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에서 탈남까지…北인권영화제, 탈북민 삶 다각도로 조명

진행 : 지난 3일 개막한 제7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가 5일 막을 내렸습니다. 4, 5일 주말 내내 이어진 상영회에선 탈북 루트를 조명한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와 탈북민의 탈남 현상을 소재로 한 ‘북도 남도 아닌’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는데요. 김가영 기자, 두 작품 소개부터 해주시죠.

기자 : 네, 먼저 영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는 남북청년 4명이 탈북루트를 찾아 떠나는 게 주 내용입니다. 이들은 북중 접경지역에서 여정을 시작해 라오스와 태국을 거치며 탈북민인 박유성 감독의 탈북루트를 그대로 따라 걷는데요. 언뜻 봐서는 유쾌한 청춘들의 여행기 같지만, 이들의 여행은 탈북 과정에서의 공포가 어떻게 기억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주고 이를 통해 인간의 깊은 내면을 성찰합니다. 메콩강에 악어가 우글거린다던 탈북민들의 기억과 증언이 실재하는 장면인지를 확인하는 부분이 영화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영화 ‘북도 남도 아닌’은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해 한국에 정착한 이후, 다시 해외로 이주한 탈북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최중호 감독은 유럽에서 우연히 탈북민을 만난 것을 계기로 ‘탈남을 결심한 탈북민들의 삶’을 영화에 담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탈북민 3만 시대를 맞이한 한국 사회에 탈북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동안 한국 사회는 탈북민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는지 묵직한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영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는 남북 청년 4명의 탈북로드 여행기를 그려냈다. / 사진=영화 예고편 캡쳐

진행 :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네요. 먼저 영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를 살펴보죠. 영화 제목처럼 박유성 감독은 정말 메콩강에서 악어를 발견하게 되나요?

기자 : 박유성 감독이 찾아간 메콩강에는 사실 악어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탈북민들이 메콩강에서 악어를 발견했고, 심지어 악어에게 물렸다고도 증언을 해왔는데요. 하지만 메콩강에서 산다는 악어는 탈북민들의 공포 속에, 혹은 브로커들의 소문 속에 있었다는 게 영화의 설명입니다.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 탈북을 하다 보니, ‘악어가 있다’는 왜곡된 기억이 생성됐다는 겁니다. 또 브로커들이 탈북 비용을 높이기 위해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는 소문을 퍼뜨렸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대체 어느 정도의 공포이기에 없는 악어까지 상상 속에 만들어낼까 싶은데요. 박유성 감독 또한 탈북 과정에서의 공포와 더불어 다른 탈북민들의 증언을 연거푸 듣다보니, 영화 촬영차 메콩강을 찾아갈 때까지 그곳에 악어가 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합니다. 4일 상영회에서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박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 박유성 감독] : 여성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악어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어요. 작게 보이던 것들도 그런 얘기를 듣다보니 계속 커지는 거예요. 악어의 실제 모습을 제 머릿속에 만들어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메콩강에 악어가 산다고) 철저히 믿고 있었어요. 많은 탈북민 분들이 악어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치를 떨기까지 했거든요.


영화 ‘북도 남도 아닌’은 한국을 떠나 유럽에 정착한 탈북민들에게 탈남의 이유를 묻는다. /사진=영화 트레일러 캡쳐

진행 : 결국 메콩강에 산다는 악어는 그간 탈북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된 왜곡된 기억들의 결과인 것이군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한편 영화 ‘북도 남도 아닌’도 제목부터 흥미로운데요. 영화에 등장하는 탈북민들은 유럽 등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던가요?

기자 :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도 다 다른 삶을 살듯이, 유럽에 거주하는 탈북민들도 갖고 있는 직업이나 생활수준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그 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라는 게 최중호 감독의 지적입니다. 오히려 최 감독은 그 사회가 탈북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는지, 이를 통해 탈북민이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 거주하는 탈북민들은 자신들이 유럽에 정착한 다른 외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데서 더 안정감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한국 사회가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 부르고는 있지만, 종종 탈북민을 한민족과 이방인의 경계에 세워두고 바라봤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죠. 5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눴던 최 감독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북도 남도 아닌’ 최중호 감독] : 반드시 어떤 직업을 갖고 살아야만 잘 산다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편견이나 감시가 덜 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탈북민들이) 잘 살 수 있게 하는 곳이라 생각하거든요. 유럽 국가들이 탈북민에게 주는 정착금은 한국보다 크게 많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슈퍼마켓이라든가, 탈북민 자녀를 키울 수 있는 환경 등 탈북민들이 사정에 맞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잘 돼 있어요. 같은 1000만 원이 주어지더라도 유럽에서 사는 게 더 낫다고 말하는 이유죠.

진행 : 탈북민과의 사회통합을 과제로 둔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탈북민 3만 명과 잘 통합돼야 이후 2400만 북한 주민과의 원만한 통일도 이뤄질 수 있을 텐데요. 탈북민과 함께 살아가야 할 한국 사회에 요구되는 태도, 두 감독은 뭐라 말하던가요?

기자 : 두 감독 모두 탈북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강조했습니다. 공포로 얼룩져 왜곡된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많은 탈북민들에게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탈북민들 또한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란 얘깁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탈북민을 마냥 이질적인 호기심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는 지양해야겠죠. 그들이 북한에서, 또 탈북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일들을 그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여길 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삶을 토대로 건강한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자세도 필요해보입니다. 최중호 감독의 설명입니다.

[‘북도 남도 아닌’ 최중호 감독] : (탈북민 분들에게) 어떤 게 가장 부족하시냐고 물었더니, 관심이라고 하더라고요. 탈북민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꾸준한 관심인 것 같아요. 그냥 꾸준한 관심으로 주변에 아는 탈북민 계시면 연락 한 번 하고, 탈북자 봉사활동이 있으면 1년에 한 번이라도 찾아가고….

진행 : 네, 두 작품 모두 해외 영화제 출품도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요. 영화를 계기로 탈북민의 삶에 대해 더욱 관심 갖게 되길 바랍니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김가영 기자와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