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칼럼] 교황의 용기 있는 결단을 희망한다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시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면 좋을 것이라고 제안하자, 김정은이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문 대통령은 18일 바티칸을 방문하여 김정은의 교황방문 환영 의사를 공식 전달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정은이 교황방문 제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문 대통령의 제안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의례적으로 동의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지난 10월 11일 북한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며 조국통일연구원 원장인 이종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되는 국제의회동맹 총회 참가 차 스위스로 출발하였다는 점입니다.

월북작가 이기영 아들이자 김정일 남산고중 선배였던 이종혁은 1980년대 말 김일성, 김정일에게 종교정책 변화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 타파를 직접 건의한 인물입니다. 이종혁은 80년대 후반기에 김정일로부터 바티칸 교황청과 비밀협상을 벌릴 데 대한 과업을 받고 로마 주재 세계식량농업기구(FAO) 대표로 파견되었으며 오래 기간 물밑 협상을 벌여 1987년 서울대교구 장익 신부가 포함된 교황청 대표단의 첫 북한방문을 성사시켰습니다. 저의 자서전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나오는 북한의 카톨릭 신자 할머니 홍도숙 데레사의 1988년 바티칸 교황청 방문도 이종혁이 실현시켰습니다. 이종혁의 건의에 의해 북한에서 1988년 6월 조선가톨릭협회가 결성됩니다.

북한과 세계를 카톨릭으로 처음으로 연결시켰던 이종혁이 바로 이러한 시기에 제네바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혹시 북한과 바티칸 측 사이의 교황방문과 관련한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저는 김정은의 의도가 무엇이든 교황의 북한 방문을 희망합니다.

북한에 예배당은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장충성당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선전용이고 관제용입니다. 예배당에 다니는 신자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북한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북한 예배당에 다니는 신자들이 원래는 노동당에서 파견한 가짜 신자들이였으나 오랫동안 예배당에 다니면서 점차 진짜 신자로 변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김 씨 일가는 북한에서 ‘살아 있는 신’입니다. 김정은이 진정으로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고 외국으로부터 투자를 받고 싶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믿음을 선택할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물론 교황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이 엄청난 인파를 동원하고 가짜 신자들을 내세워 큰 쇼를 벌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북에 ‘사랑’과 ‘믿음’의 공기가 스며들어 가고 북한 신자들에게 ‘교회가 살아 있고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믿음과 희망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황의 평양방문으로 북한에 예배당 수가 하나라도 더 늘고 하느님의 십자가가 하나 더 세워진다면 그것 자체가 큰 성과로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변화는 사람들의 믿음이 바뀌면서 일어났습니다. 교황의 용기 있는 결단을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 최근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발간을 계기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전격 사퇴하면서 한반도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북한 체제의 실체를 진단하면서 대(對)북한 전략 구축 및 북한 변화에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실상을 폭로하고 통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태 전 공사의 칼럼을 매주 1회 게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