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박사 주도 핵무기 네트워크 규명 미흡

미국이 리비아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에 연루된 것으로 공표했고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도 관여한 의혹이 있는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A.Q. 칸 박사의 핵무기 거래 네트워크가 알려진 것 이상의 핵확산활동을 벌여온 의혹이 있으나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5일보도했다.

타임스는 칸 박사의 네트워크에 관한 무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규명이 미흡한 것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간의 미흡한 협조와 파키스탄을 대(對)테러전 동맹으로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압력을 가하기를 주저하는 미국의 태도에 주로 기인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리비아나 북한, 이란 이외에 다른 나라들이 칸 박사의 핵기술을 수입하려 했는지는 거의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미국 정부가 완전히 분쇄됐다고 공언한 칸 박사의 네트워크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살아남아 활동 중이라는 의혹도 있다고 타임스는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체포돼 핵무기 암시장 네트워크에 연루된 사실을 고백한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의 사면을 받은 칸 박사는 그 이전에 18개국에 ‘사업상의 여행’을 한 것으로 미국과 IAEA는 파악하고 있다.

칸 박사가 이 국가들을 방문한 목적은 우라늄광과 같은 핵무기 원료의 구입이나 핵관련 물품 판매와같은 일로 추정된다.

타임스는 미국의 정부 및 민간 전문가들이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의혹을 갖고있는 국가로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알제리, 쿠웨이트, 미얀마, 아부 두바이 등을 열거했다.

이런 국가들이 칸 박사의 도움을 받아 비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 왔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지만 의혹을 뒷받침할만한 정황은 꽤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칸 박사의 최측근인 부하리 사예드 아부 타히르가 두바이에서 운영하던 업체에서 사우디 아라비아로 여러 차례 통화한 사실이드러났으며 사우디 아라비아 전문가들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칸 박사가 주최한 회의에 참석한 사실도 밝혀졌다.

그러나 타히르의 업체는 합법적인 컴퓨터 판매 사업도 벌였고 칸 박사가 주최한 학술회의도 공개된 합법 행사였다는 점에서 사우디 아라비와 칸 박사 네트워크의 관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미국과 합법적으로 의심스러운 지역 및 시설을 사찰할 권한이 있는 IAEA가 공조해 일말의 의혹도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IAEA는 칸 박사 네트워크의 조사를 둘러싸고 협조보다는 대립하기 일쑤였고 미국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의 축출을 거의 드러내놓고 추진한 이후에는 이같은 양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칸 박사를 둘러싼 의혹 규명의 필요성은 그의 네트워크 가운데 일부가 아직도 살아남아 활동을 계속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고 과거 알 카에다와도 접촉했다는 의혹까지 있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리비아가 미국에 자진 반납한 핵무기 관련 장비 가운데 핵심 부품인 로터(초고속 회전자)가 포함돼 있지 않았고 이 부품이 어디서 반입될 예정이었는지 확인되지않고 있다는 사실은 칸 박사가 연루된 암시장 네트워크 가운데 일부가 아직도 적발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아직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하고 있다.

이 부품을 리비아가 직접 제조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파악되지 않은 비밀 조직에서 공급받으려 했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지명된 스티븐 해들리 현 부보좌관은 지난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직후 파키스탄을 방문해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칸 박사 휘하의 과학자들이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난 적이 있다면서 우려를 제기했다고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전했다.

해들리 보좌관 이외에 많은 미국의 고위 관리들도칸 박사 문제를 거론했지만 대테러전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파트너인 파키스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어느 누구도 파키스탄에 강한 압력을 가하지는 못했다.

미국의 잭 프리처드 전(前) 한반도 특사는 “우리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테러와 싸우겠다고 합의했다는 이유로 칸 박사 문제에 관해 면죄부를 줬다”면서 “빈 라덴 추적작업이 시들해져 가는 지금 우리가 칸 박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무하다”고 꼬집었다./뉴욕=연합