방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다. 또 하나의 출발이고 어려운 건설의 과정이 될 것이다. 한국의 도움은 계속해서 필요하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통해 북한을 자극해서 안된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지원을 통해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정부의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 생각에는 모든 사람이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더 이익이지, 거론하지 않으면서 나온 결과는 더욱 위험하다. 물론 한국 정부가 NGO만큼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미국 북한인권법안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다수 존재하는데.

나는 이렇게 확신한다. 이 법안은 미국 의회의 사심 없는 노력이었다. 그것은 북한을 위협하는 법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채택됐을 때 여당과 야당 구분 없이 모든 의원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만약 그것이 정치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채택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질적 의미에서 탈북자를 돕고, 성매매를 막고 식량이 가는지, 그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인권법을 반대하는 것이 남한과 북한 사이의 신뢰를 증가시키기 보다는 불신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북한사람들이 증언할 것이다. 진정 자유를 위해 누가 도와 줬는지, 도와주지 않았는지 말할 것이다.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 독재정권은 끝났다. 북한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지금부터다.

솔직하게 말하면, 인민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과 김정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다르다.

대담∙정리=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