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예술인’을 지원하자

금년도 며칠 남지 않은 28일 저녁 천안시민회관에서 <평양민족예술단>의 송년 통일음악회 공연을 관람하였다. <평양민족예술단>은 탈북예술인들이 그들의 기량과 재능을 살려 2002년 12월 결성한 교육문화예술단이다. 현재 단원 총 70여명에 이르는 적지 않은 규모에 지난 2년 동안 전국 각지를 다니며 북한의 문화예술을 남한사회에 알림으로써 공연을 통한 민족통일의 가교역할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왔다.

공연은 남녀 단원들의 합창과 혼성 및 독창 등을 비롯하여 기타와 어코디언 등 악기 연주, 칼춤 등 전통 군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탈북예술인들은 성의를 다해 그들의 기량을 열심히 보여 주었다. 연말이고 문화적 기반이 취약한 지방도시에서의 공연이었지만 시민회관 전 좌석이 가득 찰 정도로 성황을 이루어서, 주최한 <민주평통천안시협의회>측은 행사의 성공적 개최에 만족했고 관객들 역시 탈북예술인들의 이색 공연을 즐거워했다.

착잡하고 아쉬운 심경

그러나 공연을 보면서 필자는 솔직히 반가움에 앞서 착잡함을, 기대와 희망과 함께 연민과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천안시 인구 50만 진입을 축하하는 송년음악회여서 무료공연이었고 그래서 전체적으로 감동이 배어나는 예술공연이라기보다는 마을잔치의 놀이마당처럼 산만함이 앞섰다.

짧은 공연시간에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려다 보니 북한 예술인들이 갖고 있는 예술적 진지함과 기량의 원숙함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래서 조만간 이들 공연이 이름과는 달리 남한의 세속화되고 상품화된 통속 공연으로 전락되지나 않을까 우려도 되었다.

예술인들의 북한식 말투와 어법이 아직 남아있다는 게 그나마 큰 위안이 될 정도로 예술인들의 의상과 몸짓, 표정과 창법, 그리고 공연의 레퍼토리는 남한의 통속 무대공연을 연상케 하였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평양민족예술단>의 공연은 시골장날 한켠을 장식하는 천막 서커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 <평양민족예술단>은 창단이래 지난 2년간 지방 중소도시의 소규모 축제 행사에서 주로 공연했다. 서울 신당동 떡볶이 축제부터 전남 구례군 산수유 축제 공연까지, SBS 전국사투리 경연대회나 롯데백화점 북한용천참사모금행사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탈북예술인들은 어린 단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한에서 나름대로 예술활동을 하던 분들이다. 북한에서의 예술은 체제와 사상을 찬양 고무하는 선전선동사업을 제1차적 목표로 두고 있지만 예술가들의 예술적 기량과 공연의 엄격함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남아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 어떤 예술단 못지않다. 북한에서의 선전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남한에 와서 공연했던 북한 최고의 예술단들의 공연을 보고 우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그들의 기량에 감탄하고 그들의 예술적 감성에 빠져들곤 하지 않았던가.

그런 북한의 문화예술단과 비교할 때 탈북예술인들이 최초로 결성한 <평양민족예술단>의 공연은 남쪽의 값싼 유행과 취향에 따라 너무도 빨리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롭기만 했다.

탈북예술인들은 보통의 탈북인들이기에 앞서 귀중한 북한예술인들이다. 평양에서 북한 문화예술 공연을 볼 때마다 저들의 공연에서 사상성, 정치성만 빼면 정말 세계에서도 빼어난 예술단이고, 그들의 공연이 인간 내면의 정서를 자유롭게 다룰 수만 있다면 엄청난 감동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우리 남한사회를 선택하여 왔으니 이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들이 자신들의 예술가적 감성과 뛰어난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만 있다면 그것 말고 통일의 핵심적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또 있겠는가? 황장엽 선생님은 “우리 사회 탈북인들이 훗날 얼마나 귀중한 존재였는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예언가적 메시지를 던진바 있지만 진정 탈북예술인들이 그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만 있다면 훗날 엄청난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안으로서의 남한사회’ 보여줄 때

북한민주화가 우리의 문제라면, 그건 남한사회가 북한사람, 북한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탈북인들이 남한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할 때 그것은 그 무엇보다 ‘대안으로서의 남한사회’를 실증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서 인정받는 예술인이 남한사회에서 그들의 예술적 기량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로움의 토양위에 몰라보게 비약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의 험난한 탈출을 감행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평양민족예술단>은 바로 그런 태생적 운명을 타고 출범하였고 그런 험난한 역정을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할 소명이 있다. 그런 소명을 다하기 위해 우리 정부와 사회, 국민들은 이에 합당한 조치들을 조속히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민족예술단원들이 지금처럼 열악한 경제적 조건에서 정착과 생존을 위해 전국 마을 축제를 좇아다니게 해서는 안되겠다.

일차적으로 우리 정부는 70명 단원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욱 늘어날 탈북예술인들부터 우리 사회의 또다른 예술집단으로 키워낼 의무가 있다. 그들이 마음껏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고, 그들의 공연 내용에 합당한 만큼 고가의 관람료를 받게 될 때 그들의 탈북이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평양민족예술단>의 명패를 걸고 조국통일의 가교를 자처하면서 유랑극단처럼 열악한 조건에서 방랑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수천억 남북교류협력기금은 무엇을 위해 쓰는 것인지, 수십만톤의 식량과 수억불의 현금을 북한 당국에 지불하면서 정작 북한민주화의 귀중한 씨앗인 탈북예술단에 대한 지원은 탈북인들의 자활의지에만 맡기려고 태도는 버려야 한다.

탈북예술인들의 문제는 주무부서인 통일부나 보건복지부의 정책과 예산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관광부도 문예진흥예산과 정책으로 제2, 제3의 탈북인예술단을 발굴하여 우리 사회의 예술적 향상을 위해, ‘북한예술의 탈정치화’의 시험무대로서, 또다른 우리 민족예술로서 지원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예술의 탈정치화 시험무대로 육성해야

지방정부나 문화단체들의 탈북예술인들에 대한 관심과 정책도 확 바뀌어야 한다. 남북교류행사가 이벤트로서 가치가 있어서인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북한 각 지방 및 각종 단체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화단체들 역시 같은 이유에서 북측 단체들과 연계를 맺고 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지방정부나 문화단체들이 탈북예술인단체에 대해 진정한 의미의 지원과 배려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배려와 지원으로 전국 각지에 탈북예술단의 홈베이스가 조직되고 생활 걱정없이 예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면 통일에 대비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의 조화로운 역할 분담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남한사람들은 진정으로 북한사회와 북한인을 이해해야 한다. 북한을 김정일과 김정일의 나라로만 인식함으로써 지난 수년간 수치스런 남남갈등을 겪어야 했다. 북한의 보통사람, 사상의 독재와 억압적 통치에서 자유로워진 진정한 동족으로서의 북한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 탈북예술인들은 매우 귀중한 우리의 자산이다.

탈북예술인들의 문화예술활동을 통해 우리 반쪽인 북한사회, 북한사람들을 이해하고, 북한인들도 우리와 같은 민족일뿐만 아니라 같은 능력을 가진 보통사람임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떳떳하게 북한사회를 향해, 자유를 희구하는 북한인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 있을 것이다.

유호열 / 객원칼럼니스트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