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메이커’ 김정은 막는 제재의 끝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 비확산 체제의 준거인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겠다고 처음 선언한 것은 1993년 3월 12일의 일이었다. 1980년대 후반 프랑스 상업위성 SPOT호는 영변 지역의 핵 활동을 포착했고 IAEA(국제원자력기구)와 미국으로부터의 핵 추궁에 견디다 못한 김정일은 독자적인 핵 개발을 선언한 것이었다.

꼭 20년이 지난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세 번째 핵 실험을 통해 핵 폭탄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로 가는 첫 문을 열더니, 2016년엔 4차 핵 실험으로 수소폭탄까지 지향하고 있음을 천명했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첫 핵 실험 후 UN 안보리는 불과 5일 만에 대북 경제제재안(1718호)을 통과시켰다. 신속한 결의는 북한 핵 실험을 보는 전세계의 충격과 경각심을 반영한다. 3년이 지나 2009년 5월 25일 두 번째 핵 실험에 안보리는 18일만에 제재안(2087호)을 발표했다. 3차 핵실험 후에는 24일이 걸렸다(2094호).

핵 실험이 반복될수록 안보리 결의가 성사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소해 보이는 이런 경향성은 무엇을 반영하는가?

이는 북핵을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졌음을 함의한다. 동북아라는 거대 체스판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패권 쟁투에 북핵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지정학적 특수성이 커지고 말았다는 맥락이 담겼다.

역대 최고라는 한·중 관계 속에서도 일주일 간 한·중 국방장관 핫라인이 끊어져 있었다거나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오랫동안 통화를 못했다는 뒷얘기는 북핵 문제가 단지 핵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중국에게 북한의 존재가치는 핵을 뛰어넘는 것이다.

중국이 원하는 한반도 평화란 곧 동북아 안보질서의 현상유지이다. 핵 없는 북한, 최대한 양보해서 북한이 핵을 가질지 언정 중국의 국익에 어떤 위험도 없는 상태의 현상유지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주변국의 이해관계와 엇박자가 야기되는 결정적 대목이다.

북한 핵에 대한 ‘온도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포함된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가 갖는 메시지는 간단치 않다. 경제제재는 정치적 원인에 대한 경제적 징벌과도 같다. 특별히 경제제재라고 선포하지 않고도 ‘사실상의 경제제재’를 얼마든지 집행할 수 있음에도 선언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가 확산, 강화된다.

거의 모든 연구는 경제제재가 실효적이지 않음을 경제학적으로 입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행되는 이유는 체제의 경제적 압박을 통해 문제가 되는 정책변경을 유인하려는 정치적 동인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북 경제제재는 그렇게 무력하지만은 않다. 중국과 일본 단 두 나라가 ‘결심만 한다면’ 북한 정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 ‘수위’를 두고 중국은 다른 국가들에게 이견을 표출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나라는 일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반응이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차분(?)하다는 것이다. 한··일 공조라는 ‘톤앤 매너’를 유지하는 기조다.

불과 10년 전 일본은 독자적인 대북 경제제재를 공론화할 만큼 적극적이었다. 북핵 문제와 더불어 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가 당시 크게 부각됐기에 일본 국내 정치적으로 대북 제재 결의는 큰 이슈가 됐던 까닭도 있다.

현 총리인 아베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였던 2004년 일본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대북 경제제재에 적극 찬성한 바 있다. “경제제재는 김정일 체제 붕괴로의 첫걸음”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게재된 ‘주간 문춘’(2004년 12월 23일 자)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독자적 대북 경제제재의 목적은 북한 정권의 전복임을 분명히 했다.

·일 무역액 규모가 북한 무역총량의 불과 10% 미만에 불과하지만 대일 수출이 막히면 북한 정권 핵심부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이해를 갖고 있던 아베가 지금 상대적으로 조용히 비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생각이 바뀐 것일까, 아니면 다른 ‘더 큰 것’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신중한 관찰이 바람직할 것이다.

2013년 3월 8일 결정된 UN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2094호)는 이제까지의 대북 제재 중 가장 포괄적이고 강력한 제재 수단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대량 살상 무기에 사용될 위험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금수 조치하는 캐치-올(catch-all) 규정을 시행할 것을 촉구한 것이었다. 곧 발표될 안보리 제재는 이를 필요적 의무사항으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본질적인 의문은 남아있다. 대북(경제)제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이미 북·중 무역 규모가 북한 GDP의 절대량을 차지하는 지금, 대북제재의 실효는 곧 중국의 역할에 달린 것이나 다름없는데 핵을 가진 북한을 중국이 여전히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는 한, 정치적 불쾌감 표출을 넘는 실질적 대북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할까?

무엇보다 핵과 북한 정권의 결착도를 인식하는 안보리 회원국들의 컨센서스는 있는가? 북한의 핵 보유가 북한 체제의 정치적 수단이 아니라 핵 보유 자체가 북한의 정치적 목적이란 걸 모두가 아는 마당에 실질적 대북제재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현실적 합의가 있느냐는 의문이다.

서방이 원하는 기대치는 딱 이란 수준이다. 핵 무장을 풀고 인권상황을 개선하며 국제사회로 나오는 것. 이슬람 신정 독재체제는 결국 타협했다. 그러나 수령 유일영도체계란 폭압적 생활기제가 작동하는 북한 정치체제에서는 어떨까? 이 솔직한 질문에 정직한 답변을 피하는 한 북핵 문제는 미궁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이 B-52전략 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보낸 것은 북한에 대한 위협보다는 한국과 일본을 ‘안심’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확장적 핵 억지(extended deterrence)가 어떻게 작동될지 시뮬레이션으로 보여주는 무언의 신호와도 같은 것이다.

중국, 러시아, 미국 그 누구도 동북아의 핵 도미노를 원치 않는다. 차라리 핵을 가진 북한을 용인하는 것이 관리가 용이하다고 핵 수퍼파워 3국은 암묵적으로 공감할 것이다. 확장적 핵 억지란 핵 우산과 개념적으로는 같다. 일본과 한국이 미국의 직접 당사자다.

한국이 북한에 가장 유화적이었던 시기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10년(1998. 2~2008. 2)이었다. 2003년 8월부터 2007년 9월까지 만 4년 동안 여섯 차례의 6자 회담과 총 80여 차례의 협상이 진행됐으며 9·19공동성명(2005년), 2·13합의(2007년), 10·3합의(2007년)같은 비핵화로 가는 3개의 핵심의제가 연이어 합의됐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은 이 기간 핵 보유를 공식 선언(2005년 2월)했고 대포동 2호를 발사(2006년 7월)했으며 1차 핵 실험(2006년 10월)을 감행했다. 이명박 정부로 바뀐 후에는 2차 핵실험이 뒤따랐다.

2013년 3월 31일 UN 안보리의 3차 대북 제재가 발표된 지 23일 만에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핵 무력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확정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4월 2일 영변의 원자로 재가동 선언을 했다.

일련의 핵 시간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북한의 핵 추구는 그 어떤 정치적 협상으로부터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간 북한의 핵 추구는 지대추구 행위(Rent-Seeking Behavior)로 비쳤다. 핵 보상은 북한에게 곧 거저 얻은 지대수입이라고 말이다. 6자회담은 이 지대비용을 관련국에게 균분, 전가시키려는 중국의 계산이 실패로 끝났음을 보여줄 뿐이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핵 억지력의 기본 인식이다. 미-소 대립시기의 ‘냉전’은 바로 억지에 의해 조성된 의도하지 못한 평화였다. 한반도에서 이런 식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핵을 가진 북한과 확장적 핵 억지라는 핵 우산을 미국으로부터 빌려 쓰는 한국.

최악의 시나리오는 북한의 핵 공격으로 한국이 순식간에 무력화됐을 때 미국과 중국이 더 이상의 확전을 원치 않아 북한의 한국흡수를 수용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절대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가진 자는 북한 핵에 무덤덤할 수도 있다.

안보, 특히 핵 문제는 남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신념이 있는 사람은 무모해도 ‘이제는 한국도 핵 무장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전문영역인 안보 문제에 관해 국론이 분열되는 것 자체가 북한이 의도하는 통일전선전술의 한 부분이 될 뿐이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는 말썽꾸러기이다(He is a troublemaker)’와 ‘그가 말썽을 일으킨다(He makes a trouble)’는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말썽을 일으키다 보니 말썽꾸러기가 되고 말았다면 어떤 대응이 필요할까? 북한은 말썽을 부리는 것일까? 말썽꾸러기인가?

북한 핵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안보관, 그것을 뒷받침하는 인간관과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시험(testing)하고 있다. 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